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하는 여행[방콕 1]

방콕 여행기

by 브라운

이번 여행은 10년지기 친구 둘과 함께 했다. 중학교 때 처음 만난 친구들로 대충 10년 정도 봤다. 진짜 친한 친구들은 언제 어떻게 친해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게 특징인데 이 친구들이 그렇다. 친구들과 여행을 하면 싸우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생각했을 때 여행 중 싸우지 않는 가장 큰 조건은 독박을 쓰지 않는 것이다. 누구 하나가 계획 부터 계산, 소통 등을 전부 맡아 여행을 진행했을 때 누군가가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한다면 이제 싸움이 시작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불상사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예외의 상황도 존재한다. 동행자 중 한 명이 현지에 오래 살았다던가, 이 곳의 여행 경험이 있어 능숙하다면 그 사람에게 맡기고 따라다니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방콕이 처음이기 때문에 건강한 여행을 위해 역할을 분담했다. 나는 여행 계획과 길 안내를, 친구 A는 여행 예산 관리를, 친구 B는 우리 중 영어가 가장 능숙해 현지인과의 소통을 담당하여 각자의 역할을 분담했다. 나는 지도, A는 가계부, B는 번역기가 된 셈이다.

툭툭이는 동남아 여행의 묘미 중 하나이다. 툭툭이를 타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현지 도로의 분위기를 몸소 체험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툭툭이에 대한 작은 해프닝이 있다. 왓 포 사원으로 걸어가던 길이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막아서더니 지금은 사원이 브레이크 타임이라면서 투어를 소개해주는 것이었다. 호객행위라는 것은 알았지만 사원이 브레이크타임이라는 말은 감쪽같이 믿어버렸다. 순진한 우리는 그 아저씨의 말에 현혹 되어 거절을 할 수 없었고 그 순간 아저씨가 "툭툭~" 하고 부르더니 마치 계획 된 것 처럼 어디서인가 툭툭이가 나타났다. 거절하기엔 이미 늦어버렸고 그 툭툭이에 탑승했다. 목적지는 다름아닌 배 선착장이었고 크루즈 같은 배를 타고 짜오프라야 강을 횡단하는 투어인 것 같았는데 사실 잘 알아 듣지도 못 했다. 가격이 얼마였는지 정확히 기억 나지 않지만 우리 형편으로 탑승하기에는 터무니 없이 비쌌다. 여기서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완강히 거절한 후 왔던 길을 거슬러 걸어갔다. 우리는 그 아저씨에게 속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씩씩 거리며 왓 포 사원으로 향했고 도착하자마자 역시나 우리는 그 사기꾼 아저씨에게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원은 정상적으로 운영 중이었고 관광객도 넘쳐났다.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에 화가 날 뻔 했지만 여행 중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인터넷을 찾아보니 흔한 수법인 것 같았다. 그저 우리가 준비성이 부족했던 탓이라 생각하고 더 이상 호객행위는 당하지 않으리라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고생 끝에 입성한 왓 포 사원은 방콕 최대의 불교 사원이라고 한다. 17세기 아유타야 시대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길이 46M에 달하는 거대한 황금 와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46M의 거구가 누워 있으니 카메라에 전신을 담기가 어려웠다. 와불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데 동아시아권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고 동남아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형태라고 한다.


다음은 왓 아룬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왓 아룬은 페리를 타고 짜오프라야 강을 횡단해야 했다.

보통 태국의 사원은 황금색을 띠는 경우가 많은데 왓 아룬은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흰색을 띤다고 한다. 주변 4개의 탑 가운데 가장 높이 솟아 있는 프라 쁘랑이라고 하는 탑이 존재하는데 이로 인해 굉장히 웅장한 느낌을 받았다. 이 탑은 중간 층 까지 올라갈 수 있었는데 중간 층에서 내려다 보면 다채로운 건물의 색 조화와 주변 조경으로 인해 꽤나 화려했다. 왓 포 사원과 굳이 비교하자면 개인적으로 더 웅장하고 인상 깊었다. 후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왓 아룬은 밤에 라이트업 되어 강 건너편에서 보는 야경이 장관이다.

이후 또 다시 페리를 타고 아이콘 시암으로 향했다. 페리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도 나름 관광의 묘미였다. 우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아이콘시암 지하에 위치한 쑥시암을 둘러 보며 먹거리를 탐색했다. 이 곳은 비교적 최근에 오픈한 메가 쇼핑몰인 만큼 보다 위생적인 환경에서 로컬 푸드를 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족발 덮밥과 가장 먹어보고 싶었던 크리스피 포크 그리고 로띠를 먹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먹은 로컬 푸드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우선 나는 향신료에 몹시 예민한데 향신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먹은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전혀 이질감 없는 맛이었다. 나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음식이다.

아이콘시암은 방콕 최고의 쇼핑몰인 만큼 쇼핑할 거리가 많아 보였지만 가난한 여행가인 우리는 구경하는 것에 만족하고 아시아티크로 떠났다.

아시아티크는 굉장히 많은 가게들이 모여 있는 현대식 시장으로 아기자기한 소품부터 옷, 식당, 카페, 놀이기구 등 볼 거리가 많은 곳이다. 우리는 이 곳에서 더운 나라 여행의 꽃이라 볼 수 있는 하와이안 셔츠를 하나 씩 구매하고 흑당 버블티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 보았다. 이 곳은 연인이나 아이들과 함께 반나절 정도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이 없는 관계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페리 선착장으로 향했다.

원래 계획은 강 건너 카페에서 왓 아룬의 야경을 구경하는 것이었는데 일이 터지고 말았다. 우선 원래 타려던 페리를 놓쳤고 다음 페리를 기다리는데 한국인관광객들이 단체로 줄을 서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곳에 함께 줄을 서 말을 붙여보니 패키지 여행 중이라는 것을 알았고 지금 기다리는 배를 같이 기다리면 될 것이라 판단해 함께 기다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이드로 보이는 분에게 물어봤어야 했다. 그 때 배가 오는데 2층에서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틀어놓고 춤을 추고 있고 우리가 알던 페리 보다 크기도 컸다.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라 판단력이 흐려진 탓이었을까 별 의심 없이 ‘흥이 넘치는 페리로군’ 생각하고 따라 타버렸다. 타자마자 뷔페가 있고 파티 같은 분위기에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좁은 입구로 많은 사람들이 탑승하고 있어 그 사이로 다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 순간 온갖 상상을 했는데 그 분들이 한국인의 정으로 불쌍한 우리에게 좋은 대책을 친절히 내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국인 관광객 사이에 있다보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친구 B가 화를 내며 우리를 끌고 좁은 사람들 틈 사이로 우리를 끌고 내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맞는 판단이었고 우리가 너무 안일했었다.

그렇게 조금 기다리다 제대로 페리를 탔고 그 시각 이미 해가 지고 있어 카페와 야경을 포기하고 바로 카오산로드로 향하기로 했다. 나는 라이트업 된 왓 아룬을 카페에서 보지 못 한 것이 아쉬웠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물멍을 때리며 가던 중 낮에 들렀던 아이콘시암이 밝게 빛을 내고 있었다. 얼마 뒤 왓 아룬이 낮과 다르게 밝게 빛을 내고 있었다. 고대하던 왓 아룬의 라이트업을 보지 못 한 것에 실망하던 찰나에 목격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원래 계획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되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짜오프라야 강을 횡단하는 페리 위에서 보는 왓 아룬은 더욱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오늘 하루 실수를 거듭하며 위기가 있었지만 어떻게든 모든 계획을 완수해냈다는 사실이 보람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꼭 고생을 해야만 여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행에서 고생이 동반 되었을 때 더욱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실수에 실수를 거듭하며 길을 찾다 보면 성숙한 여행가로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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