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칫거리 꼬마들

꼬마전구

  오후 업무 시작시간. 자재부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신 대리, 대체 그놈의 레미콘은 오는 거야, 마는 거야? 작업 준비는 다 해 놨는데 레미콘이 와야 뭘 어떻게 해 먹을 거 아닌가!!”

  1공구장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신 대리를 다그쳤다.

  “네? 레미콘이 아-안 왔단 말이에요?”

  신 대리가 말을 더듬었다.

  “오전 내내 목이 빠져라 기다렸지만, 소식이 깜깜이지 뭐야. 미치고 환장하겠다고!”

  “이놈의 새끼 정말 미치겠군.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라고 철석같이 약속해 놓고는······.”

  언제나처럼 신 대리는 업자에게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아놨던 터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공구장님. 다시 쫓아가 볼게요. 오후엔 골재장엘 가려고 했는데, 레미콘 공장을 먼저 들려야겠네요.”     

  신 대리가 손수건을 꺼내 식은땀을 닦았다. 그는 잊을만하면 업자가 약속을 어겨 그때마다 현장에서 닦달하는 통에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거래처를 바꿔도 봤지만, 이놈이나 그놈이나 거기서 거기니 대책이 서질 않았다.

  “왕형, 좀 더 찾아봐 줘요. 이거 없이는 물건을 제작할 수 없는걸.”

  워크숍 조 기사가 며칠째 부국을 졸라댔다.

  “조 기사 심정 충분히 알아요. 나도 잊지 않고 계속 찾고 있고. 그렇지만 다른 현장 일을 제쳐 놓고, 워크숍 일에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는 거 아뇨?”

  부국은 언제나 워크숍 청구 물품에 애를 먹었다.     

  “여 과장, 도착했다는 게 두 달이 돼가는데, 아직도 물건이 안 들어오니 어떻게 된 거요? 다음 주면 작업에 들어가야 하는데.”

  4공구 정 공구장이 다그쳤다.

  “공구장님 속 끓는 거 잘 알지만, 전들 어쩔 도리가 없네요. 한 달 반 동안 하역하느라 속이 숯검정이 됐는데, 이번에는 세관 놈들이 ‘인샬라’만 주절대니 속 터져 죽겠습니다. 얼굴이라도 자꾸 디밀면 낫겠거니 하고 2주일째 매일 세관 출근합니다. 오늘 오전에도 눈도장 찍고 왔고요.”     

  사우디는 물동량 폭증으로 화물 적체가 극심한 데다 사무처리가 지지부진해, 국산 자재 반입 업무를 하는 여 과장과 제3국 자재 담당 박 차장은 골머리를 앓았다. 뻔질나게 하역장과 세관을 찾아가 닦달하지만, 관리들은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렸다.     

  자재부 역할은 열차로 말하면 연료를 공급하는 일이다. 다섯 열차가 원활하게 굴러갈 수 있도록 신속하게 연료를 공급해야 하는데, 현장에서 요구하는 품목이 워낙 다양한 데다 급하게 몰아쳐서, 구매 요원들은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3공구는 웬 꼬마전구랑 워닝 램프를 그렇게 잡아먹나?”

  막 사무실에 들어서는 3공구장에게 최 소장이 말했다.

  포클레인으로 땅을 굴착하고 나면 관로를 따라 안전 펜스를 설치하는데, 1m 간격으로 꼬마전구를, 10m 간격으로 워닝 램프를 달게 돼 있었다.

  3공구장이 뜨거운 대기에 놀란 호흡을 가다듬고 땀을 닦으며 하소연했다.

  “정말 미치고 환장하겠습니다. 망할 놈의 꼬맹이들이 밤이면 전구 깨기 놀이를 하나 봐요. 아침에 나와 보면 돌멩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거든요. 새로 달아 놓아도 다음 날 아침이면 난장판이 돼 있으니 미칠 노릇이죠. 당장 내일 아침에 갈아 낄 것도 없다니까요.”

  “허 참, 보통 일이 아니구먼. 꼬마전구는 그렇다 쳐도, 워닝 램프는 개당 100리얄이나 하는데, 하루 열 개는 깨먹으니 돈이 얼마냐 말이야.” 

  이것은 비단 3공구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현재 3공구 시공 구간이 주택가라 먼저 매를 맞을 뿐, 다른 공구도 언젠가는 닥칠 일이었다.

  “밤사이에 일어나는 일이라 대책이 안 서네요."

  “그렇다고 매일 1,000리얄을 깨 먹고 있을 순 없잖나."

  "그러게 말입니다. 근데 뾰족한 수가 없으니······. 가정집에 들어가 부모에게 협조를 구할 수 있는 나라도 아니고.”

  "황당한 일이군. 어쨌든 깨지는 건 그때그때 갈아야 하니, 박 차장, 창고에 꼬마전구와 워닝 램프를 비축하도록 하게.”

  "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박 차장이 말했다.

  ‘제기랄, 꼬마들 놀잇감까지 쌓아 놔야 하니, 원.’      

  최 소장이 쓴 입맛을 다시며 혼잣말했다.

  그동안 예기치 못했던 일로 실행 예산이 연달아 펑크가 났다. 밑 빠진 독처럼 쏟아붓는 물값, 사막에서 돈을 쳐들이는 모랫값, 이번에는 꼬마들까지 최소장의 염장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