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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차갑게 식혀서 먹을 때가 가장 맛있…을까?

by 김소스통



“복수는 차갑게 식혀서 먹을 때가 가장 맛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영화 킬빌의 명대사이다. 킬빌의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정말 선호하면서도 선호하지 않는 감독이다. 나는 그의 윤리관을 선호하지 않지만 그의 영화는 좋아한다. 빈티지한 필름의 색감을 선호하고 싸구려잡지를 읽을 때와 같은 감상을 느끼는 게 좋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뒤끝 없는 복수이다. 무조건적인 성공적인 복수. 아주 통쾌한 복수이다.


그의 영화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을 보면

나는 마음속에 복수라는 칼을 품고 있나 보다.


덤덤한 척했던 내 껍데기를 탈피하고 예민한 알맹이를 받아들이기로 한 나는 내가 예민해져 있구나 바로 깨달을 때가 있다. 그건 괜한 분노가 생길 때다.

그 사람은 그때 왜 그랬지? 그 말에 왜 나는 그렇게 받아치지 못했지 하는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나 자신에 대한 분노 둘 다! 그러면 나는 복수하는 상상을 한다. 칼이 박힌 말을 하는 거다. 그리고 건방진 표정을 짓는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고. 지렁이를 너무 얕봤다고.


최근 머릿속의 복수 상대는 거진 10년 전 첫 아르바이트 가게의 사장님이었다. 무려 1시간 만에 잘린 나의 첫 알바. 잊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문득문득 내 머릿속을 침범해 나를 괴롭게 하는 기억이다.


복수 상대 소스통 1.

나이: 50대~60대 추측.

성별: 여성

복수하고 싶은 이유:

면접 때부터 나를 무시하는 발언을 함.

첫 출근을 하자마자 나는 일을 시키고 나 빼고 다른 직원들에게는 먹을 것을 나눠줌 (결국 다른 직원분이 슬쩍 와서 초콜릿을 주시고 감.)

일을 아예 안 알려주시고 다짜고짜 일을 시키시는데 그 가게에서만 사용하는 용어를 말하니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자 큰 소리를 화를 내심

참아왔던 울음을 터트리자 우리 가게와 맞지 않다며 1시간 만에 해고시킴.


이 기억은 항상 나를 괴롭히진 않지만 아주 가끔 정말 몇 년에 한 번 꾸는 악몽 같은 기억이다. 몇 년 전, 우연히 그 가게를 방문했었다. 친구들과 나는 음식을 포장했는데 당연히 나를 못 알아보는 그 사람은 생각보다 많이 늙어있었다. 그냥 정말 평범한 아줌마에서 할머니로 넘어가는 나잇대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불친절하지도 않은. 아무런 감상을 남기지 못하는 사람. 그때 나는 다 용서했다고 생각했다. 저런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화풀이하고 싶은 상대를 찾는 걸까?

무의식 적으로 그 사람이 만만해 보이니까?


당신은 초라하고 늙어서 이제 무섭지 않다고 객기를 부리고 싶다가도 음식을 사서 나가는 길에 “저번에도 왔는데 기억 못 하시더라고요. 저 누군지 기억 안 나세요?”라고 말하고는 내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채 나가고 싶었다. 기억을 더듬으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도록.


나는 화병 진단을 받고 난 후부터는 내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적당히 풀어내는 연습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내가 무시당했을 때 나도 기분 나쁨의 표현을 하는 거다. 물론 아직도 저렇게 말하는 게 어려워 넘어갈 때가 많지만 적어도 나를 무시하는 말에 웃지는 않기로 했다.


하지만 이 일은 지나간 일이라 당장의 표현은 안되니 찾아가서 이 화를 풀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10년이 되어가는 일인데 아직도 내 맘에 남는 일이라면 그 사람에게 찾아가 내 속에 담아뒀던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내 머릿속은 1초에 한 번씩 티브이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약 50개의 숏츠를 모았지만 하나도 정하지 못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가게 안에 들어갔을 때까지도.


적군의 목을 따러가는 장수처럼 비장하게 들어갔는데 카운터에는 그 사람이 아닌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사람뿐이었다.


그때의 솔직한 감정 내 감정은 안도와 아쉬움이었다. 나는 괜히 가게를 한 바퀴 돌고는 짤랑이는 종소리를 뒤로하며 나왔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래, 다른 복수의 상대에게 가자.


복수 상대 소스통 2.

나이: 30대

성별: 남자

복수하고 싶은 이유:

실수가 잦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한 달 된 신입이 할만한 실수들임.

내 실수에는 말 그래도 지랄… 했으면서 자기 실수로 빵 다 엎은 날에는 괜히 나한테 화풀이함.

뜨거운 걸 들어야 하는데 장갑이 없어서 장갑 어딨 냐고 여쭤보니 내가 알아서 하라는 식. 결국 그거 듣던 다른 직원분이 슬쩍 와서 알려주심. 그제야 한숨 쉬면서 장갑 무더기 갖다줌.

퇴근했는데 내가 한 실수 때문에 손님이 자기한테 욕하고 뭐라 했다며 전화 옴. 내가 아… 이러니까 한숨 쉬었냐고 갑자기 호통치길래 나도 참다 참다 같이 전화로 싸움. 갑자기 내 주소 읊더니 너 집 여기지? 이래서 우리 엄마랑도 전화로 엄청 싸움. 경찰 부를까 니가 올래? 이래서 갔더니 가자마자 어머니는 안 오셨니? 이럼.


소스통 2의 가게에서는 약 한 달 좀 넘게 일했기 때문에 겪은 수모야 훨씬 더 많지만 아마 이 소스통에게는 크게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이미 찾아가서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그 사람이 꼬리 내린 걸 보고 그만뒀기 때문이다. 원래는 무서워서 눈도 못 마주쳤던 사람인데 처음으로 눈을 부릅뜨며 피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들을 했다. 그러더니 아예 내 눈을 보지 못하면서 말하는 그 사람을 보면서 은은한 승리감과 속에 담아 있던 걸 터트린 희열감 그 와 동시에 살짝의 혐오감을 느꼈다. 저렇게 예의를 차릴 수 있었던 사람이었구나 하는 혐오감.


나는 그에게 가려던 중. 문득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그 사람들은 내게 중요한 사람들이 아니며, 나에게 이제 아무런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저 스쳐지나가듯 지나가는 악연이다.


나는 인간의 양면성을 안다. 저 사람들의 가게 리뷰를 보면 어떤 사람은 5점을 남겼고 어떤 사람은 1점을 남겼다. 어떤 사람은 너무 친절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너무 불친절하다고 한다. 또한 알고 보니 소스통 2의 가게에서 내 지인이 일했었는데 딱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었다고 했다. 어쩌면 그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거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에게는 악한면을 보여줬을 테고 남에게는 또 선한 면을 보여줬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나도 누군가에게는 별로인 사람이었을 거고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었을 것인데 내 억울한 점만 풀자고 이러는 게 맞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히려 나는 그 사람들 덕분에 배웠다. 저런 사장들을 겪은 후에도 나는 악덕 사장들을 더 안 만났다고는 할 순 없겠다. 하지만 노하우가 쌓여 그 이후로는 대처 방법이 생겼으며 그 노하우들이 훗날에 나를 가게와 회사에 꼭 필요한 직원으로 각인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아르바이트생 보다는 창업을 할 나이에 가까워지니 (내 나이에 알바를 하든 뭘 하든 모든 게 자유이다. 좀 더 일에 대한 지식이 쌓였다는 뜻이다.) 그 사람들의 답답함도 알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나였다면 사람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포용하며 발전을 믿었을 것이다. 난 내가 배우는 게 느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능숙하게 일처리를 잘하는 걸 아니까. 아마 소스통 1, 2들은 자신들의 발전을 못 믿었기 때문에 나의 발전도 못 믿었을 것을 생각했을 것다. 그렇게 생각하니 좀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시간은 모든 걸 돕는 약인데 말이다.


또한, 나는 업보를 믿는다. 타인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한 자, 자신의 눈에는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업보가 있다고요? 나쁜 놈들이 잘 사는 이 세상에?

그렇게 묻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물음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은 전 00 씨이다. 하지난 나는 대통령이라고 하고 싶지도 않은 이 독재자가 업보의 가장 큰 예시라고 생각한다. 표면적으로는 잘 먹고 잘 살다가 잘 죽은 것 같지만 그는 살아있을 때도, 죽은 후에도, 이제 그를 겪은 시대가 다 죽은 후에도, 몇 년, 몇십 년, 몇백 년이 흘러도 성군이 아닌 폭군으로 기록될 인간이다. 최악의 독재자, 민간인을 학살한 독재자로 말이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부정적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며 그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영원히. 역사와 기록은 그의 업보를 배신하지 않을 거니까.


‘누군가 너에게 해악을 끼치거든 앙갚음을 하려 들지 말고 강가에 고요히 앉아 강물을 바라보아라. 그럼 머지않아 그의 시체가 떠내려 올 것이다.’

라는 옛말이 있다.


나에게만 만만히 대했던 친구가 있었다. 다른 친구에게 내가 겪었던 일을 말하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믿지 않았을 거라고, 그만큼 나에게 했던 행동과 타인에게 했던 행동이 달랐던 친구였다.그리고 그 친구가 강물에 천천히 떠내려 오는 걸 저 밑에서부터 관조했다.


그리고는 내 앞에 시체로 떠내려오는 걸 보았다.


남에게 해한 업보는 자기에게 돌아가 있게 되어있다. 어떤 형태로든. 또한 내가 상대에게 복수를 하는 것은 내 업보를 쌓는 행동이다. 업보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길게 글을 써보도록 하겠다.


결론은 역시, 복수는 차갑게 식혀서 먹을 때가 가장 맛있다. 왜냐고? 그만큼 기다렸다가 먹는 복수이니까! 나는 모든 소스통들의 복수를 응원한다. 답답하다면 떠내려 오기 전에 강물에 익사시켜 버리는 것도 괜찮겠다. 복수는 따뜻한 상태에서 먹어도 맛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보를 생각해라.라고는 말하고 싶다. 굳이 그 사람 때문에 내 마음을 해할 필요는 없다. 내 손을 더럽힐 필요도 없다. 하지만 내 마음을 너무 괴롭히는 일이라면 따뜻한 복수를 맛있게 먹어보자.


하지만 나는 겁이 많고 귀찮음이 많은 사람이기에

복수하고 싶은 상대가 강물에 떠내려 가는 걸 조용히 관조하겠다. 그것이 나의 식혀서 먹는 복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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