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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사과 Nov 09. 2022

볼 만한 넷플릭스 리뷰(2)

애드 아스트라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책도 좋아하고 드라마도 사랑하지만 여타 미디어에 비해 영화만이 가지는 압도감이 있다. 어린 시절 주말만 되면 아버지와 함께 비디오 가게에 들러 영화를 빌려오곤 했다. 아버지는 항상 두 편의 영화를 빌리셨다. 하나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영화, 다른 하나는 나와 형이 좋아하는 영화로.

아버지는 항상 [쇼생크 탈출], [포레스트 검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처럼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를 빌리셨다. 그리고 어디선가 그 소설들을 구해와 책장에 넣어두셨다. 어린 시절 나에게 부모님이 보시는 영화는 어렵고 지루할 뿐이어서 언제나 30분을 못 넘기고 잠에 들었다.

둘 다 명작이지만 쇼생크 탈출과 그 시리즈인 그린마일은 꼭 봤으면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비디오 가게 선반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아버지는 나에게 영화 선택권을 주었다.

그때를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인생 처음 SF영화를 접한 날, 홀린 듯 [스타워즈-보이지 않는 위협]에 손이 갔고 나는 SF/판타지와 사랑에 빠졌다. 형을 설득해서 매주 두 편씩 스타워즈 시리즈를 봤고, 3주 만에 스타워즈 프리퀄(당시에는 '보이지 않는 위험'과 '클론의 습격'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후 2005년에 시스의 복수가 나와 스타워즈 프리퀄이 마무리되었다.)과 오리지널을 모두 볼 수 있었다.

그 뒤로는 [블레이드 러너], [에일리언], [터미네이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혹성탈출], [칠드런 오브 맨] 등 SF와 판타지와 관련된 영화라면 사족을 못쓰게 되었다.(그렇다고 SF영화만 본 것은 아니다. 당시 SF나 판타지 영화의 특징은 기술력의 부재로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한 장면이 많이 나왔기에 부모님은 우리 형제의 '영화 편식'을 경계하셨다. 덕분에 수많은 명작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비디오 가게가 DVD가게로 바뀌고 점차 사라지면서 매주 영화를 빌려다보던 문화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저 푸르고 검은 하늘을 날아 우주로 향해 수많은 별을 모험하는 상상을 하면 불안감과 외로움이 사라지고 마음이 벅차오른다. 이런 상상을 하다 보면, 어느새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비디오로 빌려본 '스타워즈'의 루크 스카이워커나 '스타트렉'의 제임스 커크, 장 뤽 피카드 선장이 되어 가상의 동료들과 함께 은하 제국을 물리치고 새로운 행성으로 떠나는 것이다.


어린 시절 SF와 판타지에 빠져든 계기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영상미 때문이었다. 상상도 못 한 거대한 괴물,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전투기, 화려한 검술을 뽐내는 제다이. 이들의 조합은 지금 봐도 가슴 떨리고 중독적이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내가, 그리고 우리가 SF를 사랑하는 이유는 단순히 엄청난 그래픽과 특수효과 때문에 눈이 즐겁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SF에는 철학이 담겨있고 인간 세상에 대한 우화이며 미래를 볼 수 있는 창구이다.


[샤이닝], [풀 메탈 재킷] 등으로 유명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는 지금의 태블릿 PC와 아주 흡사한 물건이 나오고, 인간이 우주 유영을 하기 전이었음에도 무중력 상태의 움직임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면들은 아직까지도 회자되며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놀라운 상상력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SF는 단순히 화려한 볼거리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상상력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자 필연적으로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는 장르다. 인간의 미래, 우주, 과학 기술의 발전, 세계의 종말, 인간 존재의 본질 등 세계의 구성에 대해 질문하고 나의 존재에 대해 탐구하는 철학하기와 그 문맥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애드 아스트라]는 최근 본 어떤 SF영화 중에서도 가장 철학자의 언어로 그려진 영화이다.


1. 오이디푸스 신화


애드 아스트라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많은 모티브를 가지고 왔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오이디푸스 신화'이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소포클레스의 테베 3부작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오이디푸스가 자신을 둘러싼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운명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바로 '아버지 살해'와 관련된 전승일 것이다. 철학자이자 심리학의 대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이 신화를 모티브로 하여 남근기(3~5세)의 아이가 어머니를 독차지하려 하거나 아버지를 경쟁자로 보고 콤플렉스를 가지며 증오하는 심리를 설명하였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불리는 이 심리 이론은 현대에 그리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문학이나 미디어에서 아버지를 넘어 독립자로서 자아를 형성해나가는 아들의 과정을 그려나가는 데 아주 중요한 클리셰이자 개념이 되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피하려는 운명이 자신에게 닥쳐온 것을 알자 스스로 눈을 찌르고 딸과 함께 방랑길에 나선다.

애드 아스트라의 주인공 로이 맥브라이드와 아버지인 H. 클리포드 맥브라이드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이 영화를 해석하는 중요 포인트 중 하나인데 이들의 관계와 서사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모티브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H. 클리포드 맥브라이드(이하 클리포드)는 '리마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지적 생명체의 가능성을 찾아 탐사를 떠났지만 그 행방이 묘연해져 지구에서는 이미 사망한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로이 맥브라이드(이하 로이)는 영웅의 아들로서 더 유명한 남자로 대기권에 설치된 초고도 안테나 설비에서 근무하고 있다. 로이는 아버지와 공유할 아름다운 추억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으며 항상 얻을 수 없는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 일상에서 무력하고 가식적으로 지내고 있다. 작중 로이는 심박수가 80 이상을 넘지 않는다는 묘사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로이가 장기간 우주 생활과 항해에 아주 적합한 인재라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감정과 관련된 요소들이 여럿 결핍되어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로이는 영화 초반부에 안테나 타워 중간에 고장 난 로봇 팔을 점검하러 나서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거대한 파장으로 인해 시설물이 푹 파하여 지구로 추락한다. 이때 그는 침착하면서도 두려움이 스치는 표정을 짓는데 이는 부상으로 인한 고통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추락 그 자체, 즉 '별을 향해'(Ad Astra) 다가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보인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로이는 회복 후 사령부의 호출을 받고 출석한다. 이곳에서 최근 발생한 전자기파 이상 형상과 사고를 유발하는 '써지 현상'이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야기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실 아버지는 해왕성 부근 탐사선에 살아있었고 실험은 계속되고 있었으며 이 전 지구적 재난이 아버지의 독단적인 실험에서 야기되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 로이는 아버지를 찾아 '써지 현상'을 막으라는 사령부의 명령을 받고 달을 거쳐 화성으로 간다. 이 여정에서 로이는 자랑하던 평정을 잃어가고 명령은 취소되며 동료까지 죽이지만 사명을 찾은 듯 아버지를 향해 해왕성으로 날아간다.


긴 여정 끝에 만난 아버지는 로이를 귀찮은 방해물 정도로 생각한다. 그에 대한 죄책감이나 사랑 따위는 없으며 지적 생명체를 발견해야 한다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는데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어찌 보면 로이와 클리포드는 서로 너무나도 닮아있을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는 이들의 첫 만남을 수직적으로 묘사한다. 클리포드가 위에서 내려다보고 로이는 아버지를 올려다본다. 수직적인 상하 관계이자 이해의 평행선을 달리는 듯한 이 연출은 단 한 장면으로 그들의 관계를 유추하게 해 준다. 우주 공간에서 서로를 줄에 매달고 벌어지는 실랑이 끝에 아버지를 이해한 로이는 폭파하는 우주선에 그를 남겨둔 채 '써지 현상'을 해결하고 지구로 귀환한다. 폭발하는 우주선을 뒤로하고 나아가는 로이의 모습은 어딘지 후련하고 밝아 보였다.

로이는 별을 향해 계속 나아갔지만 결국 다시 고향별로 돌아온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완전한 독립자로서 있을 곳을 찾은 로이는 오이디푸스처럼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듯 편해 보인다.


2. 과학적 오류?


영화가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 사람들은 과학적 오류가 많음을 지적했다. 동시에 대중성이 너무 떨어지는 예술 영화 계열임을 비판했다. 영화는 확실히 많은 과학적 오류를 품고 있다. 우주선이 브레이크라도 밟은 듯 우주 공간에서 자유롭게 멈추거나, 달에서 사람들이 지구 표면과 동일한 움직임으로 걸어 다닌다거나 하는 등 지적하자면 끝도 없다. 심지어 [애드 아스트라]가 개봉했을 당시 사람들은 [인터스텔라], [그래비티], [마션]으로 이어지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의 과학적 고증이 아주 훌륭했음을 기억하고 있었고 같은 맥락의 영화인 [애드 아스트라]에게도 높은 수준의 고증을 요구했다. 사실 SF영화의 극성 팬인 나의 입장에서도 거슬리는 부분이 꽤나 있었다. 하지만 고증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이 영화를 보면 오히려 감독의 의도가 선명히 보인다.


이 영화는 [스타워즈], [듄]과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영화가 아니다. 기존의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영화들은 판타지에 가까운 누아르 작품이었다. 주인공과 동료들은 언제나 선한 역을 맡아 악의 제국과 싸워왔으며 누군가를 해방시키며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려 했다. 이와 다른 노선을 걷더라도 SF영화는 과학과 고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반면 [애드 아스트라]는 SF를 그저 수단으로 이용할 뿐이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이 영화에서 SF를 문법으로 하여 한 인간의 내면에 주목하였고 그의 성장에 관련된 보고서를 영화라는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영화는 지루하다. 화려한 스타일을 추구하지도 않으며, 특정한 인물이나 배경에 압도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제임스 그레이의 영화는 고전적인 모티브와 표현 방식으로 잔잔하게 많은 영화적 요소들을 결합해 한 가지 주제의식을 영화에 채워 넣는다. 즉 스케일이 큰 영화에서 간과되는 인물의 감정선이나 관계를 극도로 제한해 그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무대를 관객이 익숙한 태양계 이내로 제한해 현실감을 끌어올리고 의도적인 고증 오류를 통해 인물의 감정선과 서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3. 절제

영화는 극도로 차분하게 진행된다. 심지어 몇 없는 액션 장면도 적막하고 막막한 우주 공간에서 이루어져 전투의 흥분과 과격함을 철저히 제한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이색적인 액션은 오히려 현장감을 이끌어내 관객으로 하여금 로이의 상황에 더욱 몰입하도록 한다.


로이는 달에 도착한 후 화성으로 가기 위해 발사기지로 향한다. 발사기지로 가는 길은 굉장히 험하고 자원을 노리고 달려드는 테러리스트 들과의 조우도 잦기에 쉽게 갈 수 없는 길이었다. 길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테러리스트들이 달려온다. 미국의 국기를 달고 있음에도 달려드는 테러리스트 들은 로이 일행을 향해 총을 퍼붓는다. 미군 몇몇이 죽고 테러리스트들도 죽는다. 이들의 총격전은 지극이 절제된 음향으로 현실감이 떨어진다. 그러나 달이라는 상황과 더불어 언제나 심박수 80을 유지하는 로이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장면 하나 때문에 영화를 보기로 결정했을 만큼 잘 만들어진 액션 시퀀스라 생각한다.

달에서의 액션 시퀀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화성으로 향하는 도중에도 짤막한 액션이 하나 나온다. 로이 일행은 항해 도중 노르웨이 소속의 생명공학 연구 정거장으로부터 구조 신호를 접수한다. 로이는 임무를 우선하자고 설득하지만, 비밀 임무의 경중을 알 길이 없는 테너 선장은 구조 임무가 우선이라며 구조를 나선다. 정거장 안은 음산한 침묵 속 경고음만 가득하다. 수색을 위해 흩어진 테너에게도 응답이 없다. 이상함을 느낀 로이는 다시 돌아가지만 테너는 이미 탈출한 연구용 개코원숭이에게 습격을 받아 끔찍한 부상을 입은 뒤였다. 로이는 기지를 발휘해 개코원숭이를 처치하지만 결국 테너는 죽고 만다.


이 장면에서 로이는 개코원숭이를 보며 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야기한다. 보통 사람들은 감정과 마음에 공감한다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해한다라고 표현하여도 이는 대부분 공감의 뜻을 내포한다. 하지만 로이는 무표정하게 개코원숭이를 보며 '이해'한다고 말한다. 로이는 지구에서도 부인에게 버려졌다. 항상 우주에 관심이 쏠려있고 공감능력이란 찾아볼 수 없는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로이는 점차 감정을 드러낸다.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다가갈수록 이해를 넘어 아버지에게 공감하고 그 뜻을 온전히 받아들여 비로소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난다. 이해를 넘어선 공감, 관계의 소중함, 성장, 모두 고전적인 인문학에서 소중히 다루는 가치들이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고전적인 요소의 아름다움과 힘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4. 추천

솔직히 [애드 아스트라]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영화는 지루하고 잔잔하며 한번 봐서는 포착하기 어려운 상징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를 4번 시청했으며 여러 해석과 평론가들의 평을 찾아보았고 감독을 이해하기 위해 필모그래피를 시청했다. 그럼에도 누군가 나에게 [애드 아스트라]에 대해 설명해보라 하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만큼 난해한 영화다.


그럼에도 한 번쯤 봤으면 한다. 뻔하지만 잊혀가는 소중한 이야기들과 가치, 주제의식을 밀도 있게 연결해 SF라는 문법으로 작성한 성장 보고서이자 문장이기에 인류애가 부족해지거나 감성에 젖고 싶거나, 혹은 SF를 사랑한다면 한번 볼만은 하다.


하지만 지루해서 1회 차에 최소 5번은 잠들었으니 별점은 5개 중 3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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