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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가지 않은 길 Dec 19. 2022

암반의 습격

중동진출 업체들의 고전

  6월 중순 어느 날. 4공구 현장이 여느 때와는 딴판이었다. 포클레인과 삽, 괭이는 뒷전으로 물러나고, 귀가 먹먹한 소음 속에 작업자들이 착암기를 들이대고 바위를 깨고 있었다.

  “자네 말대로군.”

  최 소장이 정 공구장에게 말했다.

  “하~아, 썩어질 놈의 암반이 어디까지 갈는지 알 수가 있어야죠.”

  4공구가 맡은 1M 관 8.75km 구간 중 5.12km 작업이 진행 중인 상태였다.

  “이놈의 암반과 씨름하느라 진도가 나가야죠.”

  “그러게 말일세··· 어떻게 지원해주면 되겠나?”

  최 소장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지금은 나눠서 작업을 하지만 모두 암반에 들러붙어야 하니까 착암기 60대는 있어야죠. 치즐(착암기에 끼어 바위를 깨는 데 사용하는 쇠막대)은 일단 150개 정도는 쟁여 놔야겠습니다.”

  “알겠네. 즉시 조치하도록 하겠네.”

  이제까지도 굴착 중에 간간이 바위가 나왔고, 그중에 암반을 품고 있는 바위도 적지 않았다. 그러다가 금세 모래땅으로 바뀌었는데 이번에는 얘기가 달랐다. 지질 검사 결과 확인된 것만도 200m에 달했다.

  “너무 걱정 말게나. 죽으라는 법은 없어.”

  최 소장이 답답한 속내를 숨기고 정 공구장을 위로했다.

             



  캠프로 돌아온 최 소장이 사무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말했다.

  “박 차장. 착암기 60대, 치즐 150개. 오늘 중으로 투입하게나.”

  “어휴, 그렇게나 많이요?”

  박 차장이 최 소장 얼굴을 보며 말했다.

  “상황이 심각한가 보죠?

  “대형 암초에 걸렸어. 한시가 급하게 됐네. 우리에게는 시간이 돈이야. 공기 내에 마치지 못하면 지체 보상금을 물어야 하는 거 알고 있지? 한 달에 50만 불이나 돼.”

  “알고 말고요, 소장님. 즉시 조치하겠습니다.”

  박 차장이 수화기를 들어 중기부 다이얼을 돌리며 답했다.  

  최 소장의 눈길이 벽에 붙어 있는 작업 현황표로 향했다. 작업 진도를 나타내는 다섯 개 막대 중 4공구 막대가 두드러지게 길었다. 제일 잘 나가던 공구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었다.      


  그에게는 하루하루가 전투였다. 병사들을 이끌고 적진을 향해 나아가는 지휘관처럼, 그는 수십 명의 직원과 수백 명의 근로자를 지휘하며 대공사를 이끌었다. 행군 중에는 물살이 거센 강이나 험준한 산 같은 장애물이 있게 마련. 그는 일찌감치 물값에 혼쭐이 나고, 모래로 날벼락을 맞았다, 잡비 정도로 여겼던 워닝 램프까지 떡하니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거대 암반지대가 갈 길이 바쁜 그의 앞에 버티고 선 것이었다.




 공사에 관한 소장의 문제는 또한 무길의 문제이기도 했다. 무길이 담맘 현장에 발령 났을 무렵, 회사는 일반 공모로 100% 유상증자를 함으로써 기업을 공개했다. 또한, 증자분 중 10%를 우리 사주에 할당해 액면가에서 20% 할인한 가격에 배정하고 주금은 매달 급여에서 공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우리 사주를 인수하면 주주, 즉 국제개발의 주인이 돼 회사와 운명을 같이 하게 된다. 회사가 수익을 내면 배당금을 받지만, 적자가 나면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회사가 도산하면 투자금을 건질 수 없다.     


  직원들은 20% 할인에도 불구하고 뒷담화로 이 조치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다. 중동 건설은 위험 부담이 큰 사업으로 회사의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데, 우리 사주 인수가 자유의사라고는 하지만, 마지못해 응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무길은 중동 건설을 블루 오션이라 믿었기에 하늘이 내린 절호의 기회라며 환호했다. 주금은 매달 급여에서 공제하므로 가진 돈 없이도 욕심껏 받을 수 있으니 금상첨화였다.

    

  아내도 월급쟁이를 탈출할 좋은 기회라며 발 벗고 지원에 나섰다. 국내 급여의 2.5배인 해외 급여 중, 0.5만으로 살림을 꾸려갈 테니, 우리 사주에 2.0을 투자하라고 독려했다. 무길이 앞으로 아기도 태어날 텐데 가당치 않은 얘기라 해도 아내는 한사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부부는 해외 급여 대부분을 투자하기로 해, 우리 사주에 불만인 동료들의 배정분을 넘겨받아, 전체 주식의 1%에 달하는 지분을 확보했다.     


  이렇게 해서 담맘 공사는 회사의 운명이 걸렸을 뿐만 아니라, 무길의 미래를 좌우하는 조타수가 됐다. 그러므로 물, 모래, 꼬마전구에 이어 대형 암반지대 출현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건 말할 나위가 없었다.




  무길과 허기사를 실은 차가 6월 중순의 아라비아 사막을 달리고 있었다. 태양은 이글이글, 모래밭은 지글지글, 저 멀리서 천연가스를 태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사막을 가로질러 끝 간 데를 모르게 뻗어 있는 아람들이 송유관, 모래벌판에 걸레처럼 널려 있는 모르타르,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달리 눈에 들어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고산 윤선도가 이곳에 머물렀다면, 이 다섯 가지(태양, 모래밭, 검은 연기, 송유관, 모르타르)로 오우가를 어떻게 노래했을까. 시인의 눈으로는 이런 삭막한 속에서도 낭만적인 시를 빚어낼 수 있을까?   

  

  거무칙칙한 모르타르 조각들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타이탄의 속도 게이지가 300km를 가리키고 있었다. 계기판 숫자에 놀란 허기사가 속도를 늦추고 허허한 모래벌판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런 황무지에서 기름이 나지 않았으면 어찌 됐을까요?”

  “글쎄요. 사우디라는 나라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냈겠지요.”

  무길은 초등학교 시절에‘아라비아 사막이 아무리 넓어봤자 우리나라 섬 한 개만큼도 쓸모가 없는 거죠?’라고 선생님께 질문했던 일이 생각나 멋쩍게 웃었다.

  “그놈의 돈이 뭔지. 돈 때문에 아프리카 오지만도 못한 나라에 와 있네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기꺼이 택한 거지요.”  

   

  허 씨가 이번에는 사우디 3대 불가사의를 늘어놨다. 첫째, 들은 바에 의하면 이곳도 겨울이 있어서 잘 때는 히터를 틀어야 한다니 희한한 일이고, 둘째, 구더기가 자랄 곳이 없는데 그 많은 파리 떼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는 일이고, 셋째, 풀 한 포기 구경하기 어려운 사막에 들개가 돌아다니는 것도 신기한 일이라며, 궁금증을 풀고 싶은 눈치였다.

  무길은 “그러게 말입니다.”하고 웃음으로만 답했다. 사막의 극심한 일교차로 인한 겨울 얘기만 빼고는 그에게도 불가사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전 국토가 모래로 덮여있는 나라에서 한꺼번에 60대나 되는 착암기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자재골목에 공구상이 세 집 있는데, 알 호잔에는 재고가 13대 있었고, 두 번째 가게에는 10대, 세 번째 가게에는 5대에 지나지 않았다. 최소한의 물량은 남겨놔야 한다는 상인들에게서 빼앗다시피 싹쓸이했지만, 필요한 숫자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착암기가 부족하면 부족한 수만큼의 작업자가 손을 놓고 있어야 할 판이었다.

  자재골목 외에 시내에 공구상이 둘이 더 있는데, 하나는 동쪽 끝에 다른 하나는 서쪽 끝에 있었다. 시내를 왕복하며 동쪽 공구상에서 11대, 서쪽 공구상에서 9대의 물량을 늘려, 총 48대를 확보했다. 나머지 부족한 숫자를 채우려면 다란까지 쫓아가야겠지만, 일몰 시각이 가까워 이제는 치즐 구매를 서둘러야 했다.     


  자재골목으로 돌아와 철물점으로 달려갔다. 포인트 치즐(끝이 뾰족한 것) 75개와 플랫 치즐(끝이 납작한 것) 75개를 요청하니, 가게 주인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게 많은 물량은 야외 창고에서 가져와야 할 형편이라, 시간이 없는 무길은 점원을 따라 야외 창고로 달려갔다.

  창고에 도착하자 점원과 허기사, 무길이 팔을 걷어붙이고 치즐을 싣기 시작했다. 무거운 쇳덩어리라 한 번에 세 개 이상 운반할 수 없는데 물건이 창고 안쪽에 쌓여 있어서 일이 더딘데, 쌀라 타임은 성큼성큼 다가왔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으로 눈을 뜰 수 없고 숨은 턱에 찼다.······ 반이나 실었을까. 해가 지평선 아래로 얼굴을 숨기자 우렁찬 아잔 소리(예배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시가지에 울려 퍼졌다.


  알라호 아그바르

  알라호 아그바르 아샤하도 안라 일라 하 일라 알라

  아샤하도 안 모함 아단 리술루 알라······     


  그들은 탈진해 일제히 창고 바닥에 너부러졌다. 옷에서는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몸은 걸레처럼 늘어졌다. 물에 빠졌다 나온 세 마리 생쥐였다.




  거대 암반지대 출현 소식은 날개가 돋쳐 순식간에 한국증권시장까지 날아갔다. 그로 인해 대형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추측이 난무하며, 국제개발 주가는 액면가 5,000원에도 한참 못 미치는 3,000원 대까지 폭락했다.


  이제 우리 사주는 애물단지가 됐다. 직원들은 행낭에 담겨오는 신문에서 주가를 확인하며 투자금을 얼마나 건질 수 있을지 전전긍긍했다. 한편 무길에게 우리 사주를 양도한 이들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주가 하락은 비단 국제개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중동 진출 업체들의 고전 상황은 마찬가지였으니 말이었다. 찜통더위 대비에만 몰두했다가, 미지의 땅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지뢰밭을 만나 속수무책이었다. 너나없이 건설주는 추풍낙엽이었고, 중동 건설은 무모한 도전이라는 비관론자들이 한층 목청을 높였다.




 7월 중순. 살인적인 더위로 파리 떼마저 사라졌다. ― 지내 놓고 보니 본격적인 더위 동안은 파리가 종적을 감췄다가, 어느 정도 더위가 누그러지면 다시 나타났다.     


  용광로처럼 달궈진 모래밭에서 4공구는 한 달 가까이 암반과 혈투를 벌였다. 밤낮없이 덜덜 대는 착암기소음이 귀청을 찢어댔고 피어오르는 먼지가 하늘을 가렸다.    

  다음 날 자고 일어나서도 작업자들은 귀가 먹먹했다. 손바닥이 갈라지고 짓물렀다가 나중에는 굳은살이 박였다.      


  정공구장은 작업진척이 늦어져 안절부절못하고, 최소장은 공사 지연도 그렇거니와 물먹는 하마처럼 돈을 잡아먹는 공사비로 머릿속이 납덩이가 든 것처럼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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