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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사과 Jan 17. 2023

아주 주관적인 한국기행-제주도(2)

3박 4일 뚜벅이 제주 탐방기

큰일입니다. 아침부터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목이 칼칼한 것을 보니 감기가 슬며시 찾아온 듯합니다. 아직 갈 길이 먼데 벌써부터 컨디션이 난조를 보이니 걱정이 큽니다. 짐을 줄이기 위해 상비약을 챙기지 않은 게 큰 한입니다. 물론 찬바람과 비를 맞아 들어버린 감기가 타이레놀 하나로 나을 리는 없지만, 적어도 마음의 위안은 되었을 터입니다. 푹신한 침대에서 푹 쉬고 일어났음에도 오한이 들어 등골이 오싹한 것을 보니 쉽게 떨어질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궁여지책으로 아침 대용으로 사다 놓은 컵라면을 급하게 끓여 먹습니다. GS25에서 파는 '오모가리 김치찌개 라면'의 칼칼하고 뜨끈한 국물이 목을 타 넘어 속을 풀어주었습니다. 몸이 찌르르하고 울리며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을 보니 확실히 효과가 있습니다. 플라시보 효과이겠지만, 후식으로 어제 딴 귤까지 먹으니 면역력이 강해져 오늘도 신나게 제주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방에 짐을 꾹꾹 눌러 담고 숙소를 떠납니다. 하루 만에 정이 들어 아쉬운 마음으로 숙소를 다시금 돌아봅니다. 역시 정갈하고 아늑합니다. 가능만 하다면 '한 달 살기'를 해보고 싶을 정도이지만, 아쉽게도 사장님께서 한 달 살기는 받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땅 안으로 숨어버려 휑함이 감도는 숙소 앞 당근밭을 한번 돌아보고 2일 차 여정을 떠났습니다. 전사에게도 휴식은 필요한 법, 오늘 일정은 최대한 가볍게 잡았습니다. 제주도의 버스는 배차간격이 길기에 일정을 촘촘히 짜지 않으면 관광지 간 이동이 어렵습니다. 이는 곧 여행 전체의 피로도 증가로 이어질 것이 뻔합니다. 그래서 2일 차는 장거리 이동을 지양하고 숙소 인근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계획했습니다.

아쉬움에 다시 한 번 뒤돌아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선 버스를 타고 [오설록 티 뮤지엄-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신화역사로 15]을 향해 떠났습니다.
둘째날-전사에게도 휴식은 필요한 법

저는 평소 차와 커피를 즐겨 마십니다. 출근하기 전 커피 한잔으로 잠기운을 몰아내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점심을 먹고 나른할 때에는 아침보다 진하게 내려 먹기도 합니다. 퇴근하고 운동을 갈 때도 헬스장 앞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먹거나 편의점에서 '몬스터'를 챙겨갑니다. 개인적으로 몬스터는 '시트라'가 취향입니다. 새콤한 탄산이 부스터를 걸어주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루의 마무리도 역시 커피와 함께합니다. 아무래도 잠에 들어야 하니 카페인이 많으면 부담스럽기에 차나 디카페인을 마십니다. 이러한 저의 생활패턴을 알고 있는 친구들이 선물로 차나 커피를 보내주곤 합니다. 보통 오설록이라는 브랜드의 차를 선물해 주는데, 흔히 마시는 녹차나 둥굴레차가 아니라 신기한 향과 맛이 집을 가득 채우는 것으로 눌러 담아 보내옵니다. 은은한 배의 향기가 식욕을 돋워주거나 벚꽃의 향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들로 말입니다. 그래서 오설록 티 뮤지엄에 향하는 일정을 상당히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분명 어플에는 버스로 1시간 정도 걸린다고 나와 있었는데, 도착하고 보니 40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승객이 거의 없어 기사님이 신나게 달려주신 덕분입니다. 다음 정류장을 안내해 주기 전에 그 정류장을 지나버릴 정도였으니, 덕분에 시간을 아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멀미는 덤으로 얻었습니다. 정류장에 내리니 은은한 차의 향기와 향긋한 흙내음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 마스크를 내리고 숨을 한껏 들이쉬었습니다. 찬 공기와 차향이 어우러져 아이스티를 마시는 듯 상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5분 정도 걷자 오설록 티 뮤지엄으로 향하는 길이 보였습니다. 우측으로 길 건너에는 한눈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넓은 차밭이 가지런히 펼쳐져있어 소담스럽고도 웅대한 감정이 동시에 피어올랐습니다.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오설록 티 뮤지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아쉽게도 뮤지엄 자체는 공사 중이라 볼 수 없었습니다. 다만, 기프트 샾, 카페, 이니스프리 체험관 등은 열려있어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한 바퀴 크게 둘러보고 카페를 가기로 했습니다. 기프트 샾을 지나 이니스프리 체험관으로 향하는 길에 <뱀 조심>이라 쓰인 표지판이 보입니다.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보고 '뱀이다!'를 외치며 서로 놀리다 보면, 그 뒤에 펼쳐진 차밭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세련된 건축물 하나가 나타납니다. 이니스프리 체험관입니다. 안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날씨가 춥고 속이 헛헛하여 카페를 먼저 들리기로 합니다. 다시 발길을 돌려 향한 카페는 사람으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서로 어깨를 맞대어 왁자지껄한 와중에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보아하니 관광지 다운 정감 있는 느낌이라 어느새 입가에 웃음이 맺혔습니다. 어디에 앉아야 하나 두리번거리던 와중 감사하게도 짐을 치워주시는 젊은 커플 옆에 쑥스러운 인사를 건네며 앉았습니다. 음료와 다과는 생각보다 금방 나왔습니다. 차를 우리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했는데, 직접 뜨거운 물을 주전자에 부어 내려먹는 형태더군요.


저는 'BEST!'라는 꼬리표가 붙은 '세작'과 '달빛 걷기(ice)' 크림치즈 '그린티 더블 치즈케이크'를 시켰습니다. 사실 '한라봉 오프레도'를 먹고 싶었는데, 빈 속에 너무 단 것을 먹으면 더부룩할 것 같아 큰 결심을 하고 포기했습니다. 달빛 걷기와 치즈케이크는 일반적인 카페처럼 바로 먹을 수 있는 모습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세작은 뜨거운 물이 담긴 투박한 질그릇과 찻잎이 담긴 주전자, 작은 찻잔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다구였습니다. 어떻게 먹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중 쟁반에 놓인 설명서를 보았습니다. 차를 우리는 순서와 시간까지 적힌 섬세한 배려가 돋보였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예절 시간에 배운 다도를 생각하며 진중한 태도로 차를 우리고 한 모금 마셨습니다. 솔직히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은은한 풋내와 기름 냄새가 돼지 육수를 마시는 듯한 기시감을 주었습니다. '녹차를 먹인 돼지고기 맛이 사실은 녹차의 맛이었나?'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던 와중 동행자가 세작의 정보를 알려주어 의문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세작이란 4월 하순~5월 상순에 채취한 어린잎으로 만드는 전통차의 일종으로 그 모습이 참새의 혀 같다 하여 '세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합니다. 귀여운 사연을 듣고 나니 차에서 풍기는 은은한 풋내의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입맛에 맞지 않다고 맛없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노릇이니 한번 드셔보시는 것도 좋은 경험일 듯합니다. '달빛 걷기'는 산뜻한 배 향기가 흘러넘치는 후발효차의 일종으로 호불호 없이 가볍게 마시기 좋은 차입니다. 후발효차란, 오랜 시간 미생물 발효를 거쳐 만들어지는 차의 일종으로 향기가 진하고 맛이 부드러우며 입에 닿는 촉감과 뒷맛이 순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물리지 않고 계속 마실 수 있는 맛이었습니다. '그린티 더블 치즈케이크'는 특별한 것 없는 부드러운 크림치즈 케이크였습니다. 아무래도 차를 전면에 내세운 카페이기에 베이커리 종류는 상대적으로 특색을 줄인 게 아닐까 합니다.

오설록 카페의 메뉴와 차밭의 전경입니다.

기다리는 분들이 많아 오래 자리를 맡아둘 수 없었기에 부랴부랴 카페에서 나와 기프트 샾으로 향했습니다. 역시나 인산인해를 이루는 기프트 샾에서는 오설록에서 판매하는 여러 상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디워시, 핸드워시 같은 샤워 용품과 온갖 차 종류, 그리고 곁들이기 좋은 다과를 보기 좋게 진열해 두었더군요. 자연스레 형성된 줄을 따라가며 시향하고 구경하던 도중 너무나 마음에 드는 차를 두 종류 발견했습니다. '삼다 꿀배 티'와 '트로피컬 블랙티'가 그것입니다. 삼다 꿀배 티는 달빛 걷기와 마찬가지로 배의 향이 나는 차 종류인데 개인적으로 더 묵직하고 존재감이 확실하다 느꼈습니다. 트로피컬 블랙티는 산뜻하면서 진한 열대과일 향이 나는 차 종류인데 진한 달콤함이 코 끝을 맴돌아 후식으로 적절할 듯하였습니다. 다른 차를 전부 시향해 보았지만, 이 두 차가 계속 맴돌아 결국 구매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이니스프리 체험관'입니다. 체험관의 내부는 온화한 분위기의 조명과 높은 천장으로 아늑함과 시원함을 동시에 받을 수 있었습니다. 화산송이, 감귤, 동백꽃 등으로 마케팅으로 하여 제주 느낌이 물씬 나는 제품이 진열되어 있었고 한쪽에서는 직접 천연 비누를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유료입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며 입구 근처에 마련된 방명록에 도장을 찍으며 놀다 보니 어느새 2일 차 숙소 체크인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이니스프리 체험관 외부
이니스프리 체험관 내부의 방명록과 비누 만들기
아쉬움을 뒤로하고 택시를 잡아 [제주 신화월드-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특별자치도, 안덕면 신화역사로 304번길 38]로 향했습니다.


제주 신화월드는 워터월드, 놀이공원, 수영장, 쇼핑시설, 카지노 등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 시설입니다. 뚜벅이 여행객이 하루 쉬어가며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호텔 앞에 택시가 서자 도어맨이 다가와 차문을 열어주고 짐을 받아줍니다. 제 주제에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감격스럽습니다. 가족 단위로 많이 찾는 휴양시설이다 보니 로비는 사람으로 가득이었습니다. 체크인까지 시간이 걸려 예약 혜택 중 하나였던 놀이공원-신화월드를 먼저 가기로 하였습니다. 원래는 BIG3 만 탑승이 가능하다 했는데, 매표소에서 자유 이용권으로 업그레이드를 해주더군요. 생각지도 못한 행운에 기분이 들떠 입구를 지나 넓게 펼쳐진 대로를 신나게 뛰어다녔습니다. 그리 스케일이 크지 않아 스릴 넘치는 기구는 없었지만, 인기 애니메이션 라바를 테마로 한 섹션도 아기자기하니 귀여웠고 생각보나 퀄리티가 좋은 4D 상영관도 즐거웠습니다. 한참을 놀다 보니 어느새 체크인을 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부랴부랴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서 습관적으로 티브이를 켜니 예약자의 이름이 티브이에 나옵니다. 세심한 배려가 돋보입니다.

정말 신나게 놀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또 다른 혜택으로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는데, 특히 루프탑에 설치된 인피니티 풀이 정말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 바로 짐을 두고 스카이 풀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하나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제주도의 추운 날씨와 강한 바람입니다. 다행히 물은 따뜻했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혹은 짐을 옮기기 위해 잠깐이라도 물 밖에 나온다면 얼음장 같은 추위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몸을 퉁퉁 불려 가며 놀다 보니 어느새 허기가 집니다. 하루종일 라면 하나로 버텼다는 게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내일을 위해 든든한 영양 섭취가 필수인데 큰 실수를 할 뻔했습니다. 대충 물을 닦고 가운으로 몸을 감싼 채 방으로 돌아와 씻고 나갈 채비를 합니다.


신화월드 안에는 많은 음식점이 있습니다. 대부분 평도 좋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돌아다니며 고민한 결과 무난하게 곱창을 먹기로 했습니다. 한참을 먹다 보니 옆자리에 앉은 가족들의 대화가 들려옵니다. 아이들은 유튜브에서 본 통 대창구이를 먹고 싶은지 부모님께 졸라댑니다. 이제 2학년쯤 되었을까 싶은 남자아이는 아부를 하겠다며 아버지의 술잔에 술을 공손히 따라주고 누나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똑 부러지는 말투로 왜 통대창구이가 먹고 싶은지 조목조목 설명합니다. 너무 단란하고 귀여운 광경입니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남은 볶음밥 털어놓고 기분 좋게 방으로 향했습니다. 2일 차도 제주의 밤은 아름답습니다. 벌써 반이 지났다는 아쉬움에 괜스레 방을 정리하며 잠에 들 준비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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