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평탄화에 이어 오늘은 관 연결 작업이었다. 필성, 방현우, 윤창식, 석한풍이 구부리면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초대형관 이음새 홈에 윤활유를 바르고 있었다.
“빈틈없이 꼼꼼하게 발라야 해요! 꼼꼼하게! 그래야 암놈이 잘 받아주지."
홍 기사는 질리지도 않는지 레코드판처럼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러던 중 그의 시선이 한 곳에 꽂혔다.
“방현우 씨, 또 요령 피울 거요?”
방현우가 붓을 내려놓고 몸을 펴는 걸 보고하는 말이었다.
‘이 씨팔, 또 지랄이네.’
방현우가 혼잣말로 투덜거리고는 대꾸했다.
“땀 좀 닦았소. 땀 좀 닦아!”
“일은 않고 종일 땀만 닦을 거요? 당신 혼자 땀이 나나?”
홍 기사가 혀를 찼다.
“저놈의 새끼, 둘째 동생뻘밖에 안 되는 놈이 걸핏하면 반말에 욕지거리야. 제 눈깔엔 아래위도 없나.”
방현우가 식식거리며 다시 붓을 들었다.
“원래 그런 놈이잖아. 어느 집 개가 짖냐 하고 말아.”
옆에 있던 석한풍이 소리 낮춰 말했다.
윤활유 칠이 끝나자 다음엔 홈에 고무링을 끼우는 작업이었다.
홍기사가 두 번째 레코드판을 돌렸다.
“비틀리지 않게! 1mm의 틈새도 나지 않게! 알지요!? 한 방울이라도 새면 도로 아미타불이야. 결국 당신들이 고달파지는 거라고.”
초대형관이다 보니 고무링이 비틀리거나 틈새가 생길 경우가 적지 않았다. 네 사람은 ‘하나’ ‘둘’ ‘셋’을 맞춰 외치며 조심스럽게 고무링을 밀어 넣었다. 윤활유가 잘 먹여진 덕분에 애먹지 않고 단번에 성공했다. 홍 기사의 까다로운 검사도 통과했다.
이제 관 연결 단계로 장비가 나설 차례였다. 봉수한이 관로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관 삽입 시 고무링이 이탈하지 않는지 살피는 게 그의 역할이었다. 나머지 작업자들은 관에 밧줄을 감아 동여맨 다음 관로 양편에 서서 한쪽씩 잡았다.
크레인이 관을 집어 올려 관로 안에 들여 넣고, 신호수인 설경찬의 깃발이 가리키는 대로 앞뒤 좌우로 조정하며 앉힐 자리를 더듬어갔다. 둑 양편에 선 작업자들은 밧줄을 당기고 늦춰주며 미세한 움직임을 도왔다. 마침내 정확한 위치를 잡자, 크레인이 관을 바닥에 내려놓은 다음 앞서 앉혀있는 관에 밀어 넣었다.
관 연결에 성공하자 작업자들이 물통으로 몰려갔다. 얼음물을 바가지 가득 퍼 올려 입안에 쏟아부었다. 싸~아, 이렇게 시원할 수가. 지옥 불에서 만난 생명수였다. 갈증을 해소하자 직원들 눈을 피해 식수를 온몸 여기저기에 끼얹어 댔다.
필성도 정제 소금을 풀어 단숨에 한 바가지 들이켰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에 으스스 몸서리가 쳐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금세 목이 타들어오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하루 반말은 마실 텐데도 대부분 땀으로 배출돼 소변볼 일이 거의 없었다.
배 터지게 마시고 나자, 이번에는 용수 통으로 갔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몸통에 끼얹고 머리에도 뒤집어썼다. 이내 갓 쪄낸 시루떡처럼 작업복과 머리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이젠 좀 살 것 같았다.
다음엔 꺼내 놨던 수건을 집었다. 흠씬 먹은 땀을 비틀어 짠 다음, 얼음을 싸서 머리에 얹고 키다리 모자를 눌러썼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땡볕에 머리가 뽑혀나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순간 필성의 눈이 번쩍했다. 저쪽에서 일하던 작업자가 픽 쓰러지는 게 아닌가!
“사람이 쓰러졌다! 사람이 쓰러졌어!”
그 옆에 있던 작업자들이 소리쳤다.
쓰러진 작업자는 입에 거품을 물고 사지를 늘어트린 채 바닥에 퍼졌다. 요동도 하지 않아 죽었는지 살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맹렬히 쏟아지는 햇살이 작업복에 피어난 소금 더께에 무심히 부서졌다.
홍 기사의 지시에 따라 두 명의 작업자가 들것을 가져왔다. 쓰러진 작업자를 싣고 두 명이 더 가세해 간식 운반용 승합차로 내달렸다.
“우리도 언제 저렇게 될지 모른당께.”
“그람, 장담 못 허지, 장담 못 혀.”
“죽지나 않았으면 좋겄구먼.”
“허 참. 그 지경에도 연장은 손에서 놓질 않았네.”
작업자들에겐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필성은 오늘 풀코스를 뛰었다. 정규 작업 8시간에 야간작업 6시간까지 14시간 작업을 소화한 것이다. 야간작업 4시간이면 1시간, 6시간이면 2시간의 보너스 시간이 주어지므로, 작업 일지에는 16시간이 올라갔다. 그중 야간작업 6시간은 정상 근무의 1.5배로 계산돼, 하루 수당으로 19불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