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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가지 않은 길 Jul 30. 2022

타향살이

열사의 땅

  숙소로 돌아온 근로자들이 맥 놓고 앉아 있었다. 뒤늦게 온 방현우가 작업복을 벗어던지며 분통을 터뜨렸다.

  “홍 기사 그눔의 새끼, 전생에 웬수진 일 있능겨? 왜 눈깔만 마주치면 지랄이여, 지랄이. 사람이 움씬을 못 하게.”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맞아. 그 새끼, 대학이라고 나왔답시고 너무 꼴사납게 굴어.”

  석한풍은 남의 가려운 곳을 잘 긁어줬다.

  “에이그, 성질대로 하면, 그냥.”

  방현우가 쥔 주먹을 허공에 휘둘렀다.

  “내가 봐도 너무 심해. 다른 사람은 똑같이 해도 아무 소리 안 하믄스름.”  

누군가 말을 거들었다.     

  "뚜드려 엎고 비행기 탈 수도 없고, 지애미."  

  방현우가 침상으로 올라와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며 중얼댔다.

  “아니꼽고 더럽지만 우쩌겠능교. 마누라, 새끼들 봐서 참아야재.”

  "기분 풀게나.”

  석한풍이 방현우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샤워를 마치고 난 근로자들이 노곤한 해방감에 젖어있었다. 마침 전날 곽 씨가 다른 숙소로 옮겨져서 k숙소 사람들은 취침 노이로제로부터 해방돼 심적인 여유를 갖게 됐다.      


  필성이 팔베개하고 누워 생각에 잠겼다.

  또 전쟁 같은 하루가 갔구나. 이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고, 일 년이 되겠지. 그러면서 통장도 살이 붙는 거야.

  내년이면 성호가 학교에 들어가는구나. 나와 아내는 학부모가 될 거고. 근데 학교 가면, 가정환경 조사서라는 게 있다던데, 그놈의 게 영 마음에 걸린단 말이야. 사는 집이 자가인지, 전세나 월세인지 묻는 항목이 있다니. 엠병, 그딴 걸 왜 하고 지랄이야. 선생이란 것들이 없는 집 애들 생각은 하지도 않나? 성호가 왜 우리는 집이 없느냐고 하면, 아비가 돼서 뭐라고 답하냐고, 씨팔 놈의 것들······.    

 

  그는 답답한 마음을 누르며 속으로 다짐했다. 그렇지만 몇 년 후면 얘기가 달라지는 거야. 아무렴, ‘전세’를 지우고 ‘자가’에 동그라미를 쳐야지. 큼직하게. 그러기 위해 내가 여기서 땀 흘리고 있는 거 아닌가. 일 년이고 이년이고 몇 년이 됐든. 성호에게 인생 역전 드라마를 안겨줘야지.

  그뿐인가. 그놈의 영감 상판대기 보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아.

  그런데··· 오늘따라 왜 이리 집 생각이 날까. 아내가 그립고 성호가 보고 싶을까.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그때 한쪽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힘들고 외로울 때면 부르며 마음을 달래는 노래.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숙소 안이 조용해졌다.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고···”

  듣고 있던 이들이 하나둘 따라 하더니, 이내 모두 하나 돼 불렀다.

  “부평 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가 막혀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봄도 푸르련만

   ~~~···~~~···~~~···~~~···”     

  

  노래가 끝나자 주위가 숙연해졌다. 아무도 입 여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에게 고향은 무엇이고 타향은 무엇인가. 왜 남의 나라에 와 타향살이하며, 고향을 그리워하는가··· 이유는 단 한 가지. 지긋지긋한 가난을 털어내고 남부럽지 않게 살기 위함이었다. 각자 태어난 곳이 다르고 살아온 과정은 다르지만, 그들은 같은 목표 아래 이역만리 열사의 땅에서 만난 것이다.     


  얼마 후 봉수한이 무거운 침묵을 깼다.

  “낮에 쓰러진 사람은 어떻게 됐나?”

  “깨어나긴 했는데 열사병이라 합디다. 야간작업 시간에 홍 기사와 천 기사가 하는 얘기를 들었네유.”

  설경찬이 답했다.

  “그나마 다행이군.”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했다.      

  “과부 하나 구제했네.”

  윤창식이 한마디 보탰다.


  “우리 마누라는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석한풍이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정화수 받아놓고 정성 들이고 있을 거여.”

  비위 좋은 방현우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을 받았다.

  “얼래, 달력 당번 뭐 하는 기고?”

  윤창식이 손가락으로 달력을 가리켰다.

  “어허, 잘못했다가 22일 하루 더 살 뻔했구먼 그랴, 이―잉.”

  방현우가 달력으로 다가가 6월‘22일’에 큼지막한 가위표를 씌웠다.

  “제대일이 며칠 남앗능교?”

  윤창식은 오던 날부터 제대 타령이었다.

  “아니, 입대하자 제대하남? 윤 일병, 입대한 지 몇 년 됐는감?”

  설경찬이 쫑코를 줬다. 여기저기서 낄낄대는 소리가 났다.

  “제대하더라도 윤 씨는 나보다 한 달 후야.”

  설경찬은 걸핏하면 한 달 선배 앞에서 까불지 말라는 식이었다.

  “지에미, 겨우 한 달 가지고 더럽게 유세 떠네. 그렇지만 니는 연장할 거 아잉감? 나는 연장 안 할 테니 내 가고 난 뒤 열한 달 있다 오게나.”

  윤창식이 혀를 날름했다.

  “에헤, 윤 일병도 연장 안 하면 일 년 번 돈으로 부인 찾아올 수 있겠나?”

  설경찬의 반격에 윤창식은 할 말이 없었다.


  시끌벅적한 대화 속에 시계가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만 잡시다. 내일 전투에 대비해야지.”

  설경찬이 종례를 했다.

  “그래. 12시야. 불 끕시다.”

  “못다 한 말들은 뒀다가 주말에 하자고.”

  불이 꺼지고 근로자들이 잠을 청했다.

 

  “마누라라 생각하고 베개들 꼭 껴안고 자랑께.”

  이때면 방현우가 늘 하는 말이었다.

  “···아아, 말랑말랑한 마누라 젖가슴 생각이 간절하구먼. 하나님은 왜 유방에 지퍼를 달아주지 않았을까나. 뗐다 달았다 할 수 있으믄 비개 안고 자지 않아도 될 텐디, 에궁.”

  방현우가 꼴깍 침을 삼켰다.

  “야, 방가, 니 잘라카는데 딸딸이 좀 치지 말라카이. 그러잖아도 자꾸만 꼴리는데 말이재.”

  윤창식이 방현우를 욱 찔렀다.

  “알았어. 그치만 샘은 퍼내야 마르지 안 능겨.”

  “맞아, 내가 누구한테 들은 얘긴데, 거시기는 안 쓰면···”

  이번에는 석한풍이 끼어들자, 설경찬이 말을 끊고 방장으로서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이거 안 되겠군. 지금부터 입 여는 사람은 벌금 10 리얄이요, 10 리얄.”

  돈이 무섭긴 무서운지 벌금 얘기가 나오면, 입 벌리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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