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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사과 Jan 09. 2023

간식 냄새

붕어빵, 떡볶이, 어묵, 타코야끼, 그리고 호떡

며칠 전 친구를 만나러 문정역에 다녀왔습니다. 평소 사람이 붐비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지하철보다 버스를 선호하는데 찬바람이 귓볼을 스쳐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타게 되었습니다. 퇴근 시간이 조금 지나 한산한 지하철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니 대학 시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술에 잔뜩 취해 허겁지겁 막차를 탔던 기억, 설레는 마음으로 동기들과 첫차를 타고 MT를 떠났던 기억, 임용고시 스터디를 위해 이른 새벽부터 피곤한 몸을 지하철에 실었던 기억까지 지나간 시간이 창 밖의 콘크리트를 타고 흘러가는 듯합니다.

그러다 문득 옆에서 풍겨오는 고소하고 달큰한 냄새에 신경이 갔습니다. 자리에 앉은 학생들이 소곤대며 델리만쥬를 하나씩 꺼내먹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오래 묵혀둔 추억이 떠올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계속 그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지하철만 타면 왜 그리도 델리만쥬가 먹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단 것을 먹으면 입맛이 떨어져 사탕 같은 간식을 좋아하지 않는데 델리만쥬는 가끔가다, 특히 지하철에서 그 냄새를 맡으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입 안에 침이 고입니다. 식욕을 자극하는 폭력적인 냄새도 한몫하겠지만 아마 어린 시절부터 차곡하게 쌓인 추억의 반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델리만쥬뿐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계속 살아오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각 계절이 되면 자신도 모르게 당기는 음식과 간식이 있기 마련입니다. 호, 불호를 떠나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지 못하듯 그 음식이 생각나면 수고로움을 자처하면서도 찾게 되는 그런 것들 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주로 겨울에 이러한 감정이 드는 것 같습니다. 기름진 것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겨울만 되면 꼭 호떡을 사 먹어야 하고, 길거리에서 파는 붕어빵, 어묵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꼭 주머니를 뒤져 꼬깃하게 접힌 천원짜리를 꺼내 손님도 없건만 뭐가 그리 바쁘신지 모르겠는 사장님을 크게 불러 간식을 사 먹고야 마는 것입니다. 요즘 현금을 들고 다니는 손님이 없어서인지 계좌이체도 받는다는 안내문이 적혀있지만, 역시 길거리 음식은 현금을 주고 사 먹어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법이기에 겨울이 되면 항상 약간의 현금을 들고 다닙니다. 만원권, 오만원권은 정이 없습니다. 가장자리가 약간 변색되고 접힌 자국이 있는 천원권, 크게 양보해서 오천원권이 그 순간을 완성시켜 줍니다.


솔직히 모두가 아는 맛이고 백번 먹어도 천상의 맛이라고 할 수는 없는 그저 그런 맛입니다. 찬 바람을 맞아 식어버린 붕어빵은 조금 데워준다 하더라도 봉투에 들어가면 금방 눅눅해지고, 기름에 찌든 호떡은 설탕물이 줄줄 흘러 먹기 불편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노점에서 파는 떡볶이는 계속 어묵 국물을 추가해 서로 찐득하게 들러붙어있고 어딘가 눅눅한 색의 꼬치에 꽂힌 어묵은 위생이 걱정입니다. 그럼에도 겨울에는 길거리 간식을 사 먹어야 하는 법입니다. 패션의 완성을 얼굴이라 하듯이 그 계절과 순간의 완성은 화려하게 꾸민 장식이 아닌, 사람과 행위가 모여 기억과 추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순간들이 평소에 잠자고 있다가 매개체를 통해 불현듯 수면 위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젊은 날을 반추하며 한탄 섞인 자랑과 불만을 표하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이제는 떠올리기도 힘든 흐릿한 유년시절에 가족이 모여 '개그콘서트'를 보며 귤을 까먹던 기억이 납니다. 형과 함께 아침에 몰래 일어나 티브이 소리를 최대한 줄이고 '탑블레이드'와 '하얀 마음 백구' 재방송을 봤던 기억도 애틋합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귤을 먹으면 아버지가 집에서 피우던 담배의 냄새가 아릿하게 코 끝을 맴돌고 아침에 우연히 티브이를 보면 새벽 특유의 차갑고 텁텁한 공기가 몸을 감싸는 듯합니다. 오감 중 가장 예민한 감각이라 그런 걸까, 저는 유독 냄새가 강렬히 남아 기억의 매개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따라 대학교 동기와 함께 역 앞에서 사 먹던 타코야끼가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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