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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가지 않은 길 Sep 25. 2022

이국에서의 우정

가난의 사슬

  이역만리 타국에서 믿고 의지할 할 친구가 있다는 건 큰 축복이었다. 무길과 필성은 근로자 휴일이면 만나 서로 외로움을 달래고 과거를 회상하며 우정을 돈독히 했다. 그들은 직원과 기능사원 간의 만남에 대해 쓸데없는 입방아를 경계해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정 공구장 밑에서 일하려면 힘들 거야. 성격이 괄괄하지?”

  모래언덕 위에 자리를 잡자 무길이 입을 열었다.  

  “말도 마. 아가리 벌렸다 하면 욕이야. 여차하면 평생 먹을 욕을 한꺼번에 다 먹을 거야.”

  필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알만하네. 최악의 작업 환경에서 어려운 시아버지까지 만났으니 얼마나 힘이 드나.”

  “직원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일 거야. 어쩌다 자던 중에 소피보러 가면 그때마다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던걸. 우리야 주어진 시간만 때우면 그만이지만, 직원들은 밤잠도 제대로 못 자나 봐.”


  말하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필성이 화제를 돌렸다.

  “참, 태일이 놈이 자네를 동대문시장 앞에서 봤다고 하대. 뭐, 자네가 냉차 장사를 하더라고 씨부렁대던데, 그게 사실이야?”

  “없는 말을 꾸며대기야 했겠나? 노점상 하는 걸 태일이한테 들켰지. 그때 많이 힘들었네. 태일이가 무척이나 부러웠고.”

  “정말이었군. 태일이 말이 노점상이 어떻게 대학엘 갔는지 불가사의라고 하더군.”

  “쉽지 않았어. 눈앞이 캄캄할 때도 많았지.”

  “대단 하이. 그런 여건에서 명문대를 갔다니.”


  필성이 잠시 멈췄다가 씁쓸하게 말을 이었다.

  “학교 졸업한 지 10년도 안 됐는데, 자네와 내가 이렇게 하늘땅 차이가 됐네 그려. 부모님이 자네 반만 닮으라고 하실 때면 할 말이 없었네.”

  “그런 소리 말아. 자넨 인생을 즐길 줄 알잖아. 난 언제나 자네의 그런 점이 부러웠다네.”

  “그럼, 나도 잘하는 게 하나는 있는 셈이네.”

  필성이 멋쩍게 웃었다.       

  

  잠시 후 두 친구는 모래 위에 몸을 눕히고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사막의 밤하늘도 고향에서 멍석 위에 누어 바라보던 그것과 다를 게 없었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모래알처럼 깔린 별을 헤어보며, 별들이 속삭이는 말을 엿들으며, 하늘 속으로 하늘 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어린 시절이 어제 같았다.          

  “북극성이 어디 있지? 뱃사람과 나그네들의 길잡이라는 별.”

  필성이 물었다.    

  “저기 국자 모양으로 생긴 별들이 보이지? 그게 북두칠성이야. 북두칠성으로 북극성 찾는 법은 알지? 그 밑에 두 별 간격의 다섯 배쯤 되는 지점, 저기 희미하게 보이는 별.”  

  무길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북두칠성으로 북극성 찾는 법, 초등학교 시험에 우라지게 나왔지. 그때마다 내가 자네 답안지 훔쳐보지 않았나.”

  “그러고 나면 자네가 눈깔사탕 하나 사줬지, 하하.”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 보고 웃었다.

  “북극성이 우릴 초등학교 시절로 안내하네그려.”

  필성이 말했다.

  “그때는 하늘의 별이라도 딸 것 같았지. 염병할, 이 뜨거운 나라에서 이 짓거리할 줄이야, 꿈엔들 생각했나.”

  “고생스럽기는 하지만, 일거리가 많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선대에는 일하고 싶어도 일거리가 없었어. 그러니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대물림한 거지.”

  무길이 말했다.

  “그래, 불평하면 안 되지.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오겠어.”

  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시인이 노래했다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자기만의 북극성이 있다고. 그 별의 안내에 따라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세상 만날 거야.”

  무길이 말했다.

  “이 기회에 신분 상승을 이뤄야지.”

  “아무렴, 나도 목에 힘 좀 주고 살아야지.”

  필성이 힘주어 말했다.

  “그래, 우리 세대에서 가난의 사슬을 끊어보세.”

  두 젊은이는 별빛 가득한 사막에서 서로의 손을 굳게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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