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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사과 Jan 05. 2023

처음은 언제나 두려운 법

도로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최근 운전을 시작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된 후 군대를 전역하고 보니 어느새 20대 후반이더군요. 그동안 직장이 집과 가깝다는 핑계로 아버지와 친구들을 괴롭히며 차를 얻어 탔었는데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어 큰 결심을 하고 면허를 땄습니다. 청개구리의 성품을 타고난지라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뮬레이션 강습을 받는 바람에 떨어지면 바보라는 기능시험에서 낙방하고 두 번의 시도만에 붙었습니다. 당연히 놀릴 줄 알았던 아버지는 어쩐 일인지 한 번 떨어져야 경각심에 사고를 안 낸다며 다행이라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떨어졌다는 자괴감에 우울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말씀이 옳았다는 것을 알 것 같습니다.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한 달간 아버지께 주말마다 운전 강습을 받았습니다. 운전하기 험하다는 서울도 다녀오고 강원도 시골길 나들이도 다녀왔지요. 아버지의 지인을 통해 상가 건물 지하에서 주차 교습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차가 자꾸만 왼쪽으로 치우쳐 본의 아니게 옆 차를 위협하기도 했고, 끼어들기를 못해 같은 도로를 빙빙 돌기도 했습니다. 한 번 하고 나면 손에 땀이 흥건하고 온몸에 힘이 빠져 지쳐 쓰러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끼어들기도 자연스럽게 하고 내비게이션을 볼 수 있고, 백미러와 사이드 미러를 체크하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운전대를 잡기가 두려웠는데 점점 늘어나는 실력에 자꾸만 드라이브를 떠나고 싶었습니다.


운전을 할 수 있게 되니 좋은 점이 정말 많습니다. 우선 생활 반경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아무리 멀다 해도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극한의 집돌이였던 제가 자꾸만 어디로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합니다. 다음으로는 행색이 가벼워졌습니다. 운전을 할 수 없을 때는 항상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돌아다니느라 허리와 어깨가 빠질 듯이 아팠습니다. 게다가 겨울에는 옷도 두꺼우니 운신이 불편했지요. 차를 가지고 다니니 몸이 가벼운 것이 날아다닐 듯합니다. 또 여유가 생겼습니다. 시간표를 따지는 둥 어느 입구에 서야 빨리 환승할 수 있다는 둥 골치 아픈 계획을 짜지 않아도 되니 살 것 같습니다.


물론 나쁜 점도 있습니다. 일단 아무래도 위험하고 피곤합니다. 특히 저 같은 초보들은 초행길에 들어서거나 고속도로에서 빨리 달리게 되면 식은땀이 흐르고 운전대를 부서져라 잡게 되는 것 같습니다. 편하게 여유를 가지며 운전해야 사고도 덜 날 텐데 긴장을 하게 되니 피곤은 당연하게 따라옵니다. 지각속도가 아직 차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고속도로를 타면 도로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돈도 많이 듭니다. 잘 몰랐는데, 차 하나를 유지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더군요. 기름값부터 시작해서 보험료, 유지비 등등 경제에 취약한 제게는 또 하나의 난관이 등장한 셈입니다. 게다가 최근에 아버지의 도움 없이 혼자 시작한 운전은 마치 망망대해에 표류한 듯 막막하고 두려웠습니다. 출발하기도 전에 사고 났을 때 처리할 방법부터 고민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경험이기에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도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운전을 못해 가지 못했던 제주도 여행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제야 정말로 어른이 되어가는 느낌이 듭니다. 오늘은 어쩌다가 여자친구와 안성에 위치한 '웬디의 하루'라는 카페에 다녀왔습니다. 이전에도 제가 운전하는 차를 타보기는 했지만, 집에 데려다주거나 하는 정도였는데 오늘은 정말 놀기 위해 다녀온 것이라 감회가 새롭습니다. 뿌듯함 덕분인지 카페에서 파는 스콘도 맛있고 빙수도 맛있었습니다. 카페의 마스코트인 고양이도 귀여웠고요.

카페 '웬디의 하루'입니다. 인테리어도 예쁘고 음식도 맛있습니다. 고양이도 귀엽습니다.


겁나지만 앞으로도 운전대를 잡을 생각입니다. 아버지가 그동안 감당하셨던 무게를 조금이나마 나눠지고 싶은 마음도 있고, 홀로서기 가능한 인간이 되어간다는 느낌을 직관적으로 받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은 항상 두렵지만 역시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설레고 즐거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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