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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가지 않은 길 Jul 22. 2022

전투 같은 하루하루

연재소설

  포클레인 굉음이 요란하다. 작업장 곳곳에 '건강한 몸으로 김포에 내리자!'는 팻말이 서 있다. 포클레인이 지난 뒤로 폭 4m 깊이 3m 정도의 관로가 생겨나고, 거기서 퍼 올린 흙이 관로를 따라 길게 둑을 이루었다.


  관로 안에서는 작업자들이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삽질을 하는데, 그들의 차림새가 가관이다. 도대체 이런 더위에 왜 그렇게 작업복은 껴입고 있는지? 머리 위에는 주방장을 연상케 하는 키 높은 모자가 올라앉았고, 얼굴은 두 눈과 콧구멍만 남겨놓고 두건을 뒤집어써 영락없는 산적 모습. 그 꼬락서니에 선글라스를 턱 걸치고 있으니, 어느 나라 패션인지 짐작이 안 간다.

  모두 불길 같은 햇볕과 타는 듯한 열기를 막기 위한 장치이니, 그중에서도 작업복은 피부가 바깥공기에 노출돼 화상을 입지 않도록 막아주는 방패막이다.


  작업은 두 파트로 나뉘어 진행됐다. 2, 3공구는 시내 간선도로에서 구경 300mm 관을 매설하고, 4, 5공구는 취수장에서 펌핑 스테이션을 거쳐 담맘시 경계까지의 구간에 1m 초대형관 매설 작업을 맡았다.


  4공구는 같은 작업을 하는 5공구보다 작업 진도가 훨씬 빨랐다. 5공구는 하루 평균 60m 작업도 버거운데, 4공구는 65m 이상을 거뜬히 소화해 냈다. 승부욕이 강한 4공구 정 공구장은 5개월로 잡힌 공사를 4개월에 끝내겠다며 연일 강행군을 이어갔다.  

  4공구 현장. 홍 기사와 천 기사가 관로 벽을 따라가며 측량기 레벨에 맞춰 줄을 치고, 그 뒤를 이어 삽과 곡괭이를 든 작업자들이 줄 높이에 맞춰 바닥을 평평하게 고르고 있었다.


  그 틈에 끼어 삽질하는 필성은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지난밤에 옆 침상 곽 씨의 코 고는 소리에 밤을 꼴딱 새웠기 때문이었다. 탱크 소리로 통하는 곽 씨의 코골이는 숙소를 흔들어 댈 정도로 엽기적이어서, K동 근로자들은 밤마다 악전고투를 벌여야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들은 취침 규칙을 세워, 곽 씨는 다른 사람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제일 나중에 자기로 했다. 작업자들은 일단 잠이 들면 호랑이가 물어가도 모르게 곯아떨어지니 탱크 소리도 문제 될 게 없으니까. 그 대신 그가 기다려 주는 골든타임을 놓치면 그날은 혹독한 밤을 치러야 했다.


  필성이 그 희생양이 됐다. 평소에 곽 씨가 셋집 주인을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난밤 따라 그에게서 그놈의 영감태기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르며, 셋방살이 설움이 속을 뒤집어 놨다.


  작년 10월. 전세 계약 만기까지 한 달 남짓 남았을 때였다. 집주인이 들이닥쳐 폭탄선언을 했다.

  "보증금 150만 원을 200만 원으로 올려야겠소."

  순간, 필성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꺼번에 50만 원 싹이나......?

  그는 집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뻔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인간적으로 하소연했다.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어떻게 구합니까. 없는 사람 사정 좀 봐주셔야죠.”

  역시나, 돌아오는 은 냉담했다.

  “그럼 지난 1년 동안 어렵사리 모은 돈 20만 원이 있으니, 170만 원으로 봐주시면 안 될까요?”

  필성이 다시 선처를 구했으나 영감은 냉소적이었다.

  “그런 흥정은 남대문시장에나 가서 하시오.”

  “네? 뭐라고요?”

  필성은 그만  말을 잃었다...... 그렇다고 산통을 깰 수는 없는 처지. 아직 아쉬운 말이 남아 있으니 어쩌겠는가.

  “말씀이 너무 심하십니다. 정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죠. 어떻게든 빚을 내서라도 200만 원을 채우겠습니다. 대신 전에 말씀드린 보일러를 고쳐 주세요. 방이 냉방이라 어른은 그렇다 해도 어린 자식이 불쌍해서 그럽니다.”

  “이젠 새끼까지 팔아먹네. 불편하면 사는 사람이 고쳐 쓰슈. 난 알 바 아니요.”

  “보증금도 올리고, 재계약이니 새로 들어오는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주인댁에서 고쳐 주셔야지요.”

  필성은 정당한 요구를 하면서도 목소리가 기어들고 있었다.

  “그거 고쳐 주려고 보증금 올리는 줄 아슈? 재계약을 해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지 뭐가 달라진다고 그래. 전세금 올리는 것도 불만, 보일러도 불만, 그렇게 불만이 많으면 딴 집을 알아보슈. 들어올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집주인이 입장이 곤란하면 내미는 비장의 무기였다.

  "새 세입자를 받더라도 냉방 상태로 계약하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그러지 마시고 없는 사람 돕는 셈 치고 한 번만 살펴주세요."

  필성은 애써 분노를 삼키며 최대한 예의를 갖춰 사정했다.   

  “남의집살이 하는 주제에 웬 말이 그렇게 많아. 구구로 살기나 할 것이지. 결정해서 이번 주 내로 통보해 주슈.”

  그는 긴말하기 싫다며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필성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뭐라고? 남의집살이 하는 주제니 구구로 살라고? 새끼까지 팔아먹는다고!? 터진 입이라고 말이면 다 하나.'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이 망할 놈의 영감탱이, 아가리를 찢어버릴 테다.'

  한데 영감은 이미 저만치 가고 있었다. 그때 왜 쫓아가서 얼마 남지 않은 머리털을 뽑아놓지 못했는지······.


  그런 수모를 당하고 그놈의 집에서 살 수는 없는 일. 아내에게 당장 이사하자고 씩씩거렸다. 그동안 집주인과 이런저런 문제로 부딪칠 때가 많아, 성질대로 하자면 벌써 열 번은 이사했을 터였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아내의 주장은 달랐다. 보증금이야 나중에 돌려받지만, 이사하면 복비며 이사 비용은 길에다 뿌리는 거라는 논리였다. 그 돈이면 보일러를 고치고도 반은 남으니, 눌러살자고 했다.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할 말 다 하고 사느냐고 남편을 달랬다.

  그가 아내에게는 언제나 약했다. 사실 냉정히 생각하면 아내 말이 옳았다. 사방에서 빚을 내 아내가 재계약을 하고 왔다.


  ‘돈이 웬수다. 돈이 웬수야. 앞으로 몇 년이 됐던 내 집 마련할 때까지는 이 사막을 떠나지 않으리라.’

  엎치락뒤치락하다 보니 골든타임을 놓쳤다. 잠을 자야겠는데 옆에서 탱크 소리가 끔찍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를 틀어막고 갖은 애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

  기상 시간이 다 돼 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집주인과 주먹질을 하며 싸우고 있었다. 영감탱이 멱살을 움켜잡고 아구창을 돌려버리려는 순간, 하필이면 그때 기상 벨이 울려 산통을 깨버렸다.


  30분이나 잦을까. 잠을 설쳤으니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게 눈꺼풀이라더니, 납덩어리를 매달아 놓은 듯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평소에는 신체 일부나 마찬가지인 삽이 무쇠 덩어리 같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진 필성 씨! 뭐 하는 거요! 일을 하는 거야, 마는 거야!"  

  홍 기사의 불호령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선 채로 졸았던 것이었다.

  "그렇게 울퉁불퉁하게 고르면 관이 제대로 자리를 잡겠소? 줄에 맞춰 평평하게 다듬어야지! 평평하게!!”

  필성이 눈을 부릅뜨고 삽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보지만 삽과 손이 따로 놀았다. 독살스런 햇살은 오늘따라 더 맹렬히 쏘아댔다······ ‘건강한 몸으로 김포에 내리자’는 팻말 옆에 서 있는 시곗바늘은 고장 난 듯 움직일 줄 몰랐다. 석진풍이 도와주는 덕분에 필성은 겨우겨우 작업을 이어갔다.


  오침 시간이 그를 구했다. 3분 경기 후 1분간의 휴식 시간에 죽어가던 복서가 살아나듯, 2시간을 정신없이 퍼질러 자고 나니 한결 살 것 같았다. 오침 시간이 없으면 이곳 근로자들은 모두 짐을 싸서 귀국 비행기에 올랐으리라.


   오후에는 땅 평탄화 작업이 끝난 관로 바닥에 모래를 덮는 2차 정지 작업에 들어갔다. 앞 작업자들이 삽으로 모래더미를 헤쳐 놓으면, 뒤따르는 작업자들이 쇠스랑과 갈퀴로 평평하게 빚었다. 맨바닥을 고르는 것보다 수월해 오후 들어 한층 기승을 부리는 햇살도 견딜 만했다. 홍 기사도 입에 사탕을 물려놓은 아이처럼 조용했다.


  저녁 식사 사이렌이 울리고 작업자들이 관로 밖으로 나왔다. 석진풍이 필성을 잡아끌어 관로 바닥을 가리켰다.

  “호수처럼 반반한 게 마치 모래 카펫을 깔아 놓은 것 같지 않아?”

  “그러게 말이야. 저 모래 카펫을 침상으로 수도관이 눕겠지.”  

  그들은 힘들여 이루어놓은 자신들이 작품이 대견스럽기만 했다.   



  

  정규 작업이 끝났지만 하루 작업이 끝난 건 아니었다. 저녁 식사 후 야간 잔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잔업은 하루 4시간, 많게는 6시간까지 주어졌다. 필성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지만, 몸을 추슬러 동료들을 따라나섰다.  


  잔업 수당은 정규 작업의 1.5배인 데다가 보너스 시간까지 얹어주므로, 몸이 고달파도 누구나 잔업에 참여했다. 시간당 수당이 기술자는 1.70불 잡부는 1.00불로, 잡부의 경우 야간작업을 뛰어야 월 20여만 원 돈을 만질 수 있었다. (원 달러 환율 500:1)  


  사막도 작업자들을 죽일 작정은 아닌가 보다. 해가 떨어지고 나면 그 무서운 더위가 거짓말처럼 성깔이 죽으니 말이다. 밤 11시까지 알뜰히 몸을 부린 끝에 낮에 하다 남은 모랫바닥 정지 작업을 마무리했다.

  돈이 아무리 궁해도 혼자라면 잔업까지는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기에 덩달아하다 보면 버거운 나날을 버텨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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