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인데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인스타그램 해킹 표류기

거대 플랫폼의 문 뒤에서 길을 잃다

by moonconmong
1000035134.jpg 인스타그램 2단계 인증 스크린샷

재택근무를 하던 평온한 오전 8시였다. 습관처럼 들어간 메일함에서 낯선 제목을 발견했다.

'인스타그램 비밀번호가 변경되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30분 뒤, '인스타그램 2단계 인증이 신청되었습니다.'

순간 눈을 의심했다. 이게 뭐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잘 쓰지도 않던 내 계정이 해킹당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며칠 전 쿠팡 계정이 털린 직후였다. 두 사건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겠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참 묘해서 마치 내 개인정보가 어딘가에서 '패키지'로 풀린 것만 같은 찜찜함이 밀려왔다.


인지한 즉시 해결에 나섰다. 찜찜한 건 못 참는 성격이니까. 하지만 나는 몰랐다. 이것이 거대한 미로의 시작일 줄은.


고객센터가 없는 거대 기업의 아이러니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이 거대 플랫폼에는 놀랍게도 '고객센터'가 없다. "내가 인스타그램에 돈 한 푼 준 적 없으니 할 말이 없나" 싶다가도, 이 정도 규모의 기업이 소통 창구 하나 없다는 것이 상식적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헬프 센터(Help Center)를 뒤져가며 클릭을 반복했다. 매뉴얼은 있었지만, 나처럼 해커가 '2단계 인증'을 걸어버린 경우에는 무용지물이었다. 로그인을 해야 문제를 신고할 수 있는데, 로그인이 안 되니 신고를 못 하는 '무한 루프'에 갇혀버린 것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비밀번호가 변경되었나요?"라는 메일을 받았을 때 즉시 '변경 취소'를 누르는 것이었으나, 뒤늦게 확인한 링크는 이미 만료된 후였다.


1000035136.jpg 인스타그램 인증 스크린샷


"당신임을 증명하세요"라는 높은 벽

로그인이 안 된 상태에서는 계정 삭제조차 불가능했다. 유일한 희망은 '셀카 영상 인증'뿐이었다. 내 얼굴을 동영상으로 찍어 보내면, 인스타그램이 내 피드에 있는 사진과 대조해 본인을 확인해 주는 방식이다.

여기서 또 다른 절망이 찾아왔다. "내 피드에 내 얼굴이 없다면?"

아이 사진 몇 장이 전부인 계정이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 얼굴을 찍어 보내봤지만, 돌아온 건 '식별 불가'라는 차가운 메일 뿐이었다. 웹서핑을 해보니 다들 "그냥 포기하고 새로 파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이대로 놔두기엔 너무 불안했다. 내 계정이 원가에 팔려나가 누군가에게 악용되거나, 지인들에게 나인 척 DM을 보내 사기를 칠 수도 있다는 상상은 나를 괴롭혔다.


1000035138.jpg 인스타그램 셀카 인증 요청 스크린샷


디지털 난민이 되어버린 21세기의 현타

인터넷 어딘가에서 "내 얼굴이 없는 계정이라도 한 달 동안 매일 셀카를 보냈더니 풀어줬다"거나 "기술 오류 신고를 했더니 갑자기 풀렸다"는 간증 글을 보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도 기술 신고를 넣었다. 마침 인증 업로드 오류가 계속되던 참이었다.

이 방법마저 안 통하면 앱을 재설치하고 한 달 동안 셀카 영상을 보내는 장기전에 돌입할 생각이다. 내 계정에 내가 로그인도, 탈퇴도 못 하는 이 웃지 못할 21세기의 시트콤이라니.


문득 깊은 회의감(현타)이 밀려온다. 메타(Meta)는 한국에서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면서도, 제대로 된 고객센터 하나 없이 운영한다. 법이 바뀌어 내년에는 센터를 만들어야 한다지만,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승승장구하는 사이, 사용자인 우리는 그들의 시스템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해킹이나 보이스피싱을 당해봐야 비로소 알게 된다. 이 거대 기업들이 개인을 보호하는 데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력한 지. 나는 그동안 이런 말도 안 되는 서비스를 위해 나의 시간과 데이터를 바쳐왔던 것인가.

다크웹에서 우리의 계정이 몇 푼에 거래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내 계정도 지금쯤 그들과 묶여 어딘가에서 흥정되고 있을지 모른다. 비즈니스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진화하는 21세기.


나는 내 집에 못 들어가는데, 정작 도둑은 내 집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아무도 문밖에서 서성이는 나를 위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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