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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지 않은 길
Mar 07. 2023
열풍이 있던 다음 날. 염 부장과 임대리가 허겁지겁 다란 공항에 도착했다. 회사에서는 아침부터 태국 근로자들이 보이지 않아 황당했는데, 모두 공항에 나와 있다는 콰이의 전화를 받고 달려온 것이었다. 그들은 짐 꾸러미를 옆에 놓고 공항 대기실에 모여 앉아 있었다.
어떻게 공항까지 왔는지 어리둥절해하는 두 사람에게, 히치하이크(지나가는 자동차를 얻어 타는 것)로 몇 명씩 나눠서 왔다며 으스댔다.
그들은 무조건 귀국하겠다며 비행기 표를 끊어 줄 것을 요구했다.
“대체 이유가 뭐요?”
염 부장이 물었다.
“일이 너무 고돼서 할 수 없소이다.”
콰이가 그들을 대표해 말했다.
“당신들은 한국 근로자들과 같은 시간 일을 하고 있소. 당신들이라고 작업 시간이 더 길지 않단 말이요.”
“한국인들보다 작업 시간이 길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뭐가 불만이란 말이요? 한국 근로자들은 아무 불평 없이 일하고 있지 않소?”
“한국인들이 어디 사람이요?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무쇠 덩어리가 아니란 말이오.”
일이라면 자신 있고 자기 나라도 이곳 못지않게 덥다던 자들이었다. 늦고생 않으려고 집 팔아서 왔다는 자들이었다. 그들이 힘겨워한다는 말은 현장으로부터 들었지만, 그래도 잘 견뎌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주일 만에 이 꼴이 났다.
“좋소이다. 정 원한다면 귀국시켜 주지요. 하지만 좀 더 냉정히 생각해 봐요. 중도 귀국을 하면 왕복 비행기 요금을 물어야 하는 건 알고 있지요? 보증금에서 공제되는 것이요. 뿐만 아니라 여기 오기 위해 브로커에게 준 돈도 적지 않았을 거고. 그런 손실을 당신들이 모두 감당해야 하는 거요. 집 판 돈이 거의 다 날아갈 텐데 그래도 괜찮단 말이요?”
“그래도 할 수 없는 일이요. 그게 여기서 일하다가 죽는 거보다는 나으니까요. 어제 같은 날은 정말, 열풍에 말라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오.”
염 부장은 할 말을 잃었다.
어떡해야 하나. 이 철부지들을. 머릿속이 삼각지 로터리처럼 복잡해졌다.
그래도 회사는 그들을 필요로 했다. 그간 작업 실적으로 봤을 때 태국인 두 명이 한국인 한 명 정도의 작업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들을 잡기 위한 당근이 필요했다.
“너무 힘들어 그렇다고 하니, 작업 조건을 완화해 주면 다시 생각해 볼 의향이 있소?”
“솔직히 너무 덥고 힘들어서 덧정이 없소이다. 하지만 우리도 돈 벌려고 집까지 팔아서 왔으니, 감당할 수 있는 정도라면 다시 생각해 보겠소이다.”
“알았소. 하지만 한국 근로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우려가 있으니, 당신들 요구대로만 할 수는 없는 일이요.”
염 부장은 그들을 달래기도 하고 겁도 줘가며, 오랜 줄다리기 끝에 다음과 같은 합의를 끌어냈다.
1. 하루 작업 시간은 8시간을 초과하지 않는다.
2. 오후에는 작업을 부여하지 않는다. 대신 야간작업으로 충당한다.
3. 모래바람이나 열풍이 있는 날은 온종일 휴무한다.
4. 기상 시간과 취침 시간, 휴일은 한국 근로자들과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