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코리아 2026>을 읽고
거진 10년간 <트렌드코리아> 시리즈를 읽으며 발견한 하나의 사실... 사람들이 점점 타인과의 관계는 드라이해지고 개인화되어가고 있는 느낌. 2026년의 열 가지 키워드를 보며 그 느낌은 확신이 되어 간다. 우리는 점점 더 혼자가 되어가고 있고, 그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더 정교한 방법들을 발명하고 있다.
레디코어를 보자. 선행학습의 루프에서 자란 세대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예행연습하고, 리스크를 줄이려 애쓴다. 겉으로는 효율과 완벽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두려움이 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타인과 부딪히는 것에 대한, 즉흥적인 관계 속에서 상처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카페에 가기 전 인스타그램으로 메뉴를 미리 확인하고, 데이트 코스를 구글맵으로 시뮬레이션하고, 심지어 첫 만남의 대화 주제까지 준비한다. 우리는 이것을 '스마트한 소비'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타인 앞에서 어색해지고 싶지 않은, 실패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의 다른 이름이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면 관계도 안전할 것 같은 착각. 하지만 관계는 원래 예측 불가능한 것인데 말이다.
제로클릭도 같은 맥락이다. 클릭조차 하지 않아도 알고리즘이 알아서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준다. 편리함의 극치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세상과 관계 맺는 행위조차 포기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찾아보고, 선택하는 과정. 그 번거로움 속에서 우리는 타인과 대화하고, 추천을 부탁하고, 의견을 나눴다. 이제는 그마저도 필요 없다. 알고리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시대. 타인은 점점 더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간다.
픽셀라이프는 더 노골적이다. 소용량으로, 짧게, 다양하게. 경험마저 픽셀처럼 잘게 쪼개서 소비한다. 깊이 있는 관계를 맺기에는 시간도, 에너지도, 어쩌면 용기도 부족한 우리는 가벼운 만남들을 수집한다. 오늘은 이 취미 모임, 내일은 저 원데이 클래스. 하나의 관계에 깊이 들어가면 상처받을 수 있으니, 표면만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만남들로 공허함을 메운다.
1.5 가구를 보면 더 선명해진다. 혼자 살지만 완전히 혼자는 아닌, 함께 살지만 완전히 함께는 아닌. 이 애매한 거리 두기가 2026년의 관계를 정의한다. 근처에 사는 부모님과 자주 시간을 보내지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로맨스도 우정도 아닌 타인과 공간을 나누지만 감정은 나누지 않는 코리빙. 우리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서 누군가의 존재를 원하지만, 동시에 그 존재가 너무 가까이 오는 것도 두렵다. 그래서 발명한 것이 1.5의 거리다. 딱 이 정도면 외롭지도, 부담스럽지도 않을 것 같은.
필코노미는 이 외로움의 가장 솔직한 고백이다. 퇴근 후 우울함을 달래기 위한 나도 모르는 클릭질. 시발비용. 얼마나 슬픈 이름인가. 우리는 감정을 누군가와 나누는 대신 물건을 사는 것으로 해소한다. 친구에게 전화하는 대신 쿠팡을 켜고, 연인과 대화하는 대신 새벽 배송을 주문한다. 택배 상자를 뜯는 그 순간만큼은 누군가 나를 위해 뭔가를 준비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까. 물론 그것은 알고리즘이 계산한 허상이지만, 그 허상만으로도 하루를 버틸 수 있다.
프라이스 디코딩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가전제품을 분해해서 반도체를 꺼내는 시대. 우리는 이제 제품뿐만 아니라 관계도, 감정도 이렇게 해부하고 분석한다. 이 만남이 나에게 주는 가치는 무엇인가. 이 관계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얼마인가.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계산하고, 가성비를 따지고, 효율을 극대화한다. 그 과정에서 관계가 가진 비합리적인 아름다움,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 계산되지 않는 위로는 사라진다.
그래서 휴먼인더루프가 2026년의 메인 키워드가 된 것이 아닐까. AI가 모든 것을 해주는 시대지만, 여전히 인간의 섬세한 터치가 필요하다는 것. 아직 인간의 역할이 있다는 게 다행이지만. 우리는 이제 '아직'이라는 단어를 붙여야만 인간의 가치를 말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휴먼인더루프는 단순히 AI 시대에서 인간의 역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삶 전체에 필요한 개념이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삶, 계획된 만남, 픽셀로 쪼개진 경험, 소비로 대체된 감정. 이 모든 자동화된 삶의 루프 속에서, 우리에게는 여전히 '인간의 섬세한 터치'가 필요하다. 예측할 수 없는 대화, 계획에 없던 웃음, 효율적이지 않은 시간 낭비, 가성비로 설명할 수 없는 우정.
근본이즘이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디지털 네이티브가 오히려 원본을, 진품을, 클래식을 찾는다. 복제가 너무 쉬워진 시대에 역설적으로 원본의 가치가 빛난다. 아이가 나의 옛 추억에 대해 물을 때,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무언가 진짜인 것, 복제되지 않은 것, 알고리즘이 만들어내지 않은 것에 대한 갈망이다.
우리의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계획되지 않은 만남, 가성비로 계산되지 않는 우정, 알고리즘이 추천하지 않은 사랑. 이런 것들이 근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근본적인 관계를 맺는 법을 점점 잊어가고 있다. 1.5의 거리에 익숙해진 우리는, 이제 1.0의 관계가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
AX조직을 보면 이 변화가 직장에까지 침투했음을 알 수 있다. 스쿼드, 트라이브, 챕터, 길드. 유연한 조직. 멋진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내가 속한 곳'이 명확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 A팀에서 일하다가 내일은 B프로젝트에 투입되고, 모레는 C챕터에서 누군가를 만난다.
효율적이고 혁신적이지만, 인간적인 유대는 형성되기 어렵다. 함께 야근하며 쌓이는 동료애, 오랜 시간 함께 일하며 생기는 신뢰, 같은 팀이라는 소속감. 이런 것들이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간다. 우리는 더 자유로워졌지만, 동시에 더 외로워졌다. 건강지능 HQ가 새로운 지수로 등장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몸은 건강해지지만, 마음은 더 불안해지는 시대.
결국 2026년의 모든 키워드는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외롭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더 정교한 방법들로 그것을 감춘다. 계획하고(레디코어), 자동화하고(제로클릭), 소비하고(필코노미), 분석하고(프라이스 디코딩), 거리를 조절하고(1.5 가구), 얕게 경험하고(픽셀라이프), 유연하게 움직이고(AX조직), 건강을 챙기고(HQ), 근본을 찾는 척하면서(근본이즘).
하지만 이 모든 것의 끝에는 여전히 휴먼인더루프가 있다. 인간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 우리가 아무리 외로움을 감추려 해도, 결국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내가 이 키워드들에 슬픔을 느낀다는 건 내가 아직 관계의 가치를, 연결의 필요성을 알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개인화되고 자동화되어도, 누군가는 그것이 슬프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슬픔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것이다.
어쩌면 2026년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얼마나 더 편리해지고 싶은가? 그리고 그 편리함을 위해 얼마나 더 외로워질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