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슬붕이 Apr 10. 2024

사는 게 고통이라는데...

학교는 행복하기 위해 간다고 한다.

2023년 7월은 초등학교 교사라면 마음이 크게 한번 부서지는 경험을 한 특별한 여름이었다.


내 직업은 초등학교 교사다.

공립학교 교사는 국가직 공무원이다. 몇 년 전 서울특별시 지방직 공무원으로 전환된다 그러더니 아직은 아닌가 보다.

공무원은 파업권이 없고 정치적 중립의 의무가 있다. 단체행동권이 없고 겸직 또한 안 된다.

성실의 의무, 청렴의 의무, 품위 유지의 의무, 복종의 의무, 비밀 유지의 의무...

 

그런데 이 많은 의무와 함께 보장되는 권리는 너무 적다. 교권이라는 게 있긴 한데 최근 몇 년간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묻고 싶을 정도다.

인간다움을 누리기 위해 직장인에게 주어지는 최소한의 연가, 병가도 나라의 눈치를 봐야 한다.


속상하다... 아프다면 아프고 지금도 병원 가면 몇 주 동안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서가 나온다.


옆에서 누가 내 이름만 불러도... "000 선생님~" 이렇게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철철 나는 어려운 시기는 이 직종을 가진 사람들에게 흉터나 딱지처럼 마음과 영혼에 박혀 있는 흔한 상흔이다. 잘 지내다가도 어떤 계기가 있고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생각과 꿈만 꾸어도 하루가 괴롭고 속이 뒤틀린다. 일종의 PTSD다.


공무상 재해라는 것으로 참 인정받기 힘들다. 비싼 정신과 진료와 상담을 받으면서 이 직업을 유지하는 선생님들이 꽤 많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다.


난 아들 덕분에 가끔 부모상담의 명목으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중증 자폐를 가진 아들 양육이 힘들어서 멘털이 바사 부서지는 일상에 직장 일이 얹어지면 감당하기 힘들다.


지금 근무하는 직장분들은 교원이든지 교직원이든지 학교 그늘 속에 계신 분들은 정말 경이로우리만큼 착한 사람들이 많다. 어렵고 일 많고 말 많아 더 힘들었던 직장도 있었지만 지금 만큼 직장의 구성원 모두가 아름답고 가슴 설레도록 좋은 경우는 만나기 쉽지 않 이번 해가 행복하고 현재 그 감사함은 현재진행형이다.

작은 학교라 업무가 많고 지쳐서 눈 뜨고 일어나기 힘든 도 있었지만 그래도 작은 규모의 대체로 순둥순둥한 아이들, 많이 배우셨지만 겸손하신 학부모님들, 각자 개성은 강하시지만 모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여서 감사한 하루하루 살아가다 7월 18일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처음 소식을 접한 곳은 직장 카톡방이었다.

"어... 정말이요? 진짜예요?"

서울 강남서초교육청 관내에서 저경력의 1학년 선생님이 교실에 딸린 창고에서 생을 마감한 일이 일어났다. 소식을 듣고 그곳에서 근무하신 적 있다는 선생님 말씀을 들었다. 7월 19일에서야 인터넷과 지상파 뉴스에 사건 관련 보도가 있었다.


7월 19일 강남역 부근의 피부과에 갔었다. 내가 방문한 병원과 불과 수백 미터 거리에 있는 학교에서 막내 여선생님은 주검으로 견되었다. 학교에 차는 있지만 출근하지 않은 선생님을 찾은 곳은 교실 칠판 옆 쪽문이 달린 창고였고 최초 발견자는 그 학교 교직원라고 전해졌다.


직장 공사를 위해 다른 학교들보다 1주일에서 보름 정도 일찍 시작된 방학이라 나는 여유로웠고 직장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이 지내다 직장 카톡방에서 사건 소식을 전해 듣고는 할 말을 잃었다.

전날 찾았던 강남역을 다음날인 7월 20일 오전, 추모를 위해 찾았다. 쉼 없이 쏟아지는 땀방울에 시술 자리가 따끔거렸지만 신경 쓸 수 없었다.


학교 주변 상가를 돌고 돌았지만 꽃집이 안 보였다. 강남역이 생소한 데다 당연히 아파트 밀집지역인 그 주변 상가에 꽃집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검은색 긴팔 정장을 입었지만 덥다는 걸 느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결국 학교 앞 무료로 나눠주는 국화 한 송이와 준비해 간 포스트잇 네임펜으로 고인을 추모했다.

학교 정문부터 후문까지 근조화환이 학교를 2겹으로 두르고 있고 취재진, 이른 추모객들이 모인 시점, 하루 일찍 방학에 들어가서 오전 11시가 넘은 시간 학생들까지... 내가 목격한 건 이제 막 시작된 추모의 발걸음들이었다.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경기 중등교사 한 분을 만났다. 2시간여 동안 하얀 꽃다발을 들고 서 계시기만 하셨단다.

취재진도 있고 추모를 하려면 플래시가 연신 터지는 걸 보시면서 선뜻 먼저 나서서 정문으로 다가가 포스트잇 붙이기에 망설여지셨다 한다.


내가 좀 얼굴이 두꺼워서 그 선생님과 함께 초등학생 조문객의 모습을 열심히 찍는 기자들을 피해 국화꽃을 교문에 테이프로 붙이고 포스트잇을 붙였다. 대로 집으로 향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 멀리서 발걸음 하셨다는 중등선생님과 근처 상가 커피숖에서 커피 한잔을 마셨다. 먼저 대접할 생각이었는데 부담스러우셨는지 내가 커피 주문할 동안 내가 골랐던 쿠키를 저 계산하고 계셨다.


처음으로 만나는 사이지만 같은 공간에서 추모라는 이름의 인연으로 한 시간 이상 이야기를 나눴다. 중고등학교의 교실 붕괴 상황을 들으니 가슴 아고... 더 글로리의 연진이 일당이 떠올랐다. 그 학급의 상황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중등에서 일어나는 학교 내 폭력 상황, 선생님을 향한 교권침해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거리는 좀 떨어져 있었지만 서울 못지않았다.


학교는 행복한 공간이 될 수 있을까?

교문에서 자녀들의 아침 마중을 해주시는 어머니들을 종종 본다. 웃으면서  "오늘도 즐겁게 보내다 와." 인사한다. 다음 날이면 그리 인사하는 어머니와 아이들 얼굴이 바뀌고 약속이라도 한 듯, 다른 가족들의 인사 내용도 대체로 비슷하다.


아이들이, 학생들이 즐거운 학교에, 어른인 선생님도 아이들 마냥 학생들 마냥 즐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9월 1일 오늘, 개학식을 하고 4층 선생님들이 모인 공간 옆 복도를 가로지르며 달리는 돌봄 교실 학생들의 모습... 여름방학 동안 잘 지냈는지 안부 대신 정리가 덜 끝난 복도에서 뛰지 마라,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안전한 생활시간에 어떻게 가르쳤니?라는 잔소리인 것이 슬프다. 그나마 내가 그 학생들의 작년 옆반 선생님, 올해 안전한 생활을 가르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말이다.


요즘 선생님들의 토요일마다 사례 발표를 보면, 나는 정말 좋은 분들을 만나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7월 20일 오후의 모습

물론 내게도 많이 힘든 해가 있었지만, 최근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요즘처럼 힘든 시기를 보내는 젊은 선생님들은 앞으로의 시간 속에서 희망을 보며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토요일마다 모이는 전국교사 모임, 언제까지일지 모르겠다. 7월 22일 처음으로 모였다는데 연배 많으신 윗분의 말씀을 들으니 이런 큰 모임이 2023년 7월과 지금까지 보다 앞서서 30여 년 동안 2번이 더 있었단다. 이번이 시작도 아니란다.


지금까지 2번의 큰 실패가 있었고 그때마다 선생님들은 징계를 받았다고 한다. 그중에는 교직으로 돌아오지 못한 선생님들도 있다 하시면서 울먹이셨다. 오롯이 교사 개인의 징계로 교육부는 대응을 했고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긴 시간 소명해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며 피해가 너무 크다 하셨다.


학교 안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행복한 내일은 정말 올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수업시간 장갑을 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