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도 가지 않은 길 Oct 06. 2024

오마르

아랍친구

  부국은 워크숍 물건을 한 번 더 찾아봐야겠다며 베어링 상점들이 있는 쪽으로 가고, 무길은 담맘 일렉트릭 하우스를 찾았다.

  “하이, 꼬리 친구!”

  점원인 오마르는 ‘앗 살라 무 알라이 쿰’ 대신 언제나 ‘하이, 꼬리 친구!’로 인사에 대신했다.

  “오늘은 또 무슨 임무를 띠고 오셨나?”

  “꼬마들 놀잇감을 사러 왔다네.”

  “꼬마들 놀잇감?”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던 오마르가 무길의 설명을 듣고는 덩달아 맥 빠진 듯 말했다.  

  “그래, 매일 아침 새것으로 갈아 낀단 말이야?”

  “어쩌겠나. 안전 펜스 규정은 지켜야지.”

  “꼬마 녀석들은 좋겠네. 신나게 깨뜨려 버렸는데 다음 날이면 또 새 놀잇감이 걸려있으니. 꼬리 아저씨들은 친절하기도 하다면서 말이야.”

  오마르가 쯧쯧 입맛을 다셨다.

  “망할 녀석들 같으니.” 


  무길은 오마르를 대하면 고향 친구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람의 만남에는 여러 경우가 있겠지만, 오마르와의 첫 만남은 특별했으니, 그날의 고마움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부국이 오기 전날이었다. 업무 시작하기 무섭게 워크숍 실장이 직접 소형 모터를 들고 와 수심에 찬 얼굴로 말했다. 구조물 공사에 투입할 특수 봉을 제작 중인데, 이 모터 고장으로 공작기계 가동이 중단됐다는 것이었다. 특수 봉이 없으면 1공구는 다음 주부터 작업을 못할 텐데, 영국 제조사로부터 부품을 조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급해, 어떻게든 현지에서 구해야 한다고 안절부절못했다.


  무길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자동차도 고장 나면 그대로 버리는 나라에서 완제품이 아닌 소형 부품을 구해오라니. 




  그는 모터 가게는 물론 기계류, 전기상까지 샅샅이 뒤졌다. 예상했던 바이지만 한결같이 없다 하고, 어디서 구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도 상인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오전 내내 자재골목은 물론 담맘 시내를 샅샅이 훑었지만, 발품만 팔았을 뿐 일말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았다. 비 오듯 흐르는 땀이 눈앞을 가리고 다리에 힘이 빠져 터벅거렸다.


  더는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작업자들이 손 놓고 있을 1공구 현장이 눈앞에 어른거렸지만 답답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쌀라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서둘러 급한 물건이나 챙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알 와벨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골목 안쪽으로 처음 보는 전기 상회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에 저런 가게가 있었네. 왠지 호기심이 당겼다.


  이젠 정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담맘 일렉트릭 하우스’ 간판이 붙은 가게 문을 밀고 들어섰다.

  “혹시, 이런 거 있습니까?”

  샘플을 내밀어 보였다. 상품을 정리하던 점원이 힐끗 보더니, “없는데요.”하고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또 한 번 같은 말을 들었을 뿐이었다. 이제껏 찾아도 없던 물건인데 이 집인들 별수 있겠나. ‘휴-우’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흘리고 가게 문을 나서려 했다. 점원이 그의 한숨 소리에 그랬는지, 다시 한번 보자며 샘플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더니 미쳐 생각 못 했다며 자기 친구가 일하는 가게에서 본 거 같다는 게 아닌가!

  무길의 귀가 번쩍했다. 오 마이 갓! 그는 안테나를 바짝 세우고 가는 길을 설명하는 점원의 말에 집중했다. 한데 그때까지만 해도 이곳 지리에 어두웠던 탓에, 점원의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몇 번이나 반복 설명하던 점원이 머리를 흔들며 돌아섰다. 이젠 그만인가 싶어 무길의 가슴이 철렁했다. 

  아니, 그게 아니었다. 점원이 직접 그곳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자기 가게는 놔둔 채 앞장을 서는 게 아닌가! 그때의 고마움이 어떠했으랴. 그때만큼은 현지인들이 움직이기를 싫어하고 행동이 느리다는 말은 가당치도 않았다.      


  오마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골목을 돌고 돌아 한참을 걸어갔다. 그들은 빗물처럼 쏟아지는 땀을 닦아내며 헉헉댔다. 이젠 물건을 구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기자, 무길은 오마르의 가게에 신경이 쓰였다. 

  “가게를 비워놔도 괜찮을까요? 누가 물건을 집어 가면 어떡하죠?”

  그러나 그는 무길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답했다.

  “누가 남의 물건을 건드리나요. 쓸데없는 걱정이죠.”

  오히려 말을 꺼낸 쪽이 무색해졌다. 사우디는 도둑이 없다더니 이 정도란 말인가. 그래도 또 다른 문제가 마음에 걸렸다.

  “손님이 왔다가 주인이 없으니 그냥 돌아가지 않을까요?”

  이번에도 그는 무사태평이었다.

  “손님이 돌아가고 안 가고는 신의 뜻입니다. 신의 뜻이 있으면 또 오겠지요.”  

  무길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 그의 사고방식은 자신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더는 아무 말도 않고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다.    


  찾아간 상점 점원이 가게 한구석에서 모터 하나를 가져왔다. 무길이 받아 샘플과 대조해 봤다. 분명, 같은 물건이었다, 분명히. 이놈이 여기 숨어 날 애 먹였구나!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고 하늘이라도 날 것 같았다. 천만다행으로 구조물부가 위기상황을 면하게 됐구나. ‘때로는 구매 요원이 일당백’이라던 박 차장 말이 떠오르며, 절로 휘파람이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오마르에게, 누차 고맙다며 이 신세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니,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당신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어요. 당신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요. 그렇다면 내가 당신을 돕는 건 당연한 일 아닙니까? 내가 아니라 누구라고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가게로 돌아오자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하다 만 상품 진열을 계속했다.    


  그 후부터 무길이 전기용품은 오마르의 가게에서 구매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두뇌가 명석하고 다른 상인들과 달리 일 처리가 신속했다. 전기류는 스펙이 복잡해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은데, 그에게 가면 간단히 해결됐다.          


  그는 한국에 관한 관심이 남달랐다. 식민지 역사와 해방, 6·25 사변으로 인한 전쟁 폐허에서 경제 재건에 관해 자세히 묻고 감탄을 연발했다. 특히 국제개발의 상하수도 공사는 담맘 시민에게 신세계를 열어줄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막에서 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된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일이야.”  

  오마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덧붙여 이렇게 말하곤 했다.

  “꼬리는 알라신이 보낸 천사야. 이 땅에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고 있으니. 당신들은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는 이 대륙을 흔들어 깨우고 있어.”

  근데 이 말을 할 때면 그에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함이 깃들어 있었다.      




  부국은 마침내 워크숍 물건을 찾아냈다고 얼굴에 희색이 만면했다. 이렇게 며칠 동안 한 건에 매달리다 보면 일이 밀리게 마련인데, 속 모르는 박 차장은 일 처리가 늦다고 구박이라며 투덜댔다.

이전 10화 골칫거리 꼬마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