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SF, 테드 창의 세계

테드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책 리뷰

by moonconm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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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사고를, 사고가 세계를 바꾸는 순간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멈춰 섰다. 한 문장, 한 페이지가 던지는 질문들이 너무 깊어서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 이 소설집은 SF라는 장르를 빌려 인간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을 탐구한다.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언어는 우리의 세계를 어떻게 구성하는가? 자유의지는 실재하는가?

우리가 계속해서 지식을 확장하여 완벽한 이해에 다다른다면, 과연 우리는 인간일까?


언어가 만드는 세계

표제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 언어학자 루이즈는 외계 생명체 헵타포드와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그들의 언어는 인간의 언어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선형적 시간 순서가 아니라 동시적이고 순환적이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우면서 루이즈가 시간을 사고하는 방식 자체가 변화한다. 그녀는 미래를 '기억'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단순한 SF적 설정이 아니다. 테드 창은 여기서 언어학의 사피어-워프 가설을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면, 다른 언어는 다른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미래를 이미 알고 있다면, 당신은 여전히 그 길을 선택할 것인가? 루이즈는 딸이 태어날 것을, 그리고 젊은 나이에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 아이를 낳기로 선택한다. 이것이 운명인가, 자유의지인가? 테드 창은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질문을 우리 가슴에 깊이 새겨놓는다.


신과 인간 사이의 거리

'바빌론의 탑'에서는 문자 그대로 하늘에 닿는 탑을 쌓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수십 년에 걸쳐 탑을 쌓아 올리고, 마침내 하늘의 천정에 도달했을 때 그들이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그것은 다시 땅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였다. 신에게 가까이 가려던 인간의 노력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역설.


'지옥은 신의 부재'에서는 천사가 실제로 출현하고 기적이 과학적 사실로 증명된 세계가 그려진다. 그러나 그 세계에서도 신의 사랑은 불공평하고, 구원은 자의적이다. 아내를 천사의 출현 사고로 잃은 남자는 천국에 간 아내를 다시 만나기 위해 신을 사랑하려 애쓴다. 하지만 신의 사랑은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테드 창은 여기서 종교와 신앙의 본질을 해부한다. 신이 실재한다고 해서 세계가 더 의미 있어지는가? 오히려 그 자의성과 불공평함이 더 선명하게 드러날 뿐이다.


지능이라는 축복이자 저주

'이해'에서 두 명의 초지능 인간이 탄생한다. 뇌 손상 치료제의 부작용으로 인간을 초월하는 지능을 얻게 된 그들은 세계의 모든 패턴을 이해하고, 언어와 사고의 한계를 넘어선다. 그러나 두 초지능은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다. 한 명은 인류를 통제하려 하고, 다른 한 명은 그것을 막으려 한다. 초지능의 대결은 물리적 싸움이 아니라 현실 자체를 재구성하는 전쟁이다.


'일흔두글자'나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다큐멘터리'에서도 인간의 능력을 인위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의 의미를 묻는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선택할 수 있다면 선택해야 하는가? 지능을 높일 수 있다면 높여야 하는가? 그렇게 얻어진 것은 진정 '나'의 것인가?


과학과 인간성의 교차점

테드 창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것은 과학기술이 아니라 인간이다. 그는 하드 SF의 정교한 설정을 바탕으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영으로 나누면'에서는 수학적 필연성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세계를 그리면서, 지식이 신앙을 대체할 수 있는지 묻는다. 답은 복잡하다. 확실성이 경외심을 대체할 수 없듯이.


읽고 나서

이 책을 덮으면서 나는 세계를 다르게 보게 되었다. 테드 창은 SF라는 사고실험을 통해 우리의 전제들을 흔든다. 시간은 정말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가? 자유의지와 운명은 양립할 수 없는가? 지능이 높아질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지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되면 세상은 더 나아지는가?


이 질문들에 명쾌한 답은 없다. 하지만 그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인간다움의 본질이 아닐까. 테드 창은 우리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더 깊이, 더 정직하게 질문하는 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질문들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짧지만 밀도 높은 단편들은 오래 남는다. 책장을 넘긴 후에도, 일상 속에서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것이 진정 좋은 소설이 하는 일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낯설게 만들고, 그 낯설음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것.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바로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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