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의 예술이 만들어낸
비극적 아름다움

영화 <국보> 리뷰

by moonconmong

국보.jfif 영화 국보 스틸컷

175분이 짧게 느껴진 이유

영화관 좌석에 앉으며 시계를 봤다. 175분. 거의 3시간.

긴장했다. 영화가 지루하면 어쩌나. 하지만 기우였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나는 시간이 벌써 지나갔다는 사실에 놀랐다.


금수저와 흙수저의 가부키 이야기

영화 <국보>는 야쿠자 조직의 아들로 태어나 부모를 모두 일찍 여의고, 가부키 배우가 되기 위해 가부키 명문가에 입양된 키쿠오의 일대기다. 그를 키운 사람은 가부키 명문가 하나이 한지로. 그의 아들 슌스케와 키쿠오는 방과 후 함께 가부키를 연습하며 자란다.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경쟁자로.

'가문' 그 자체가 명함이 되는 가부키 세계.

슌스케는 금수저다. 타고난 재능은 키쿠오가 더 뛰어날지라도, 가문의 힘을 능가할 수는 없다.


버릴 수 없는 것

키쿠오에게 가부키는 전부다. 가부키가 키쿠오를 속일지라도, 키쿠오는 가부키를 버릴 수 없다.

이 문장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에 맴돌았다. 슌스케 또한 아버지에게 가장 인정받는 계승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키쿠오에게 밀려 가부키를 떠난다. 그러나 강에 사는 물고기가 강을 떠날 수 없듯, 결국 돌아온다.

그들에게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일본을 뒤흔든 화제작

이상일 감독의 <국보>는 일본에서도 천만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국내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된 작품이다.

175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부담스러웠지만, 막상 보고 나니 생각보다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키쿠오가 부모님을 잃는 오프닝 시퀀스로 시작하여, 영화는 3시간 가까이 그의 일생을 따라간다.


가부키를 몰라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가부키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그저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연기하는 일본의 전통 연극이라는 것 정도. 하지만 영화는 가부키 문외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베토벤과 살리에르처럼. 음악을 몰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듯이, <국보> 또한 그러하다.


씁쓸한 핏줄 문화

가부키가 좋아서, 그저 가부키만 했을 뿐인데. 키쿠오에게는 늘 '적통이 아니다'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거의 10년 만에 돌아온 슌스케는 너무나 쉽게 가부키 세계로 복귀한다. 가부키 세계의 씁쓸한 핏줄 문화를 다시 한번 느끼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영화 속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이기적이다. 남의 뒤통수를 서슴없이 치고, 가부키를 위해서라면 못하는 게 없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의 안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 가부키 문화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요시자와 료의 고혈을 짜내는 연기

요시자와 료의 연기가 압도적이다. 연기하는 내내 힘들었을 것 같다. 고혈을 짜내는 연기랄까.

키쿠오의 절망과 열정, 분노와 체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의 눈빛 하나하나에서 가부키에 대한 집착과 사랑이 느껴진다.


버릴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영화를 보고 나오며 생각했다. 나에게도 '버릴 수 없는 것'이 있을까.

나를 속일지라도, 내가 버릴 수 없는 그 무언가. 키쿠오에게 그것은 가부키였다. 슌스케에게도 가부키였다.

그들은 가부키에게 배신당하고, 상처받고, 밀려났지만, 결국 돌아갔다. 강에 사는 물고기가 강을 떠날 수 없듯이. 3시간이라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영화. 가부키를 몰라도, 일본 문화에 관심이 없어도, 누군가의 치열한 삶을 마주하고 싶다면 추천한다. 영화관을 나서며, 나는 내 손을 한참 들여다봤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을까. 키쿠오처럼, 무언가를 향해 온 힘을 다해 달려가 본 적이 있었던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89세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주식투자의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