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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가지 않은 길 Sep 30. 2022

머나먼 대학문

연재소설

  캠프로 돌아기는 길. 세 사람을 실은 차가 6월 중순의 아라비아 사막을 달리고 있었다. 태양은 이글이글, 모래밭은 지글지글, 사막이 본격적으로 불길을 토해냈다. 멀리 유전지역에서 천연가스를 태우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아름드리 오일 파이프라인은 끝 간 데를 모르게 뻗었으며, 모래가 날리지 않도록 뿌려놓은 모르타르가 모래벌판에 걸레처럼 널려 있었다.               

  불타는 태양, 열기를 내뿜는 모래 바다, 검은 연기, 사막을 가로지르는 오일 파이프, 모르타르,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달리 눈에 들어오는 건 그저 황량함뿐. 고산 윤선도가 이곳에 머물렀다면, 이 다섯 가지로 오우가를 어떻게 노래했을까? 시인의 눈으로는 이런 삭막한 속에서도 낭만적인 시를 빚어낼 수 있을까?   

     

  계기판이 200km/h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차는 드넓은 모래 바다에서 제자리걸음 하는 것 같았다. 운전대를 잡은 허 씨의 눈은 앞에 놓여있는 부인 사진 훔쳐보기에 바빴다. 아직 아이가 없는 사이라는데, 미인은 아니라도 나름 곱상한 얼굴이었다.

  “아주머니가 미인이네요.”

  난제를 해결해 기분이 좋은 부국이 허기사를 살짝 띄워줬다.

  “하~아, 이 허무병이 자랑할 거라고는 마누라밖에 없지유.”

  허기사의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갔다.

  “우리네에겐 과분한 여자지유. 그러니 고생을 시킴사 되겠어유?”

  “그러려면 부지런히 돈을 벌어야겠네요.”

  “그람유. 그런디 우리네가 돈 버는 수가 달리 뭐가 있남유. 중동 바람을 타는 길밖에. 여기 오느라 애먹었지유. 경쟁은 머리 터지게 치열허구 연줄은 거미줄 같더라구유.”

  “사우디 오기 쉽지 않다는 말, 친구에게 들었어요. 돈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무길이 말을 받았다.

  “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두, 하루 세끼 먹는 병에 걸렸꺼덩유.”

  허기사가 머리를 흔들었다.

  “네? 하루 세끼 먹는 병···?”

  잠시 머리를 갸우뚱하던 무길이 이내 무릎을 쳤다.

  “아-아, 그거 병 중의 병이네요. 불치병!”  

  무길과 부국이 마주 보고 웃었다.     

  “그런디 직원분들은 서로 안 오려고 한다면서유?”

  “대체로 그런 편이지요.”

  부국이 답했다.

  “꽃 같은 청춘을 사막에 묻을 수는 없다고.”

  “국내 급여의 두 배 반이나 받는 디도 말인가유?··· 증말 부럽네유. 그라기에 많이 배웠어야 하는 건디. 없어서 핵교 몬 다니구 가방끈이 짧으니께 인생 고달프구. 세상 참 불공평하네유.”

  "············"

  “그람 강 대리님과 서 대리님은 어느 쪽인가유? 본인 희망인감유, 회사에서 떠민 건가유?” 

  그는 무길과 부국을 대리님이라고 불렀다. 대리가 아니라 평사원이라고 해도, 언젠가는 대리가 될 것 아니냐며 대리 호칭을 고집했다.

  “실업자 신세는 면해야겠고, 뭐,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요.”

  부국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허기사가 이번에는 무길에게 눈길을 보냈다.

  “나야 휘파람 불며 왔죠.”

  무길이 답하며 허기사의 말을 되씹어 봤다.  

  '없어서 학교 못 다니고, 가방끈이 짧아서 인생 고달프고, 세상 참 불공평하네유.' ― 자조적인 말. 많이들 하는 소리다. 

나도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가방끈이 짧아서 인생 고달프지 않으려고, 얼마나 힘겹게 달려왔던가.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결코 쉽지 않았던 지난날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고3 겨울 방학 때였다. 전쟁 홀아비로 평생 소작농을 면치 못한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무길에게 당부했다.

  “내가 죽으면 천애 고아가 되는 네게 땅 한 평 물려주지 못하고 가다니 면목이 없구나. 아비는 이렇게 살다 간다만 너만은 열심히 살아서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는 서울에서 사업을 크게 하는 당숙의 주소를 가르쳐주며, ‘너를 알고 있을 테니 찾아가 봐라.’라는 말과 함께 눈을 감았다.      

  체격 조건이 남들보다 뒤지는 무길은 학업을 계속하는 것만이 살길이라 굳게 믿었다. 친구들은 대입 준비에 바빴지만, 무길은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당숙은 명동 일대에 10여 개의 유흥업소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마침 빈자리가 생겼다며 그에게 관리 사무소(명동장) 사환 일을 맡겼다. 몇 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대학 진학을 위한 시동을 걸게 된 것이었다.     

  잠은 사무실에서 야전 침대를 펴고 자고, 식사는 종업원 식당에서 해결했다. 사무실에서 잠을 자는 그에게는 출퇴근이라는 게 따로 없었다. 그날 사업 구상과 스케줄을 받아 적게 하는 회장님의 새벽 전화로 시작되는 일과는 통행금지 30분 전에 문을 닫는 업소들이 그날 매상금을 사무실에 입금해야 끝났다.          

  사무실 청소, 은행 입출금, 한국은행에 가서 잔돈 교환, 관공서 서류 제출, 업소에 물건 전달, 매출 전표 계산 등등, 자질구레한 일들은 모두 무길의 몫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건물을 콩 튀듯 뛰어다니며 그의 하루는 숨 돌릴 틈 없이 돌아갔다. 그런 상황에서 시간을 내 공부를 한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학에 가려면 공부보다는 돈이 앞섰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특히 어려웠던 것은, 그가 하는 일들이 유흥업소와 관련됐다는 점이었다. 명동장 건물에는 다방과 비어홀이 하나씩 있었다. 젊은이들의 아지트로 통하는 심지 다방에 들어서면, 동굴처럼 어둑한 홀, 몽환적인 색으로 채색된 벽면, 현란하게 돌아가는 오색조명, 희뿌연 담배 연기 속에 떠나갈 듯 터져 나오는 팝송으로 마치 환상의 세계에 빠져든 것 같았다.     

  비어홀을 지날 때는, 가슴이 깊게 파이고 아래는 아슬아슬하게 짧은 원피스의 아가씨들이 요염한 자태로 술 시중드는 광경에 아래쪽이 꿈틀거렸다. 더욱이 손님들이 아가씨들을 껴안고 손이 옷 속에 들어가 있는 장면에 마주치면 바지가 팽팽하게 텐트를 쳤다.     

  그뿐이 아니었다. 영업이 끝난 후 거의 반라로 샤워장을 드나드는 여종업원들. 그중에는 무길에게 추파를 던지거나 미남이라며 그의 볼에 입을 맞추는 여자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그의 심장이 터질 듯 뛰었고, 그날 밤은 야릇한 상상에 사로잡혀 잠을 이루지 못하곤 했다. 이처럼 정신을 혼탁하게 하는 것들이 주위에 널려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메모장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심부름하는 중에 틈틈이 꺼내 봤다. 거기에는 영어단어에서부터 사자성어, 수학 공식, 화학 분자식 등 암기해야 할 사항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한데 이런 그를 보고 사무실 직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이런 녀석 보게. 이 바닥에서 대학은 무슨 대학 타령이야? 송충이는 솔잎이나 먹어야지.”

  “네가 무슨 수도승이냐? 볼꼴 못 볼 꼴 다 보는데 머릿속에 뭐가 들어가겠냐?”

  “부모가 거둬줘도 어려운데 혼자서 돈은 언제 벌고 공부는 언제 한단 말이야? 질 수 있는 짐인지 아닌지 알고 덤벼야지.”

  한결같이 터무니없다는 식이었다.     

  또한 또래 남종업원 들은 ‘혼자 잘난 체하지 마라. 그렇게 해서 여자들 환심을 사려는 거야?’하며 빈정댔다. 

  그렇다 보니, 그는 시험 볼 때 커닝하듯 주위를 살펴 가며 메모장을 힐끔거려야 했다.    

   

  흥겹게 울리는 크리스마스 캐럴과 함께 예년에 비해 유난히도 추웠던 한 달이 가고 첫 번째 월급날이 됐다.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몇 달을 일해야 등록금을 모을 수 있을까? 제멋대로 예상액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꿈을 키우던 월급날이었다.      

  사무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난 뒤에야 그는 흰 봉투를 받아 들었다. 생전 처음 받아 보는 월급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었다. ··· 그러나, 그 속에서 나온 건 단돈 1,800원!··· 백 원짜리 18장!··· 커피 50잔 값에 불과했다.      

  온몸에서 맥이 탁 풀렸다. 이 돈이 입학금과 등록금이 되려면 2년은 걸려야 했다. 책값, 식대, 교통비 등 기타 경비까지 마련하려면 적어도 5년은 잡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렇게 해서 한 학기를 때운다 해도 다음 학기에 대비하려면 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게 한 푼도 쓰지 않고 월급을 고스란히 모았을 때 얘기였다.      

  눈알이 빠지게 기다리던 월급날이 그를 배신했다. 야무지게 세워 놨던 계획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대학 문이 아득히 멀어졌다. 주위 사람들 하는 말이 귓가에서 왱왱거렸다.

  ―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살아야지.’

  ― ‘자기가 질 수 있는 짐인지 아닌지를 알고 덤벼야지.’···     

  그들이 내 월급봉투를 보면 말하겠지. ‘그것 봐. 내가 뭐라고 하든. 지금 네 처지에서 살 방도를 찾아봐.’라고. 그들의 말이 현실적이고 내 생각은 뜬구름 잡기 아닌가.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찾아야 했다. 사표를 내버릴까.···일단 속이 후련하겠지.···그런데 그다음은? 어디서 먹고 어디서 잘 것인가?···위험한 일이었다.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이기 십상이었다. 오히려 먹고 자는 거 걱정 없이 한 달 1,800원이라도 받는 걸 감사하게 여겨야 할 터였다.     

  어쩔 수 없이 한 달 1,800원에 목매고 살아간다?··· 그러면 내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대학을 포기하고 평생을 유흥업소 사무실을 지키며 살겠지. 아무 희망도 없이, 자존심을 꺾어가며, 무의미한 나날을 죽여 가겠지.··· 말이 안 된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편이 낫다.            

  바람을 쐬며 마음을 달래려고 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5층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명동 거리. 회색빛 땅거미가 젖어드는 가운데 납작한 건물들이 괴물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인적이 끊긴 거리는 썰렁했다. 이 을씨년스러운 곳이 수많은 인파로 북적대는 명동 거리란 말인가.     

  명동의 낮과 밤. 같은 장소가 어떻게 이토록 상반된 두 개의 얼굴을 가질 수 있을까.··· 아니, 내 미래도 이와 같으리라. 대학에 갈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내 앞날도 이렇게 판이한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땅거미가 짙어지자 하나둘 네온사인이 불을 밝혔다. 건물마다 다투어 형형색색으로 단장하며 요염한 자태를 뽐냈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거리는 더 밝아졌다.··· 마침내 마법 같은 화장술로 치장한 명동의 밤이 열렸다.          

  인파가 밀려들고 있었다. 짝을 지은 청춘 남녀들. 무길이 쇼윈도 속을 들여다보듯 무심히 그들을 바라본다.··· 여유롭고 꿈꾸는 듯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인파 속에는 그가 목표로 하는 대학 배지를 단 젊은이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저들은 1,800원을 하루 용돈 정도로 여기겠지. 연인을 위한 선물값으로 1,800원 정도는 부담 없이 지출하겠지.··· 쇼윈도 속, 다른 세계에 사는 그들. 그들은 당당하고 거만해 보였다. 함부로 말 걸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나도 저 인파 속의 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암담한 현실이 태산처럼 높았다. 어느 것 하나 호의적인 게 없잖은가.··· 칼바람이 그의 가슴을 후볐다.

     

  주머니 속 메모장을 꺼냈다. 표지의 문구에 네온사인 불빛이 명멸했다.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메모장을 꼭 쥐었다. 손바닥이 아프도록.··· 마음 독하게 먹어야지. 기필코 1,800원의 벽을 넘어 이 답답한 땅거미를 거둬내리라. 대학 배지를 달고 명동의 밤공기를 호흡하리라.      



    

  "강형,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요? 꼭 딴 세상에 가 있는 사람 같네."

  부국이 무길을 쳐다보며 말했다. 무길이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캠프에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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