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도 가지 않은 길 Sep 08. 2022

박수받을 무면허 운전(2)

헝그리코리언의 용기

  (이 글은 이야기의 뒷부분에 배치될 내용을 미리 써 놓은 것입니다^^)


  ‘때로는 구매자가 일당백.’이라더니, 구매 한 건으로 2만 불을 건지게 됐다. 무길은 휘파람을 날리며 캠프를 향해 힘차게 액셀을 밟았다. 식사 시간 맞추기가 빠듯했다. 그는 두 번이나 늦은 전과가 있어 주방 사람들 눈치꾸러기가 됐다. 첫 번째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두 번째 늦었을 때는 자기들도 일을 끝내고 휴식을 취해야 할 것 아니냐며 투덜댔는데, 또 늦으면 할 말이 없었다.     


  담맘 시에 들어서는 교차로에 진입하려는데 신호가 노란불로 바뀌었다. 그냥 통과할까 하다가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다···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앞으로 밀려 나갔다. 뒤따라오던 차가 미처 정차를 못 하고 그의 차를 받은 것이었다.  

   

  에이, 급해 죽겠는데···차에서 나와 살펴보니 트렁크가 움푹 들어갔고, 뒤차는 픽업이라 헤드라이트 유리가 깨진 정도였다.     


  한데 정작 뒤차 사람들은 나와 보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차 안에서 쑥덕대고 있었다. 뭐 이런 인간들이 다 있어. 괘씸한 생각에 다가가 한마디 하려는데, 그제야 파키스탄인으로 보이는 작업복 차림의 젊은이 둘이 꾸물거리며 나왔다. 그러더니 하는 꼴이 가관이었다. 그들이 오히려 삿대질하며 화를 내는 게 아닌가!     


  “아, 이 친구야, 과속으로 달리다가 급정거하면 어떡해!”

  둘 중 큰 녀석이 소리쳤다.

  기가 탁 막혔다. 똥 싼 놈이 큰소리친다더니. 뭐 이런 인간이 있나.

  “아니, 그럼 신호 위반하고 그냥 가란 말이오?”

  “파란불에 가는 게 왜 신호 위반이라는 거요?”

  “아 저것 보면 몰라? 빨간불이 보이지도 않아?”

  “그건 조금 전에 바뀐 거지. 아까는 파란불이었잖아. 여기 증인도 있는걸.”

  큰 놈이 작은 녀석을 가리켰다.     


  젠장, 신호야 붙잡아 매 놓는 게 아니니, 두 놈이 우겨대면 어쩔 수 없는 일. 잔꾀 부리는 녀석들이 더욱 괘씸했다.

   “그래, 파란불이었다고 하자. 그렇다 하더라도 뒤에서 받은 사람은 할 말이 없는 거야.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았잖아, 이 친구들아.”

  이제 더는 억지를 못 부리겠지 했는데, 그들의 떼거지는 갈수록 요지경이었다.

  “안전거리? 안전거리가 뭔데?”

  이번에는 작은 녀석이 나섰다.

  “우린 그런 거 몰라. 어쨌든 그쪽 잘못이야.”

  다시 큰 녀석이 나섰다.

  무길은 기가 막혀 놈들 상판대기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럼, 우리 경찰에게 갑시다. 누구 잘못인지.”

  두 녀석이 동시에 저편에 있는 경찰 초소를 가리켰다.

  경찰? 순간 무길은 아킬레스건을 찔린 듯 움찔했다. 그건 안 될 말이지. 경찰에게 가면 면허증을 제시하라고 할 게 아닌가.

  “······”

  “아, 경찰에게 가자니까. 당신 잘못인지 우리 잘못인지.”

  “······”

  “잘못이 없는데 왜 못 가는 거야?”

  녀석들 기세가 등등해졌다.

  망할 놈들. 아까 차에서 나오지 않고 쑥덕대더니 바로 이 수작을 꾸몄구나.

  “우리는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고. 당신도 지금이 라마단이란 걸 알고 있잖아. 일을 빨리 끝내자고.”     


  하는 꼴을 보면 평소보다 더 잘 처먹고 더 잘 마신 놈들처럼 씽씽하기만 했다. 라마단을 지키지 않고 있음이 분명했다···여하튼 작전상 후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듯.     


  무길이 180도 태도를 바꿨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했다.”

  녀석들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더니, 이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당당해졌다.

  “그럼 잘못을 인정하는 거지? 나중에 딴소리 안 할 거지?”   

  

  이젠 수세에 몰렸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 가지 걱정이 앞섰다. 놈들이 내 약점을 이용해 금품을 요구하면 어쩔 것인가. 아니, 잘못하면 사태가 그 이상으로 비화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비위를 맞춰서라도 빨리 끝내는 게 현명한 일이었다.

  무길은 고개를 끄덕이며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물었다.     

  “그래. 딴소리 안 해. 내 잘못인 걸 뭐···근데 다친 곳은 없나?”

  “괜찮아. 우리가 순발력 있게 대처한 덕분이지.”

  놈들은 말을 하면서 웃음을 참느라 사색이 되어 있었다.

  “다행이네. 그럼 나 가도 되지?”

  “그래, 가 봐. 앞으로는 아무 데서나 급정거하지 말고.”

  녀석들이 목에 힘을 주고 큰 인심을 쓰고 있었다.     


  쫓기듯 차에 올랐다. 급히 달려가며 룸미러로 뒤를 보니, 놈들이 배꼽을 잡고 깔깔대고 있었다.

  아니, 얼굴이 하나 더. 분명 잘못 본 게 아닐 텐데···갈 때 만났던 경찰관도 그 옆에서 깔깔대고 있었다.      


  워닝 테이프를 확보한 4공구는 마지막 철야 작업으로 페널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한국인들은 이런 얘기를 재미 삼아했지만, 외국인이 볼 때는 미친 짓이었다. 만일 사망 사고라도 내면 살인죄로 처형당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하니 말이었다.         

  워닝 테이프 소동 몇 개월 전 이웃 현장인 B건설사 직원이 인명사고를 낸 일이 있었다. 사망사고인 데다가 무면허라 극형을 피할 수 없는 상황.     

  이런 경우 가해자의 생사는 피해자 미망인의 말 한마디에 달렸으니, 법원은 그녀에게 다음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권리를 부여한다.

    

  1.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음으로 답하라.

  2. 유가족의 생계가 막연하니 유가족 부양을 책임져라.


  그는 그나마 목숨은 건졌으나, 처자식을 한국에 남겨둔 채 현지에 억류돼, 피해자 유가족의 생계를 돌보는 기막힌 운명에 처했다.                                       


   

  이렇게 엄청난 위험에도 불구하고, 헝그리 한국인은 망설임 없이 무면허로 운전대를 잡았다.    

 

작가의 이전글 사막에 핀 물웅덩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