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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가지 않은 길 Jul 25. 2022

폭염에 무너진 작업자

연재 소설

  땅 평탄화에 이어 오늘은 관 연결 작업이었다. 필성, 방현우, 윤창식, 석한풍이 초대형관 이음새 홈에 윤활유를 바르고 있었다.

  “빈틈없이 꼼꼼하게 발라야 해요! 꼼꼼하게! 그래야 암놈이 잘 받아주지."

  홍 기사는 질리지도 않는지 레코드판처럼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러던 중 그의 시선이 한 곳에 꽂혔다.

  “방현우씨, 당신 또 요령 피울 거야?”

  방현우가 붓을 내려놓고 굽혔던 몸을 펴는 걸 보고하는 말이었다.

  ‘이 씨발, 또 지랄이네.’

  그가 혼잣말로 씨부렁대고는 대꾸했다.

  “땀 좀 닦았소. 땀 좀 닦아!”

  “일은 않고 종일 땀만 닦을 거요? 당신 혼자 땀이 나나?”

  홍 기사가 혀를 찼다.

  ‘저놈의 새끼, 둘째 동생뻘밖에 안 되는 놈이 걸핏하면 반말에 욕지거리야. 제 눈깔엔 아래위도 없나.’

  방현우가 식식거리며 다시 붓을 집어 들었다.

  ‘원래 그런 놈이잖아. 어느 집 개가 짖나 하고 말아.’

  옆에 있던 석한풍이 소리 낮춰 그를 다독였다. 


  한 시간가량의 작업으로 윤활유 칠이 끝났다. 다음은 홈에 고무링 끼우기. 연결 부위에서 물이 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홍기사가 두 번째 레코드판을 돌렸다.

  “비틀리지 않게! 1mm의 틈새도 나지 않게! 알지요? 한 방울이라도 새면 도로 아미타불이야. 결국 당신들이 고달파지는 거라고.”

  구경 1m짜리 초대형관이다 보니 자칫하면 고무링이 비틀리거나 틈새가 생겼다. 넷이 호흡을 맞춰가며 밀어 넣었다. 윤활유가 잘 먹여진 덕분인지 한 번에 성공했다. 홍 기사의 까다로운 검사도 통과했다.   

        

  이제 관연결 단계로 장비가 나설 차례였다. 봉수한이 관로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관 삽입 시 고무링이 이탈하지 않는지 살피는 게 그의 역할이었다. 나머지 작업자들은 관에 밧줄을 감아 동여맨 다음 관로 양편에 서서 한쪽씩 잡았다. 기다리고 있던 크레인이 관을 집어 올려 관로 안으로 들여다 넣고, 신호수인 설경찬의 깃발이 가리키는 대로 앞뒤 좌우로 조정하며 앉힐 자리를 더듬어 갔다. 둑 양편에 선 작업자들은 밧줄을 당기고 늦춰주며 미세한 작업을 도왔다. 마침내 정확한 위치를 잡자, 바닥에 내려놓은 다음 앞서 앉혀있는 관에 밀어 넣었다.    

 

  관 연결에 성공하자 작업자들이 물통으로 몰려갔다. 앞다퉈 바가지로 얼음물을 퍼 올려 입안에 쏟아부었다. 지옥 불에서 만난 생명수와도 같았다. 갈증을 해소하자 직원들 눈을 피해 물을 몸통에도 끼얹고 머리에도 뒤집어썼다.

  필성도 정제 소금을 풀어 단숨에 한 바가지 들이켰다. 얼음물이 뼛속까지 파고들어 으스스 몸서리가 쳐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금세 목이 타들어오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하루 반말은 마실 텐데도 대부분 땀으로 배출돼 소변볼 일이 거의 없었다.

  이번에는 용수 통으로 갔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거푸 물을 몸에 쏟아부었다. 이내 갓 쪄낸 시루떡처럼 작업복과 머리 위로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다. 이젠 좀 살 것 같았다.

  다음에는 꺼내 놨던 수건을 집었다. 흠씬 먹은 땀을 비틀어 짠 다음, 얼음을 싸서 머리에 얹고 키다리 모자를 눌러썼다. 


  필성이 모자에서 손을 뗀 순간 눈이 번쩍했다. 저쪽에서 삽질하던 작업자가 그 자리에 픽하고 쓰러지는 게 아닌가!

  “사람이 쓰러졌다! 사람이 쓰러졌어!”

  그 옆에 있던 작업자들이 소리쳤다.

  쓰러진 작업자는 입에 거품을 물고 사지를 늘어트린 채 바닥에 퍼졌다. 요동도 하지 않아 죽었는지 살았는지 짐작이 안 되는데, 맹렬히 쏟아지는 햇살만 작업복에 피어난 소금 더께에 무심히 부서졌다.

  홍 기사의 지시에 따라 두 명의 작업자가 달려가 들것을 가져왔다. 2명이 더 가세해 쓰러진 작업자를 들것에 싣고 가 간식 운반용 승합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우리도 언제 저렇게 될지 모른당께.”

  “그람, 장담 뭇 허지, 장담 뭇 혀.”

  “죽지나 않았으면 좋겄구먼.”

  “허 참. 그 지경에도 연장은 손에서 놓질 않았네.”

  바라보던 작업자들이 한 마디씩 던지며 혀를 찼다.    

 


                                                        

  오늘 필성은 풀코스를 뛰었다. 정규 작업 8시간에 야간작업 6시간까지 14시간 작업을 소화한 것이다. 야간작업 4시간이면 1시간, 6시간이면 2시간의 보너스 시간이 주어지므로, 작업 일지에는 16시간이 올라갔다. 그중 야간작업 6시간은 정상 근무의 1.5배로 계산돼, 하루 수당으로 19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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