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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가지 않은 길 Aug 27. 2022

수당 지급일

연재소설

  첫 번째 수당 지급일. 근로자들은 수당 명세서를 보고 또 봤다.

  "일할 땐 죽을 맛이지만, 돈 받을 땐 천국이 따로 없네!“

  “230,500원. 이런 식으로 4년만 하면 쬐끄만 집 한 채 사지 않겠능교.”

  “그렁게 아무리 힘들어도 견뎌내야야 혀.”

  “어 이 사람, 종이에 구멍 나것구먼. 자꾸 들여다본다고 늘어난다냐?”

  모처럼 근로자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국내 있을 때는 통장에 이만한 돈이 남아 있던 적이 없었기에, 여섯 자리 숫자가 뿌듯하고 신기하기까지 했다. 


  “봉형, 얼마 나왔수?”

  필성이 자신의 명세서를 보이며 물었다.

  “아우나 나나 똑같이 했는데 다를 게 뭐 있겠나? 230,500원. 똑같구먼 그래.” 

  “그러네요.”

  필성이 멋쩍게 웃으며 손바닥만 한 종이를 고이 접어 수납장에 넣었다.

  “국내서도 여기서처럼 죽자고 일하면 이 돈 벌 수 있잖우?”

  옆에서 방현우가 끼어들었다.

  “사람 참, 국내에서는 어디 일거리가 그렇게 있는가? 노는 날이 더 많을 때도 있는걸. 있다 쳐도, 밤낮 가리지 않고 쇠 빠지게 일하겠나? 여기선 뭐 딴생각 못 하지. 다 같이 죽어라 하니까 덩달아 몸 쓰는 거 아닌가.”

  30대 중반인 봉수한의 눈가에는 벌써 주름살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자영업에 실패해, 노가다 판으로 들어섰다는 그만의 사연이 얽혀있을 터였다.  

  “맞는 말이유.”

  필성과 방현우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지만 국내에서는 벌어도 어디 돈이 모이나? 친구 만나고, 술 마시고, 나들이 가고, 물건 사들이고, 그러다 보면 적자 나기 십상이지.” 

  “그래요. 국내에서는 돈이 고이질 않아. 여기서는 쓸래야 쓸데가 없으니.”  

  “그래서 감옥살이를 자청한 거지. 이곳에 있는 동안은 친구도 없고, 술도 없고, 놀이도 없고, 마누라 엉덩이도 못 만져보고, 인생의 시계가 멈춰 있는 걸세.”

  “제기랄, 언제까지나 이 모양 이 꼴로 살 수 없어 왔지만, 한 번 가면 다시 못 올 청춘을 팔아야 하니······.”

  방현우가 고개를 쳐드는 거시기를 주물럭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그렇다고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잖나.”

  봉수한이 세면도구를 챙겨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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