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도 가지 않은 길 Jul 30. 2022

타향살이

연재소설

 

  숙소로 돌아온 근로자들이 맥 놓고 앉아 있었다. 뒤늦게 온 방현우가 작업복을 벗어던지며 분통을 터뜨렸다. 

  “홍 기사 그눔의 새끼, 전생에 웬수진 일 있능겨? 왜 눈깔만 마주치면 지랄이여, 지랄이. 사람이 움씬을 못 하게.”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맞아. 그 새끼, 대학이라고 나왔답시고 너무 꼴사납게 굴어.”

  석한풍은 남의 가려운 곳을 잘 긁어줬다.

  “에이그, 성질대로 하면, 그냥.” 

  방현우가 쥔 주먹을 흔들며 허공에 휘둘렀다. 

  “내가 봐도 너무 심해. 다른 사람들은 똑같이 해도 아무 소리 안 하믄스름.”  

누군가 말을 거들었다.     

  "뚜드려 엎고 비행기 탈 수도 없고, 지애미."  


  침상으로 올라온 방현우가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아니꼽고 더럽지만 우쩌겠능교. 달린 가족을 봐서라도 참아야재.”

  석한풍이 방현우의 가족사진을 같이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 풀게나.”         

  샤워 후 취침 전까지는 하루 중 근로자들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자유 시간이었다. 마침 전날 곽 씨가 다른 숙소로 옮겨져서 k숙소 사람들은 취침 노이로제로부터 해방돼 심적인 여유를 갖게 됐다.  

    

  샤워를 마치고 난 필성이 팔베개하고 누워 생각에 잠겼다.

  또 전쟁 같은 하루가 갔구나. 이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고, 일 년이 되겠지. 그러면서 통장에는 살이 붙는 거고. 

  내년이면 성호가 학교에 들어가는구나. 나와 아내는 학부모가 될 거고.

  근데 학교 가면, 가정환경 조사서라는 게 있다던데, 그놈의 게 영 마음에 걸린단 말이야. 사는 집이 자가인지, 아니면 전세나 월세인지 묻는 항목이 있다니. 엠병, 그딴 걸 왜 하고 지랄이야. 선생이란 것들이 없는 집 애들 생각은 하지도 않나? 성호가 왜 우리는 집이 없느냐고 물으면, 아비가 돼서 뭐라고 답하냐고, 씨팔 놈의 것들.      

  필성은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며 속으로 다짐했다. 그래도 괜찮아. 사람 팔자 시간문제라지 않나. 성호가 졸업할 때면 ‘전세’가 ‘자가’로 바뀔 테니까. 아무렴, 그렇고말고. 그러기 위해 내가 여기서 땀 흘리고 있는 거 아닌가. 일 년이고 이년이고 몇 년이 됐든. 성호에게 인생 역전 드라마를 안겨줘야지. 빌어먹을 놈의 영감태기 상판 떼기 안 봐도 돼서 좋고. 그런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집 생각이 날까. 아내가 그립고 성호가 보고 싶을까.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그때 한쪽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힘들고 외로울 때면 부르며 마음을 달래는 노래.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숙소 안이 조용해졌다.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고···” 

  듣고 있던 이들이 하나둘 따라 하더니, 이내 모두 하나 돼 불렀다. 

  “부평 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가 막혀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봄도 푸르련만

   ~~~···~~~···~~~···~~~···”       

  노래가 끝나자 주위가 숙연해졌다. 아무도 말하는 이가 없었다.  그들에게 고향은 무엇이고 타향은 무엇인가. 왜 남의 나라에 와 타향살이하며, 고향을 그리워하는가.······ 이유는 단 한 가지. 지긋지긋한 가난을 털어내고 남부럽지 않게 살기 위함이었다.··· 각자 태어난 곳이 다르고 살아온 과정은 다르지만, 그들은 같은 목표 아래 이역만리 열사의 땅에서 만났다.     


  얼마 후 봉수한이 무거운 침묵을 깼다.

  “낮에 쓰러진 사람은 어떻게 됐나?”

  “깨어나긴 했는데 열사병이라 합디다. 야간작업 시간에 홍 기사와 천 기사가 하는 얘기를 들었네유.” 

  설경찬이 답했다.

  “그나마 다행이군.”

  “과부 하나 구제했네.” 

  윤창식이 한마디 보탰다.

  “우리 마누라는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석한풍이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정화수 받아놓고 정성 들이고 있을 거여.”

  비위 좋은 방현우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을 받았다.

  “얼래, 달력 당번 뭐 하는 기고?”

  윤창식이 손가락으로 달력을 가리켰다.

  “어허, 잘못했다간 22일 하루 더 살 뻔했구먼 그랴, 이―잉.”

  방현우가 달력으로 다가가 4월‘22일’에 큼지막하게 가위표를 했다. 

  “제대일이 며칠 남앗능교?”

  윤창식은 오던 날부터 제대 타령이었다. 

  “아니, 입대하자 제대하남? 윤 일병, 입대한 지 몇 년 됐는감?”

  설경찬이 쫑코를 줬다. 사방에서 낄낄대는 소리가 났다. 

  “제대하더라도 윤 씨는 나보다 한 달 후야.” 

  설경찬은 걸핏하면 한 달 선배 앞에서 까불지 말라는 식이었다. 

  “지에미, 겨우 한 달 가지고 더럽게 유세 떠네. 그렇지만 니는 연장할 거 아잉감? 나는 연장 안 할 테니 내 가고 난 뒤 열한 달 있다 오게나.”

  윤창식이 혀를 날름했다.

  “에헤, 윤 일병도 연장 안 하면 일 년 번 돈으로 부인 찾아올 수 있겠나?”

  설경찬의 반격에 윤창식은 말문이 막혔다. 


  시끌벅적한 대화 속에서 시계는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만 잡시다. 내일 전쟁에 대비해야지.”

  설경찬이 종례를 했다.

  “그래. 12시야. 불 끕시다.”

  “못다 한 말들은 뒀다가 주말에 하자고.”

  불이 꺼지고 근로자들이 잠을 청했다. 

  “마누라라 생각하고 베개들 꼭 껴안고 자랑께.”

  이때면 방현우가 늘 하는 말이었다.

  “···아아, 말랑말랑한 마누라 젖가슴 생각이 간절하구먼. 하나님은 왜 유방에 지퍼를 달아주지 않았을까나. 뗐다 달았다 할 수 있으믄 비개 안고 자지 않아도 될 텐디, 에궁.” 

  방현우가 꼴깍 침을 삼켰다.

  “야, 방가, 니 잘라카는데 딸딸이 좀 치지 말라카이. 그러잖아도 자꾸만 꼴리는데 말이재.”

  윤창식이 방현우를 욱 찔렀다. 

  “알았어. 그치만 샘은 퍼내야 마르지 안 능겨.” 

  “맞아, 내가 누구한테 들은 얘긴데, 거시기는 안 쓰면···”

  이번에는 석한풍이 끼어들자, 설경찬이 말을 끊고 방장으로서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이거 안 되겠군. 지금부터 입 여는 사람은 벌금 10리얄이요, 10리얄.”

  돈이 무섭긴 무서운지 벌금 얘기가 나오면, 입 벌리는 사람이 없었다.

이전 08화 폭염에 무너진 작업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