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다시는 아무것도 괜찮아지지 않을 것이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산 작가. 바로 SF 문학의 거장,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James Tiptree Jr.)이다. 1915년에 태어나 공군 조종사, CIA 정보원, 화가 등 그야말로 '다양한' 이력을 쌓았고, 마침내 늦깎이 작가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그녀의 이력만큼이나 놀라운 사실은, 그녀가 '여성' 작가라는 점을 숨기기 위해 남성 가명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당시 SF 장르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작품이 평가절하되거나 '여성적'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진정으로 작품 그 자체로 인정받고 싶었던 그녀의 치열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말년에는 치매에 걸린 남편을 간호하다 산탄총으로 동반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으니, 그녀의 기구한 인생만큼이나 소설은 특이할 수밖에 없다.
소설 [다시는 아무것도 괜찮아지지 않을 것이다]는 작가의 남다른 삶만큼이나 독특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특히 소설의 오프닝부터 묘사가 남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른 청록색 구체가 암흑 속에 떠있다. 그는 가만히 바라본다. 구체는 무서운 느낌을 주는 희미한 박동에 맞추어 부풀어 오르더니, 서서히 허깨비 같은 거대한 덩어리를 밀어내고, 그 덩어리는 뻗어나가며 단단해진다. 행성이라는 고환이 별들을 향해 괴물 같은 남근을 밀어내는 광경이다.
처음에는 이 낯선 묘사 방식이 몰입을 방해하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하며 잠시 멈칫하게 된다. 하지만 이내 그 낯섦에 익숙해지면, 팁트리 특유의 익살에 피식거리게 된다. 묘하게 야하지 않은데도 '거시기한' 표현들이 훅훅 들어온다.
타이틀에서 이미 예측 가능한 결론을 암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충분히 신선하다. 만약 '에일리언' 같은 드라마틱하고 숨 막히는 긴장감의 플롯을 기대했다면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주인공 에런의 의식의 흐름을 좇아 깊숙이 따라가다 보면 또 나름의 재미를 발견하게 되는 소설이다.
소설의 기본 배경은 이렇다.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지구. 각국은 인재를 엄선해 지구를 대체할 행성을 찾으라는 임무를 부여하고 정찰대를 우주로 보낸다. 바로 켄타우루스호에 엄선된 인재들을 태우고.
10년간의 허탕 끝에 드디어 인간이 살 만한 행성을 찾았다고 판단한 정찰대는 지구에 '이제 떠나와도 좋다'는 녹색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정찰대가 테스트 목적으로 가져온 외계 생물체가 그들이 예상했던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2025년의 우리에게는 디스토피아를 담은 어쩌면 익숙한 플롯의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쓰인 1960-70년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놀라며 봤던 수많은 SF 영화와 소설들이 어쩌면 이 소설의 영향을 받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쓰였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을 만큼 선구적이고 시대를 앞서간 통찰력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바로 인간의 야만적인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왜 우린 우리가 지닌 짐승 같은 부분에 대해서 인간적이라는 말을 쓰는 거지. 오빠? 공격성도 인간적이라 하고 잔인함, 증오, 탐욕도 인간적이고 하지. 그건 인간적이지 않은 면이야, 오빠. 정말 슬픈 일이지. 진짜 인간이 되려면 우린 그런 모든 것들을 뒤로해야 해. 왜 그러려고 노력도 못 해?"
이 짧은 문장에서 팁트리는 우주를 넘어, 가장 근원적인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적'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비인간적인 행위에 붙는 아이러니. 우리가 정말로 나아가야 할 '인간적인' 방향은 무엇인지 곱씹게 만드는 여운이 깊은 대사였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살다 간 작가의 기운이 고스란히 담긴 SF 명작, [다시는 아무것도 괜찮아지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텅 비어 이 세상이 암흑 속에 잠겨 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