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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가지 않은 길 May 26. 2022

사막에 핀 물웅덩이

이 봐, 해 봤어?

 무길은 틈틈이 기록한 일기에서  '사막에 핀 물웅덩이'라는 제목 하에 별개의 글 하나를 남겼다.      


                                        사막에 핀 물웅덩이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물 문제는 갈수록 최 소장의 숨통을 조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식수는 생활용수와 공사용수에 비하면 별개 아니라는 게 드러났다. 오일쇼크가 용수 값을 톤당 33 리얄(10달러)까지 밀어 올려, 운송비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공사 기간 2년 동안 560만 달러라는 거금을 쏟아부어야 할 형편이었다. 예산에는 고작 55만 달러를 계상했으니, 용수에서만 500만 달러 이상 펑크가 나, 공사 성공을 자신하던 최 소장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나는 최 소장이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정보를 입수했다. 알와벨의 할리드는 원유를 자랑하며 으스대곤 했는데, 나는 그의 약코를 죽일 생각으로 한방 먹였다.

  "원유 좋지. 그런데 너희는 비나 눈 구경은 해봤냐?"라고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근데, 어라? 할리드가 껄껄 웃고 나서 했다.

  "사우디에도 우기가 있어. 3, 4월 중에 비가 내리거든. 간혹 해를 거르기도 하지만, 내릴 때는 이삼일 동안 강수량이 꽤 많단 말이야."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구름 한 점 본 적이 없는데 비가 온다고? 사우디는 일기예보가 필요 없는 나라다. 하늘은 언제나 티끌만 한 구름 없이 새파랗기만 했으니, “오늘은 온종일 화창한 날씨를 보이겠습니다.” 한마디로 충분했다. 8개월째 근무하던 나는 하늘에서 좁쌀만 한 잡티도 본 적이 없었다. 직원들 사이에선 "사우디 하늘에서 UFO는 볼지 몰라도, 구름 한 조각은 볼 수 없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았다.


    다음 날 아침, 소장실에서 결재를 받으면서 별생각 없이 할리드의 말을 꺼냈다. 그냥 믿거나 말거나 하는 식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최 소장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그게 정말이야? 정말 비가 내린단 말이야!?” 

그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재차 확인하고 나서 그는 무릎을 치며 소리쳤다. "아, 누가 알아? 그 빗물을 받아 쓸 수 있을지…."

그의 즉흥적인 발상이었다. 그의 상기된 얼굴을 보며 물 문제로 얼마나 고심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커다란 웅덩이를 파서 빗물을 받겠다는 그의 아이디어는 여지없이 직원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일 년 내내 저런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도 신기한데, 온다고 해도 얼마나 오겠습니까? 천년 갈증에 시달린 모래벌판이 입술이나 축이고 말겠지요."라고 비아냥거렸다.

 

 최 소장인들 직원들 생각과 별반 다를 게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는 실낱같은 희망에 승부수를 던졌다.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고 후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

 

3월 초, 모든 공사가 일시 중단되고 웅덩이 파기 작업이 시작됐다. 굴착기는 웅덩이를 파고, 작업자들은 빗물이 웅덩이로 흘러 들어가도록 모래 파도를 이용해 도랑을 조성했다. 직원들은 이 기이한 작업을 미친 짓이라며 뒷담화를 늘어놓았다. 그중 가장 언성을 높이는 사람은 1공구장이었다. 그는 현장에 1진으로 와 최 소장과 함께 캠프 공사를 지휘한 사람으로, 침을 튀겨가며 그때 얘기를 떠벌렸다.


최 소장은 캠프 건설과 동시에 지하수 개발에 나섰다. 1공구장이 사막에서 무슨 수맥을 찾겠느냐며 만류했지만, 최 소장은 막무가내였다. 지하 수백 미터까지 파고 들어가야 하는 사막에서의 시추 작업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일주일 이상 분투한 결과는 매번 공수표로 돌아왔다. 그는 칠전팔기를 외치며 강행군을 이어갔지만, 하늘은 끝내 그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다섯 번의 시추 약속을 훌쩍 넘겨 여덟 번째 시추마저 허망한 결과로 나오자, 그는 더는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물웅덩이 계획은 지하수 개발 실패를 만회해 보려는 최 소장의 몸부림이라는 게 1공구장의 주장이고, 많은 직원이 그와 의견을 같이했다.

 누가 뭐라거나 말거나 최 소장은 5일간의 철야 작업 끝에 마침내 작품을 완성했다. 출입구를 제외하고 캠프의 동, 서, 남쪽에 각각 하나씩, 거대한 웅덩이 3개가 입을 벌렸다.


만반의 준비를 마쳤으니 이제 하늘의 처분만 남았다. 최 소장은 틈만 나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렇다고 하늘이 달라질 것도 없으련만.     

그렇게 상하 고개 운동이 1개월 이상 계속됐다. 그러나 하늘은 마치 할리드의 말은 거짓말이라는 듯 일편단심 푸른 절개를 지켰다.  그의 속은 타들어 갔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해가 서쪽에서 뜬 것도 아닌데, 저 하늘이 먹구름으로 덮일 리 있겠나?" 하며 웅덩이의 존재조차 잊어버렸다.


 3월이 훌쩍 가고 4월도 하순에 접어든 어느 날 오후였다.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비를 대신해 생각지 않은 불청객이 찾아왔다. 최악의 불청객이······.

오후 출근 시간이 막 시작될 무렵, 사무실에 막 들어섰을 때였다. 순식간에 뿌연 먼지가 하늘을 뒤덮더니, 거센 바람과 함께 모래알이 벌떼처럼 날아들었다.

"타 다다닥···타타타닥···타타타닥···타타타닥···" 사무실 유리창에서 콩 튀기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때까지 본 적 없는 사나운 모래폭풍이었다······그것도 무려 다섯 시간 동안이나. 그동안 퍼부은 모래알이 빗물이었더라면, 물웅덩이는 이미 제 임무를 다했으리라.

 광란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파란 하늘이 얼굴을 드러냈다.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나···웅덩이는 그렇지 않았다. 웅덩이는 사라졌고 희미한 윤곽만 남아 있던 자리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도랑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그때의 최 소장을 잊을 수가 없다. 10년간 끊었다던 담배를 연신 피워대던 그 모습을.     


  그러나 낙담은 잠시, 그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에게는 애초에 모든 게 없던 일이었다. 공든 탑을 쓸고 간 모래바람은 없었다. 웅덩이를 팠던 일도 없었고, 도랑을 조성했던 적도 없었다. 다시 웅덩이를 파고, 공들여 물길을 조성했다. 이번엔 모래바람에 대비해 가림막을 추가했다..


  갈수록 1공구장의 목청이 높아졌다. 지하수 귀신이 변신해 물웅덩이에 붙었다고. 그러지 않고서야 4월이 다 가는 마당에 또 저러겠느냐고···그 말을 들을 때면, 나는 나만 듣고 말걸 괜히 최 소장에게 말을 옮겼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비가 언제 올지, 오기는 하는 건지, 혹시 또 모래바람이 들이닥치지는 않을는지··· 최 소장에게는 하루가 일 년 같은 나날이었으리라.     

 4월을 이틀 남겨둔 날이었다. 그날따라 철물점 주인 할리드는 다리를 주물러대며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5년 전 교통사고로 수술을 하고부터는 비가 올 때면 다리가 저리다 못해 시리다며 하소연했다.

하지만 주무르는 그의 손이 바빠질수록 하늘은 더 파래지기만 했으니, 이번에는 이 증상도 안 맞나 싶다며 애꿎은 다리만 못살게 굴었다.     

오래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때 나는 그가 다리를 움켜잡고 바닥에 떼굴떼굴 굴러주기를 하나님께 기도드렸던 거 같다. 아니, 설마 그러기야 했겠나?     

 

  철물점 구매를 마치고 페인트 가게를 거쳐 공구상에 들어섰을 때였다. 갑자기 날이 어둑해지더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시커먼 구름 떼가 하늘을 덮었다. 상인들은 거짓말처럼 변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장사는 뒷전이고 ‘꾸에이스, 꾸에이스(좋다, 좋아)’를 연발했다.     

  이내 ‘꾸에이스’가 비를 불렀다. 우두 득 우두 득, 우박만 한 빗방울이 상점 지붕을 때리기 시작했다. 맞으면 머리에 흠집이라도 낼 거 같은 성질 더러운 소나기였다.     

  밖에 있던 한국인 구매자들은 황급히 근처 상점으로 뛰어들었고, 현지인들은 일제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곤 쏟아지는 빗속에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 상점 안 사람들은 모두 한국인이요, 밖에서 몸을 흔드는 이들은 모두 현지인이었다.    

 

  한번 뚫린 하늘은 줄기차게 비를 퍼부었다. 얼마 후 물줄기가 아스팔트 바닥을 훑으며 흘러갔다. 현지인들은 생전에 이런 비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비는 멎었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4월을 넘겨 5일간이나 계속하며 지난 1년 갈증을 유감없이 풀었다.     

  물배를 과시하며 거대한 물웅덩이가 눈부시게 빛났다. 한국에서의 기름값에 버금가는 금방울이었다. 증발하지 않도록 위에 지붕을 얹고 가림막도 단단히 손을 봤다.     



             

  나는 총무부장과 경리부장이 각각 최 소장에게 보고한 내용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 한 구덩이 용량이 3만 5,000톤가량 되니 3개를 합치면 10만 톤이 넘습니다. 4개월 정도는 충분히 사용할 양입니다.

  ― 돈으로 따지면 적어도 100만 달러는 될 겁니다.     


  1공구장은 우물거리며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했다가 있는 대로 찜빠를 당하고, 그 후로는 말할 때면 말을 더듬는 버릇이 생겼다.        


 나는 최 소장을 생각할 때면, 고 정주영 회장의 그 유명한 말이 떠오른다.


                          ‘이 봐, 해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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