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캠프 공사 시절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한다. 아무리 나쁜 상황에서도 하나쯤은 즐길 거리가 있다고 한다. 이 황량한 사막에서도 그 말이 통할까?       

  필성은 오늘도 숙소 밖 사막으로 나섰다. 틀에 박힌 일과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면,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해가 진 사막은 불같은 열기가 누그러지고, 사냥감으로 배를 채운 맹수처럼 얌전히 그를 맞았다.

  하늘의 별들이 반짝이며 그에게 속삭이는 거 같았다.      

  ‘또 하루를 버텼네요. 그 무서운 모래바람도 이겨내시고. 대단하세요. 자신을 칭찬해 주세요.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고국의 부인과 아드님께도 이 소식을 전할게요.'     

  ’ 그래, 고마워.‘ 필성이 답한 뒤 밤하늘을 향해 외쳤다.      

  “폭염아, 물렀거라. 모래바람아, 멈춰라! 나는 이겼다! 나는 이겼다! 나는 이겼다!”     

  사막과 하늘이 맞닿은 저 멀리서 아내와 성호의 해맑은 미소가 번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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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로 돌아오니 3조 사람들이 코가 댓 자나 빠져있었다. 작업 일지 확인 결과 누수 지점 작업조로 밝혀져, 공구 사무실로 불려 가 진절머리 나게 욕을 퍼먹었단다.      

  “공구장 욕질은 아무도 못 말려. 나이는 똥구멍으로 처먹었나. 웬 욕을 그렇게 해대제.”       

  평소 욕을 제일 많이 먹는 방현우가 구시렁거렸다.     

  “노가다하다 보면 느는 거라곤 욕밖에 더 있나."     

  봉수한이 말을 보탰다.     

  “오늘 모래바람 진짜 장난 아니었지. 하필이면 피할 데도 없을 때 그렇게 사나운 놈이 닥칠 게 뭐람. 제대 말년에··· 흠, 그렇재. 제대 말년에, 배 터지게 모래알 먹고 죽을 뻔했구먼.”       

윤창식은 아직도 콧구멍에서 모래를 후벼내고 있었다.      

  “그래도 캠프 작업 때에 비하면 양반이지.”     

  설경찬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때야 피할 데가 있나 가릴 게 있나, 속수무책으로 바닥에 납작 엎드려 당할 수밖에. 그때만 했어도 바닥에 얼굴을 댈만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지. 난리를 치르고 나서는 씻을 물이 있어야 말이지. 온몸이 먼지 감태기가 된 채 원시인처럼 지냈소이다.”     

  설경찬이 진저리를 치며 말을 이었다.     

  “식사 중에 그놈이 지나가고 나면 밥알 반 모래알 반이었소. 밥을 물에 말아 모래를 가라앉혀 살살 건져 먹고 김치는 빨아먹었지. 그래도 입안에서 모래알이 으썩으썩 해. 모래를 하도 씹어서 지금도 배 속에 남아 있을 거요.”      

  “어휴, 한 달 선배가 그냥 선배가 아니구만.”     

  윤창식이 거수경례를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석가, 이번 금요일에 뭐 할 거야?”      

  방현우가 석한풍에게 물었다.      

  “글쎄, 시내 구경이나 갈까나?”

  석한풍이 말했다.

  휴일이면 회사에서 담맘과 다란까지 무료 버스 편을 제공했다. 또한 매월 수당 중 30리얄을 현지에서 지급해 근로자들의 주머니 사정이 나쁘지 않았다.     

  “나가봤자지 뭐. 술이 있냐, 여자가 있냐?”     

  “그래도 콧구멍에 바람이라도 쐬고 오면 낫지.”     

  석한풍은 휴일이면 어김없이 시내 나들이를 하는데, 방현우는 그가 돈 한 푼 쓰는 걸 보지 못했다.     

  “영화감상 안 할래? 이번 휴일에 문화 영화 상영하는디.”      

  방현우가 비밀리에 돌고 있는 정보로 석한풍을 꾀었다.     

  “문화 영화? 그거 좋재. 제대 전에 함 봐 둬야재.”      

  윤창식이 귀가 번쩍했다. 

  “나도 함 봐야겠네. 발가벗은 년놈이 별짓을 다 한다며?” 

  필성은 돈이 아까워 첫 상영을 넘겼는데, 보고 온 사람들의 말에 호기심이 당겨 다음 상영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문화 영화란 근로자들 사이에 통하는 은어로 당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포르노 영화를 가리켰다.      

  “어허, 장사 잘되네. 석가, 니도 한번 봐봐. 정말 끝내준다니까.”     

  “에이, 헛물만 켜는 거지 뭐. 돈만 깨지고.”     

  석한풍은 시답잖다는 듯 말했다.

  방현우는 그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 속마음은 돈을 아끼려는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