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천 개의 파랑>을 읽고
쨍한 파란색 표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재미있는 소설이 읽고 싶었던 어느 날, 서점에서 무심코 시선을 빼앗긴 책. <천 개의 파랑>이라는 제목은 묘하게 마음을 붙잡았다. 파랑이 왜 천 개나 될까. 하나의 색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다는 뜻일까. 책을 덮고 나서야 그 질문은 비로소 의미를 얻었고, 나는 한동안 그 제목을 곱씹게 되었다.
소설은 고등학생 연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식당을 운영하느라 늘 바쁜 엄마, 하반신이 마비된 언니 은혜, 그리고 그 사이에서 조용히 자신의 시간을 접어두는 연재. 친구들과 웃고 떠들어야 할 나이에 연재는 집 안의 어른이 되어버렸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들이 늘 연재의 몫이었고, 그렇게 연재의 하루는 조금씩 닳아간다. 집에 있는 연재의 모습은 어쩐지 이렇게 그려진다.
“집에 있는 연재는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도 않았다. TV를 틀어놓고 온종일 휴대폰을 만지다가 짧은 낮잠을 자고 다시 또 휴대폰을 만지다가 가끔 한 번씩 은혜를 쳐다보고 말았다.”
그 장면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루하고 무료한데, 그 무료함조차 마음 놓고 누릴 수 없는 상태. 마치 사육장 안에서 하루를 보내는 북극곰처럼, 혹은 그 북극곰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사육사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생생하게 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순간들 말이다.
그런 연재의 일상에 균열을 내는 인물이 지수다. 학교에서는 모범생으로 통하는 지수가 갑자기 로봇 대회에 함께 나가자고 제안한다. 연재가 로봇을 잘 다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재에게 로봇은 마냥 설레는 대상이 아니다. 과거의 기억도 있고, 지금의 삶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경마장에서 곧 폐기될 운명의 로봇 콜리를 집으로 데려오면서 급격히 방향을 튼다.
콜리는 경주용 로봇이다. 더 빨리, 더 정확하게, 더 오래 달리도록 만들어진 존재.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콜리는 인간보다 인간의 마음을 더 궁금해한다. 인간을 잘 모르기에, 그래서 더 직설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들은 날카롭지만 이상하게도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책을 읽는 내내 ‘정말 이런 로봇을 내 생애에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요즘은 로봇 구독 서비스 이야기부터 피지컬 AI 영상까지, 미래가 성큼 다가온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각종 규제와 안전 문제를 생각하면, 가정마다 로봇 하나씩 들이는 풍경은 아직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천 개의 파랑>이 특별한 이유는, 이 소설이 로봇을 다루면서도 ‘과학’에만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과학문학상 장편대상을 받았지만, SF라는 수식어를 떼어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야기. 인간과 인간 사이, 인간과 사회 사이에 얽힌 감정의 결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사회는 개개인이 촘촘히 연결된 시스템이었고 그 선은 서로의 목을 감고 있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기에 살아갈 수 있지만, 동시에 그 연결 때문에 서로를 옥죄기도 한다. 살기 위해 끊어야 할 선들이 있고, 그 선택은 종종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된다. 이 소설은 그 잔혹한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연재, 지수, 보경, 은혜. 그리고 콜리. 이들이 함께하는 시간 속에는 뭉클한 가족애가 흐른다. 특히 콜리가 연재네 가족 안으로 스며드는 과정은 조심스럽고도 다정하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존재가 가족의 틈을 메워간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언젠가 우리 곁에 로봇이 생긴다면, 정말 이런 모습일까? 위로를 건네고, 질문을 던지고, 우리가 애써 외면하던 감정을 마주하게 만드는 존재.
콜리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은 참으로 기묘하다.
“인간의 눈이란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어도 각자가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같은 시간을 보내고도, 우리는 서로 다른 장면을 기억한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때로는 생각과 말을 다르게 하며 자신을 숨긴다. 그 모습이 얼마나 연약한지, 콜리는 이해하려 애쓴다. 그 문장을 읽으며 나는 오히려 인간인 내가 부끄러워졌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신의 연료를 태워가며 버티고 있을까.
이 소설을 덮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더 앞서가야 한다고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사회에서, 천천히 달리는 연습이라니. 경주용으로 태어난 콜리가 멈추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이자, 인간인 우리가 속도를 늦추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천 개의 파랑>은 쨍한 파란 하늘이 유난히 눈부신 늦가을에 읽기 좋은 소설이다. 마음속에 콕콕 박히는 감정들이 차갑고도 선명하게 남는다. 빠르게 읽히지만, 쉽게 지나쳐지지 않는다. 읽는 동안, 그리고 읽고 난 후에도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달려온 속도에 대해, 우리가 놓쳐온 마음들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