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고유한 정신병 중에는 ’ 화병‘이라는 게 있다. 내가 처음 정신과를 방문했을 때 의사가 내린 진단이 그거였다. 화병.
화병이란 무엇인가? 속에 있는 화가 쌓이다 쌓여
제대로 분출하지 못해 생기는 마음의 병이다.
첫 방문이었던 2024년 1월 기준. 내가 살아왔던 26년 10달 동안의 인생은 참고 참았던 인내의 연속이었다. 타인에게 나는 공격을 해도 웃는 아이였다. 내가 타인에게 화를 냈다거나 짜증을 냈다는 말을 하면 악의 없는 표정으로 네가 그러기도 하냐며 상상이 안 간다고 말했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 중에서 내가 제일 덤덤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또한 사랑하지 않아도 같이 지냈던 사람들에게 나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었다. 왜냐면 부정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 말들을 넘기는 게 아니라 참는 거였다. 중요한 건 나도 그걸 몰랐다. 나는 덤덤한(그렇다고 생각한) 사람이니까. 참는 게 익숙해지면 내 뇌는 어느새 그것을 공격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몸에서는 스트레스가 쌓였던 것이다. 말 그래도 뇌는 회피하지만 몸은 화를 그대로 축적하고 있었다.
발끝에서부터 축적됐던 화는 머리끝까지 쌓여서 소스가 가득 찬 소스통처럼 팽창됐지만 굳어버린 소스들이 입구를 막고 있어서 나오지도 않는 소스통이 되어버린 거다. 조금씩 소스들이 새어 나오고 있던 것도 모른 채 지내던 소스통은 결국 소스들과 함께 난장판이 되어서 터져버렸다.
소스통 복구에는 다행히 3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임시방편으로 붙인 테이프가 금방 찢어져 다시 터져버렸고 또 4달이 걸렸지만 이미 찢어진 소스통은 붙여진 흔적이 남아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소스를 담고 있는 소스통이다.
그 소스의 이름에는 우울, 불안, 편집, 강박 등이 있다. 이 소스들은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외부자극으로 인해 축적된 소스들이다. 소스들을 품은 소스통이 선천적으로 큰 소스통이 있고 작은 소스통이 있다. 컸지만 쪼그라들어 작아진 소스통이 있고 작았지만 열심히 자신의 공간을 넓힌 소스통이 있다. 나는 자신의 공간을 넓히고 있는 소스통이다.
가득 찬 소스들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건 결국엔 내 통을 넓히는 과정이니까!
내 글을 발견한 소스통들은 자신의 통을 넓히기 위해 날 찾은 소스통들일 것이다. 나 자신이 왜 이럴까, 고민이 되고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방법을 찾기 위해서. 또, 위로를 받기 위해서. 하지만 나는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자신의 통을 넓히기 위한 그 마음가짐 자체가 이미 조금씩 소스통을 확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전문적인 심리상담사도 아니며 심리학을 공부하지도 않았다. 더더욱, 정신과 의사도 아니다. 내 글이 무조건 적인 답이 아니란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나 자신에게도 위로를, 그리고 같은 고민을 겪었을 타인에게도 위로를 하기 위해 시작했다.
각자의 소스들을 품고 있는 가지각색의 소스통들에게 내 글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으며
- 김소스통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