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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사과 Dec 06. 2022

<올빼미> 리뷰

한산보다 나은 수작

1. 배경- 부서진 조선과 괴물이 된 인조

명은 여진에게 이이제이를 할 생각으로 접근했다. 당시 명은 자타공인 동아시아 패권국이었지만 그들에게 북방계 유목민들은 언제나 골칫덩이였다. 토목의 변으로 황제가 오이라트의 포로가 되거나 몽골에게 수도인 북경이 포위당하는 등 명 입장에서 그들은 단순한 유목민이 아닌 동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서로 다툴만한 수준의 위협이었다. 한때 '금'을 세워 중원을 위협했던 여진은 금이 멸망한 후 명과 조선의 견제로 그 세력을 규합하거나 확장하지 못하고 있었고 이러한 국면을 기회로 명은 여진에게 이이제이를 할 생각으로 접근했다. 명은 건주여진을 러닝메이트로 낙점하며 조공 권리를 부여하였는데 이는 곧 중원과 교역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다는 뜻이었다. 이 관계는 홍치제의 치세 하에 확실한 우호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해서여진을 포함한 여러 부족에게 관직을 하사하고 조공권을 부여하며 명의 영향력 안으로 흡수하였는데 이는 얼핏 여진의 힘을 키우는 것으로 볼 수 있겠지만 사실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부족의 힘을 동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려 서로를 견제하도록 하는 고도의 이이제이술이라 할 수 있겠다.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은 중립외교를 통해 명과 후금 사이에서 실리를 챙기려 했다.

후에 청 태조 천명제가 되는 누르하치는 작은 부족 족장의 아들이었다. 누르하치는 명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누르하치와 그의 부친, 그리고 조부는 명의 요동총병인 이성량의 수하로 있었는데 여진의 한 족장이 반란을 일으키자 누르하치의 부친과 조부가 반란군을 설득하기 위해 그 진영으로 향했다. 하지만 누르하치가 속한 부족의 대추장이 공격을 주장하자 이에 설득당한 명의 공격으로 반란군 및 이들을 설득하러 떠난 자들은 사망하게 된다. 사망자에는 누르하치의 조부와 부친도 있었기에 그는 명에 항의했지만 돌아온 것은 허울뿐인 명예와 30개의 칙령이었다. (당시 무역을 위해서는 칙령이 필요했다. 다시 말하면 30개의 칙령이란 30번의 무역을 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는 부족장의 위치에 올라 곧 건주여진을 통일하고 해서여진을 복속시킨 후 후금을 건국한다. 누르하치는 명의 교역 금지 정책, 여진의 농업 확장 사업 실패 등을 이유로 대규모 약탈전을 결심하며 요동총병 이성량의 사후  '7가지 한'을 내걸며 명에 선전포고를 한다. 이때 조선도 이 전쟁에 휘말리는데 바로 명청 전쟁의 시발점이 되는 '사르후 전투'이다. 조선군은 1만 8천여 명의 병력을 파병하였으나 기록에 따르면 국력이 쇠한 상태라 제대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명과의 협조가 원활히 되지 않아 결국 부차 전투에서 좌, 우영이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투항한다. 광해군의 밀명을 받은 강홍립이 항복한 후 조선은 후금에 대적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보이자 후금은 이를 받아들였다 한다. 명 또한 심각한 피해를 입고 만주의 영향력을 후금에게 빼앗기고 만다.

유튜브 국립진주박물관 채널에서 개봉한 단편영화 <사르후 전투>

조선과 명은 군신관계에 가까운 동맹국 사이로 이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후금은 본격적으로 명과의 전쟁을 벌이기에 앞서 조선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결국 1627년 1월 3만의 적은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공한 후금은 엄청난 진군 속도로 조선을 침략해나갔다. 북방 유목민의 침입에 대해 조선이 세운 전략은 다음과 같았다.

1. 함경도 일대의 정예군이 유목민의 남하를 계속 저지한다.

2. 유목민족은 수전을 행할 여력이 없으므로 수뇌부는 보장지처인 강화도로 이동해 항전을 지속한다.

3. 근왕군과 더불어 남부의 주둔군이 북진하며 잔당을 처리한다.

이 전략은 어느 정도 유효했고 후금은 장기전에 돌입할지, 화약을 맺을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결국 3만이라는 적은 군세로 전쟁을 계속 수행하기에는 불리하다는 판단이 섰는지 후금은 조선과 화약을 맺고 물러난다. 하지만 이는 후금 입장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였고 이후 국호를 청으로 개칭한 후금은 칭제건원을 거절했다는 핑계로 조선을 재침 공하니, 이것이 병자호란이다.


조선은 같은 전략으로 대응하였다. 하지만 청은 전쟁 이후 세를 불림과 더불어 철저한 준비를 통해 조선의 전략을 꿰뚫고 있었다. 청은 조선의 지리와 문화에 능통한 조선통을 필두로 선봉대를 보내 엄청난 속도로 조선을 침공한다. 이들의 작전은 최대한 전투를 피하고 수도를 포위해 왕이 보장지처로 떠날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들은 하루 약 90km라는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이동하며 장사꾼, 사신 등으로 위장해 전투를 피했고 결국 진군속도에 놀란 인조는 강화도를 포기하고 남한산성에서 항전하기를 택한다. 작전의 성공으로 인조의 발을 묶은 청은 동시에 본대를 보내 조선을 침략하도록 한다. 결국 더 이상 항전할 수 없음을 알고 인조가 항복하며 이 전쟁은 마무리된다.


청에 대한 두려움과 경멸로 인조는 스스로의 무능과 풀 데 없는 분노가 만들어낸 망령에 사로잡혀 천륜을 거스른 괴물이 되어간다. 영화 <올빼미>는 소현세자가 청에서 돌아오는 시점부터 시작하여 인조가 괴물이 되어 벌인 일을 상상력에 근거해 써 내려간다.


2.


주인공(천경수)은 주맹증 환자로 빛이 있는 곳에서는 맹인과 다름없지만 어두운 곳에서 어느 정도 시력이 회복되는 독특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주맹증은 수정체의 혼탁함이 원인으로, 일반적인 시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빛이 많은 환경에서 홍채가 닫히고 동공으로 앞을 봐야 하는데 수정체에 혼탁함으로 시야가 뿌옇게 보인다고 한다. 반대로 빛이 적은 환경에서는 홍채가 열리고 빛이 들어오면 동공이 커져 낮보다는 시력이 회복되는 현상을 보인다. 천경수는 자신의 이러한 증세를 속이고 완전히 눈이 멀어버린 듯 행동한다. 천경수의 직업은 침의로 소경이기에 가질 수 있는 대단한 관찰력으로 내의원에 뽑힌다. 그의 능력은 엄청난 관찰력과 직감, 침술뿐이 아니었는데 그는 주변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완전히 소경으로 믿게 하는 치밀한 연기력을 가진 인물이다.

장르와 세부적인 부분은 다르지만, 인도의 코미디 영화 <블라인드 멜로디>의 설정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이러한 천경수의 독특한 설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극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소경이지만 출중한 능력을 지녔기에 왕실의 일에 휘말리게 되고 결국 사건이 일어나자 사건의 모든 진실을 본 유일한 목격자가 된다. 하지만 자신이 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해서도 안되며 자신이 본 걸 말할 수 없는 처지에 있기에 사건은 점차 커져간다.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름대로 고군분투하지만 일은 꼬여만 가고 천경수는 결국 스스로 걸었던 제약을 벗어던진다.


이야기는 현재에는 대부분 부정되는 소현세자 독살설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인조는 청에 볼모로 잡혀갔다 돌아와 세력을 구축하는 소현세자를 불안요소로 생각했고 많은 핍박을 했다 한다. 소현세자 사후 장손을 건너뛰고 차남인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하였고 소현세자의 정실인 민회빈 강씨 역시 전복탕 독살 사건을 빌미로 역모를 꾀했다며 옥에 가두고 사약을 내려 죽였다. 인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강빈이 유언으로 저주를 했다며 그 자식들을 제주도로 유배 보내 하나를 제외한 전부가 죽도록 방치했다. 정사는 아니지만 소현세자의 주치의였던 이형익이 귀인 조씨의 사주로 소현세자를 독살하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 만큼 인조와 그의 총애를 받는 세력이 권력에 대한 독점욕이 매우 강했으며 청과 소현세자를 두려워했음을 알 수 있다.


야사를 기반으로 한 사극이지만 정사를 충실히 반영하려 노력했고 소위 '국뽕'에서 자유로운 소재였기에 보는 동안 불편하거나 거북스러운 느낌은 없었다. 다만 천경수라는 허구의 인물이 주인공인 만큼 극이 그를 위주로 돌아가 주변 인물들의 심리와 당시의 치열한 당파 싸움, 서민들의 삶 등을 확인하기 어려운 점이 아쉬웠다. 귀인 조씨가 보여줄 수 있었던 악녀로서의 카리스마와 치졸함, 인조의 정책을 둘러싼 치열한 정치, 무엇보다 천경수가 서민 출신임에도 확인하기 어려운 전쟁, 기근의 여파가 잘 드러났으면 어땠을까 한다.


3.


<올빼미>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연출을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주맹증을 앓고 있는 침술사라는 독특한 설정을 가진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며 낮에도 밤에도 무력함과 답답함을 느껴야 하는 그 심정을 연출로서 관객들에게 잘 드러냈다. 천경수는 밝은 곳에서는 무력하게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어두운 곳에서는 침술을 비롯한 세심한 관찰력과 침착함으로 사건을 이끌어간다.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의 대비는 연출과 구성으로 시간, 장소의 한계를 넘어 장점을 극대화시킨다.  작위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작위적인 불이 꺼지는 연출과 시간대 선정 덕분에 관객은 앞으로 등장할 장면에 더욱 집중하게 되고 이는 곧 관객의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의 등장을 예고한다. 역사의 서사를 따라가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개연성의 공백을 이러한 연출로 메꾸는 것이다.


또한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한 영화는 대부분 아주 무거운 담론과 주제의식을 다루거나 영웅의 이야기, 혹은 상상력에 기반한 코미디 활극으로 노선을 잡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올뺴미>의 경우 스릴러 장르의 사극임에도 중간에 지속적인 환기 요소(박명훈 배우가 연기한 만식의 존재나 천경수의 태연한 행동이 그러하다.)가 등장하여 분위기를 그리 무겁지 않게 유지한다. 이는 주제의식이나 사건의 무거움으로 흐름을 따라가는데 관객이 지치지 않도록 도와주며 극의 긴장감을 유지한다. 유해진(인조 역) 배우와 류준열(침경수 역) 배우의 훌륭한 연기도 몰입감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영화의 주제는 진실은 권력층에 따라 재단되며 사회적 약자는 진실 앞에서도 침묵해야만 하는가로 꽤 명확하게 드러난다. 극 내에서도 지속적으로 배우들의 입을 통해 언급될 만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진실을 목격했지만 사회적 약자이자 본 것을 봤다고 말하기 어려운 주인공은 절정의 단계에서 부딪혀 보기로 결심하고 종막에서는 권력의 정점인 인조가 말하는 것을 사람들이 믿지 않고 천경수가 본 것을 믿는 아이러니함이 드러난다. 대조 주제에 대한 답을 뚜렷이 드러내 줌과 동시에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만 그럼에도 현실이 크게 바뀌지 않음은 씁쓸함을 남기며 현실감을 부여한다.


함께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 중 몇몇은 급전개가 당황스럽다는 이야기를 한다. 실제로 러닝타임의 절반 가까이를 천경수가 왕궁에 입성한 후 적응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사용한다. 본격적으로 역사서에 등장하는 이야기인 소현세자의 죽음은 중반부 즈음부터 시작되는데 이는 관객마다 초중반이 지루하다, 갑자기 전개가 빨라져 따라가기 힘들다 라는 평을 보일 수 있는 여지가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역사에 등장하지 않는 천경수가 사건의 중심인물로 대두된 만큼 관객을 납득시키기 위해서 필수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또한 극 중 암투와 정치의 복잡함을 과감히 감축하여 극의 재미를 끌어올리고 관객이 식견이 부족한 천경수의 시선으로 사건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4.

위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좋았고 현시대에 꼭 필요한 주제를 역사에 비유한 것이 흥미로웠으며 상상력이 과도하지 않아 매끄럽게 이어지는 극이 편했다.


배우들의 명품 연기는 당연. 하지만 배경지식이 필요하고 작위적인 면이 가끔은 거슬려


별점 5점 만점에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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