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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사과 Dec 24. 2022

스님께 올리는 글

군 생활의 아름다운 기억

유튜브 알고리즘에 다큐 3일의 취재로 해군에 소속된 군종장교 스님 이야기가 올라왔다. 평소 머리를 식힐 겸 다이제스트 된 영상을 주로 보기에 긴 영상을 보는 편이 아닌데, 홀린 듯 시청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군종장교 스님과 관련된 아름다운 기억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크리스마스에 이 글을 쓰려니 어색하기는 하지만 나눔과 사랑이 넘쳐야 한다는 가르침은 모두 같을 것이라 감히 짐작하며 그때의 기억을 꺼내보려 한다.


2월 15일, 늦겨울. 귓볼을 스치는 바람이 아직 찬 기운을 머금고 있을 때 나는 훈련소에 입소했다. 교대를 졸업하고 교사 생활을 하다 늦깎이로 입대했기에 가족을 비롯해 주변에서 많은 걱정을 받았었다. 교사 선배들이 대부분 의무소방, 의무경찰, 공군 등으로 다녀와서 나도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고 공군에 지원했다. 한국 남자들이 으레 그렇듯, 입대 전 동기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교사 동기 중에서 제일 빠르게 입대하는 것이었기에 누구도 군대 금방 끝난다, 요즘 군대가 군대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본인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애써 유쾌하게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불러줄 뿐이었다. '진주는 남쪽이라 따뜻하니 옷은 얇게 입고 가. 다시 돌려보낼 때 짐이다. 그래도 곧 봄이니 훈련소가 그리 고생스럽지는 않겠다' 하며 부산 출신 친구 녀석이 위로를 건넸다. 그 말을 따르지 말았어야 했다.


마음이 추워서인지, 월아산의 맑은 정기를 너무 받아서인지, 진주는 아직 찬바람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내는 따뜻했지만 훈련소 부근만 추웠다. 군대를 다녀온 형과 아버지가 입대하면 못 먹고 들어간 음식이 생각난다며 새벽부터 온갖 음식을 먹였다. 그러나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데 음식이 들어갈 리가 있나, 먹는 둥 마는 둥 깨작깨작 뒤적거리기만 했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 어느덧 입소 시간이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전화하며 속세의 인연을 끊고 도축장에 끌려가는 돼지의 심정으로 훈련소 정문을 넘었다. 평소에 눈물이 많은 편이 아닌데, 저 멀리 내가 시야에 사라졌음에도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자꾸 밟혀 울컥하며 눈물이 글썽였다.

진주 냉면과 육전, 금산 휴게소. 정신이 없어 사진을 찍지 못해 검색하여 첨부한다.- 출처 조선일보, 네이버 블로그

의무 복무를 하는 장병들이 공통으로 가지는 마음가짐 하나가 있다면 아마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국방부 시계는 흐른다.' 일 것이다. 시간은 한강처럼 도도하게 흘러 어느새 주말이 다가왔다. 바쁜 훈련소 일정에 주말이란 사회와 다르게 쉬는 날이 아닌, 개인 정비를 하는 시간이다. 장구류를 정비하고 생활관을 청소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우리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려 왔는데, 그 이유는 바로 종교참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참석이라니, 무교인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를 가지는 시간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군대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원하는 사람에 한하여 성당, 교회, 법당을 선택해 종교참석을 할 수 있도록 (나름) 배려하고 있다. 우리가 그 시간을 기다린 이유는 당연하게도 마음의 위안을 얻거나 깊은 신앙심으로 스스로를 정화하기 위함이 아니다. 바로 초코파이, 몽쉘, 콜라 때문이었다.


훈련소에서 가장 당기는 것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80% 이상이 과자와 탄산음료를 말할 것이다. 훈련병의 건강을 위함인지 배식량도 일정하고, 당류라고는 밥을 씹고 씹어서 나오는 은근한 단맛이 전부인 훈련소에서 사제 음식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얻어야 하는 귀한 몸이시다. 심지어 우스갯소리로 '조교에게 경례를 우렁차게 하면 조교가 감탄하며 모자를 벗어 딸몽(딸기 몽쉘의 줄임말로 군대에서만 구할 수 있다.)을 준다'라는 농담을 하며 낄낄대고는 했는데, 이를 실천하여 기합을 받은 동기 녀석도 있었다. 그만큼 우리는 굶주려 있었다. 문제는 교회에서는 초코 몽쉘 2개에 코카콜라, 성당에서는 초코 몽쉘 2개에 환타, 법당에서는 딸기 몽쉘과 초코 몽쉘 중 선택하여 2개와 펩시를 준다는 것이다. 겨우 그런 게 문제냐고 비웃을 수 있겠지만, 과자 부스러기 하나가 소중한 훈련소에서 이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우정이냐 사랑이냐의 고민 그 이상의 고민이었다. 결국 각 종교에서 어떤 선택지를 제공하는지를 알아온 동기의 주도하에 생활관 별로 머리를 맞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 우리는 전장에 뛰어드는 병사의 심정으로 보무당당하게 종교 참석을 떠났다.


나는 동기 한 명과 함께 법당을 맡았다. 처음 보는 옆 중대 아저씨들과 대오를 맞춰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나아가던 우리는 이내 부처님의 시련을 마주하게 된다. 속세의 저열함을 목적 삼아 신성한 법당에 발을 들이려 한 우리를 응징하기 위함이셨는지 훈련소 마지막 주에 실시하는 전투 행군에 맞먹는 엄청난 오르막이 수도 없이 펼쳐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법당에 도착한 우리는 조교의 호통 아래 신속하게 착석한 후 '실내탈모 절대정숙'을 실시했다. 조교도 감히 부처님 앞에서 큰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는지 뒤에서 우리를 노려보다 조용히 법당 밖으로 나갔다. (전역 이후 생각해보니 군종 장교인 스님과 군종병은 엄연히 다른 소속이기에 멋대로 행동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한숨 돌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단아하면서 고즈넉한 분위기의 법당 내부가 눈에 담겼다. 무언가 압도되는 듯하여 감시하며 호통치는 사람이 없어도 모두 조용해졌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연단 뒤에서 승복을 곱게 차려입으신 스님 한 분이 올라오셨다. 오랜 시간이 흘러 얼굴도 잘 생각나지 않지만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 느낌만은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던 스님께서 마이크를 잡고 말씀을 시작하셨다.


"날씨가 춥습니다. 이 시간이 우리 거사 장병님들 마음 한편에 따뜻한 등불이 되었으면 합니다."


의미 없는 말, 상투적인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에서 뜨거운 것이 흘렀다. 스스로가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웠다. 군대에 오기 전 이 나라가 나에게 해준 게 뭐냐며 투덜대고 짜증 냈던 스스로가 부끄럽고, 겨우 과자 하나, 사회의 소식 하나 얻으려 이 공간에 발을 들인 목적에 수치스러워졌다. 물론 의무 복무 체제에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국가를 수호하고 내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신성한 의무를 짜증 나는 일로 치부하며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평가절하했다는 게 수치스러웠다. 동시에 스님의 따뜻하고 나긋한 위로의 말씀이 상기된 마음을 지그시 눌러주었다.


"스님은 우리 장병들이 젊음을 바쳐 이 자리에 와 있는 게 너무 자랑스럽고 뿌듯하면서 한편 마음이 아픕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군 생활 동안 많은 일이 있을 텐데, 스님이 한상 응원하겠습니다. 곁에 있지는 못하겠지만 항상 예불드리겠습니다." 


스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살포시 웃으시며 우리를 감싸 안으셨다. 어쩌면 나는, 우리 훈련병들은 그 따뜻한 한마디가 필요했던 것 같다. 사회에서 존중과 배려를 기본 덕목으로 배워 살아오던 우리에게 조교와 교관의 거친 호통, 빽빽한 규율은 버티기 어려운 족쇄였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애써 눈물을 참고 닦아내며 울음을 참았다. 동기들이 놀려댔지만 넘지가 많아 알레르기 때문에 눈물이 나는 거라 둘러댔다. 솔직히 그 뒤 말씀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눈물을 참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느새 스님이 떠나시고 군종병들이 올라와 사회 소식을 전해주었다. 종교 참석 중 이벤트로 사회 소식을 전해주며 진주 기본군사 훈련단 법당 카페에 올린 가족과 친지의 편지를 읽어주는 시간이 있는데, 이 때문에 종교참석을 하는 훈련병들도 많다. 나는 이때도 생각에 빠져 스스로를 돌아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는 하나의 결심을 내리는데, 솔직히 부끄럽기도 하고 잘 기억도 나지 않아 정확히 말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 당시의 결심으로 나는 병과 선택에서 공군 보직 중 SDT(Special Duty Team의 약자로 대테러 경호 임무를 수행하는 보직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SDT는 특수부대원 간의 경쟁을 그린 강철부대 1,2에 출연하여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를 선택하여 테스트를 통과한 후 나름 험난하고 보람 있는 군 생활을 보냈다.

강철부대에 나온 SDT와 FTX 훈련을 하며 CQB 시연을 보이는 SDT이다.-출처 매일경제, 네이버 블로그
헬기레펠 훈련 당시 찍은 사진이다. 군 생활 중 찍은 몇개 없는 사진이라 소중하다.

군 생활을 떠나 다시 교직으로 돌아왔지만 적응을 잘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거칠고 위험한 훈련을 많이 하다 보니 사람 걸걸해져 아이들과 사랑으로 보내는 순간이 힘들고 어려운 것 같다. 연말이 다가오니 스님의 말씀이 문득 떠오른다. 덕분에 한층 더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했는데 감사하다는 말씀도 전하지 못했다. 날씨가 추운데 잘 지내시는지 모르겠다. 지내시는 암자가 따뜻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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