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자정리 거자필반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동물이란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그것이 존재의 이유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우리가 죽어서도 존재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법은 나의 이름을 남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많은 인물들이 명예를, 권력을 탈취하려고 애를 썼던 걸까? 하지만 남을 밟고 올라갈 생각이 없거나 큰 야망이 없는 인간들이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법은 나의 유전자를 대대손손 물려주는 것과 (유전자를 물려준다는 건 결국 나라는 존재가 영생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연을 맺는 것이 있다.
연에는 많은 종류가 있다. 사랑, 우정, 학교가 있고 직장이 있으며 가족이 있다. 내가 죽으면 나를 추모해 줄 사람이며, 나의 존재를 기억 속에 간직할 인연들이다. 내가 죽어도 내 이름은 인연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가며 영속될 것이며 내 인연들이 죽기 전까지는 내 존재를 머릿속에, 마음속에 품을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살아있는 존재인 것이다.
공자도 서른 살에 자립했다며 서른을 이립(而立)이라고 칭한다. 나는 자립하기도 어린 나이지만 얼마나 많은 인연들을 만나고 떠나보냈나.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나는 아주 많은 옷깃들을 스쳐 보냈다.
어떤 인연은 첫 만남이 기억에 남는다. 어떤 인연은 이별이 기억에 남는다. 어떤 인연은 피천득의 인연처럼 세 번째에는 아니 만났어야 했다. 모든 인연이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지를 않고, 나쁜 기억만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저 비율이 호오(好惡)중 어느 것이 더 높냐에 따랐다.
그 스쳐 지나갔던 많은 인연 중 가장 말하고 싶은 인연이란…
정말 사랑했던 친구가 있다. 우리는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머리 모양이 똑같았다. 나는 그 친구가 장기 이식이 필요하다면 어떤 장기든 반을 떼어줄 수 있었다. 친구 이름을 기억 못 하는 우리 엄마가 기억하는 두 명의 친구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친했지만 정작 속마음은 서로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서로의 취향과 취미, 호오는 알지만 제일 중요한 속마음은 알지 못했다. 대신 어느 날, 지나가듯이 말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
여느 때와 같이 그 친구네서 잔 날이다. 항상 시키던 곳에서 떡볶이를 시키고, 친구가 직접 해준 레몬맛이 나는 하이볼을 먹고 나에게 침대를 양보하고 자기는 바닥에서 자던 그날. 자기 전, 창문에서 들어오는 어스름한 빛에만 의지한 채 웬일로 조금의 속얘기를 한 날.
그때의 나는 그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별말 없이 넘겼던 것 같다. 우리가 각자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회피하고 그로 인해 쌓였던 소스들에 의해 소스통이 먼저 폭발해 버린 건 그 친구였다. 떠나버린 그 친구의 마음을 이해한 건 내가 엄청난 우울을 느껴버린 그 시기에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괴롭다는 감정을 처음 느껴봤을 때, 그때였다.
내가 처음 밀물처럼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오는 우울을 느꼈을 때, 그리고 이 파도가 썰물처럼 빠져나갔을 때였다. 오히려 우울이라는 감정이 빠져나가니 그 애의 말이 내 머릿속에 지나갔다.
너는 그럼 매일 아침이 이렇게 잔잔하게 괴로웠니…
나는 너랑 가장 친한 친구였는데 그걸 알아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밖에 생각이 안 들었다. 그 말은 지금도 그 친구를 만나서 가장 하고 싶은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친구와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는 말이 있다.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고 떠난 사람은 다시 돌아온다는 인연의 덧없음을 말하는 고사성어이다. 근데 나는 덧없음 보다는 순환에 더 중점을 두고 싶다. 떠난 인연은 다시 돌아오니 떠난 이가 그리워도 다시 만날 인연이라고 생각하자. 또, 재회를 한다 해도 떠날 인연이니 최선을 다 하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이 고사성어는 불교교리에서 파생된 말이라서 이 생에서는 떠난 인연이라고 해도 윤회를 통해 다음 생에서 만날 수 있다는 그런 말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나는 이 친구와 언젠가는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전처럼 깊은 사이는 못되더라도 말이다. 오히려 다시 만나면 더 애틋한 인연이 되지 않을까. 떠난 그 친구를 구태여 다시 잡거나 먼저 연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떠난 인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나는 인연을 내 손을 떠난 연(鳶)이라고 생각하고 바람에 맡기겠다.
또 다른 인연이 있다.
전자의 인연은 회자정리만 되었다면 지금 말하는 후자의 인연은 거자필반까지 이루어진 인연이다. 하지만 이 인연은 인연이 아니라 이년이라고 부르고 싶은 관계이다.
우리는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났다. 어쩐지 서로 마음이 통했고 급속도로 친해졌다. 나는 그 친구의 언행이 좀 이상하다고 느꼈을 때가 있었지만 내게 그녀는(그년은 이라고 하고 싶다 솔직히) 나와는 다른 성향을 가졌지만 취미가 비슷하고 말이 잘 통하는 친구였다. 그녀를 같이 아는 다른 친구가 그녀는 그리 좋지 못한 아이인데 내가 너무 좋아해서 말은 못 했다고 할 정도로 나는 그녀를 굉장히 좋아했다. 20대 초중반 까지는 나와 다른 그녀를 우상화까지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자아가 확립될수록 추구하는 게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상처받기 싫어서 남에게 먼저 상처 주는 그 행동에 상처를 많이 받아 멀어져야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지극히 자기중심적이었던 그녀가 많이 달라진 모습에 감동과 존경심을 느꼈다. 그래서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었다.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게 돌아온 건 자격지심이었다.
이건 지극히 내가 느꼈던 감정이고 내 생각으로 쓴 글이라서 그녀의 입장은 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자격지심이었다. 내가 자기보다 못하다고 느꼈는데 알고 보니 잘난 부분이 있구나 싶을 때 생긴 마음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내가 자기에게 멀어지려고 하자 더 물어뜯었다. 나는 좀 더 과장해서 물어뜯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나는 그녀 때문에 괴로웠으니… 하지만 그녀 자기에 대한 호감도 나에게서 물어뜯어갔다. 나는 이제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신과 방문 중 하나에 그녀의 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녀에게 말없이 멀어졌으나 힘든 감정을 쌓아두면 더 괴로워질 거라는 극도의 강박과, 이유도 설명 안 한채 멀어진 건 치사한 짓이라고 생각을 했고 상황상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매일 봐야 했기 때문에 먼저 화해 신청을 건넸다. 내가 극도의 우울과, 불안, 나의 가정환경과 인간관계의 스트레스에 대해서 말했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 와서는 괜히 말했다 싶지만 그때에는 내 불안을 터트려야 했기 때문에 역시 후회는 안 한다. 그때 그녀의 말이 기억난다. ‘너는 항상 인기가 많아 보였어…’ 그녀가 나에게 나는 행복해 보인다고 말했던 게 기억도 났다. 그게 네가 나를 물어뜯은 이유구나… 나는 반정도 미쳤던 와중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그녀에게 느꼈던 감정은 배신감이다. 나는 너에게 이만큼을 해줬는데 돌아온 건 오히려 괴로움이라니! 그녀는 내게 너는 나한테 해준 게 많은데 자기는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했었다. 맞는 말이다. 처음으로 그녀가 자기 객관화를 잘했다. 나는 그녀에게 도움 받은 게 있나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없다. 아 나이키 후드티를 2만 원에 샀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덕분에 아직도 연을 이어가는 소중한 친구를 만났다. 그녀 덕에 만난 건 맞지만 그녀 덕에 친해진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치사한 점도 있다. 도움을 줬다고 생각했으면서 보답을 기대한 것이다. 보답을 기대했다면 도움을 빌려줬다고 생각하는 게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는 게 있다면 오는 게 있는 것이 맞긴 하다. 그것이 사회생활이자 예의라는 것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는 나에게 예의를 차릴 마음도 없구나 했다. 뭐, 내가 치사했던 것도 인정이다. 도와달란 적도 없는데 도와줘놓고 보답을 바라는 것도 치사한 행동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게 어렵긴 하다. 나는 이해하지만 이 녀석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데? 하고 망치를 꺼내 들고 싶은 적이 많다.
내가 줘놓고 서운해하지 않기. 서운해할 거면 빌려줬다고 생각하기. 이미 내 손을 떠난 건 나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냥 줬다고 생각하자. (돈이나 물건 같은 물질적인 것을 제외하고) 받고 싶다고 생각이 들면 처음부터 빌려주는 거야. 하고 내 마음을 정확히 인지하기. 이렇게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게 나의 기브 앤 테이크 목표이다.
또한 내가 참아준다고 생각했다. 내가 배려해주고 참아주고, 이번만 참고 넘어간다고. 아주 잘못된 생각의 오류인 거 인정하고 싶다.
모든 인연은 순환이다. 떠날 인연은 떠나고 돌아올 인연은 돌아온다. 떠나는 걸 억지로 잡지 말자. 다시 돌아올 인연이니. 떠나는 인연에는 이유가 있다. 당연히 잡고 싶은 인연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인연이라면 한 번은 잡을 것 같다. 하지만 억지로 인연을 붙잡는 것은 결국 나에게 괴로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후자의 소스통 친구는 직접 적인 행동으로 내게 괴로움을 줬다면 전자의 소스통 친구는 그 애를 잡고 싶었던 내 마음이 나 스스로에게 괴로움을 줬기 때문이다.
연을 맺는 건 불교에서는 업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인간은 연을 이어가면서 나의 존재를 남기고 구성원 안에서 도움을 주고받으며 존재의 이유를 확립한다.
텃세가 심한 매장은 어차피 사람이 금방 그만두기에 잘해주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아니다. 잘해주지 않기에 떠나가는 거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고 그 인연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건 치사하다. 당연히 모든 인연에 최선을 다 하기에는 어렵다. 그래도 못되게 대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소스통들이 자신에게 대하듯이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을 대했으면 좋겠다. 그건 자신도 소중하게, 인연들도 소중하게 대하라는 뜻이다. 거울을 볼 때 우리는 슬픈 표정을 짓지 않는다. 최대한 예쁜 표정을 짓는다. 거울 속의 나처럼 나와 인연을 대해보자.
회자정리 거자필반
우리는 언젠간 다시 어떤 형태로든 만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