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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사과 Mar 19. 2023

<스즈메의 문단속> 리뷰-스포 있음

아가르타의 유혹을 벗어나 마주한 밝은 현재

-아가르타에서 현실로-

<스즈메의 문단속>은 <너의 이름은>으로 한국에 이름을 알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재난 3부작 중 마지막 영화이다. <날씨의 아이>, <너의 이름은>에서 이어지는 <스즈메의 문단속>은 비록 전작과 세계관을 공유하지는 않지만 재난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 일부 주제에서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연관성 있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어린 시절, 동일본 대지진에서 어머니를 잃은 트라우마로 인해 내면에 깊은 슬픔을 가진 '스즈메'가 장발의 신비로운 미남 '소타'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머니를 잃은 기억에 슬퍼하지만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이모와 밝은 친구들 덕분에 제 나이 또래가 응당 가져야 할 명랑함을 보인다. 소타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스즈메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되돌리고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사랑하게 된 사람을 위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여행길에 오른다. 과거부터 이어지는 작은 인연의 끈이 의도하지 않은 형태로 이끌어 고향을 떠나게 된 스즈메는 규슈부터 도쿄를 넘어 어린 시절 자신이 살던 곳까지 일본을 서에서 동으로 횡단하는 대장정을 나선다.

스즈메와 소타의 운명적인 첫만남은 길 위에서 소타가 '폐허'가 어딘지 스즈메에게 물으며 시작된다.

이야기는 중후반까지 '다리가 하나 없는 어린이용 의자'가 되어버린 소타와 함께 자신이 뽑아버린 '요석'이 현현한 '다이진'을 쫓아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저너머의 세상에서 건너오는 거대한 힘의 덩어리가 현신한 '미미즈'는 '뒷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현세에 나타나 지진을 일으킨다. 원래 '요석'이었던 '다이진'은 고양이의 형태로 변해 소타에게 의자에 빙의하는 저주를 내리고 스즈메와 소타를 약 올리듯 도망친다. 추적하는 스즈메와 소타가 알 수 있는 정보는 SNS에 업로드되는 다이진의 사진과 다이진을 따라가다 마주하는 미미즈, 뒷문, 그리고 지진의 전조들. 오비이락이라 하였던가, 뒷문이 열려 미미즈가 현신하는 곳에는 언제나 다이진이 있었다. 귀납적인 추론으로 다이진을 잡으면 이 모든 어긋남이 바로잡힐 것이라 생각한 일행은 또 다른 요석이 있는 도쿄로 향한다.

'다이진'의 모습. 고양이의 모습으로 현신하지만 그저 모습만은 아닌게, 행동도 다분히 고양이스럽니다.


요석은 원래 '토지사'들이 미미즈의 꼬리와 머리에 박아 봉인할 때 사용한 매개체이다. 소타는 토지사의 후예로 현실에서는 교사가 되려 하는 교육학부 학생이다. 의자에 빙의하여 점점 의식을 잃어가는 소타는 애써 부정하지만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이진 대신 요석이 되어 과거 관동 대지진을 일으킨 엄청난 규모의 미미즈의 현신을 막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것을. 결국 고고하게 운명을 받아들이고 요석이 되어 이를 막아내지만 스즈메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소타의 할아버지를 찾아가 '인생에서 들어갈 수 있는 뒷문은 단 하나뿐'이라는 단서를 얻은 스즈메는 어린 시절, 동일본 대지진으로 어머니를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찾아 헤매다 들어선 뒷문을 떠올린다. 언제나 꿈속에 등장하는 그곳은 아름다운 밤하늘과 들판이 펼쳐진, 소타 대신 토지사의 일을 하며 마주한 닿을 수 없는 저 너머의 세상이었다.


소타의 친구 세리자와, 그리고 자신이 걱정되어 쫓아온 이모와 함께 기묘하고 불편한 동행을 하는 스즈메는 점차 고향이 가까워지며 자신의 트라우마와 과거, 그리고 현실의 인연을 새로운 시각으로 마주하며 자신과의 관계를 재정립한다. 그리고 극의 막바지에 들어선 뒷문에서 너무나 어리고 미약하던 자신을 위로하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아가르타


극 중에서 스즈메가 폐허가 되어버린 자신의 집에서 일기장이 담긴 양철 케이스를 보면 양각으로 '아가르타'라 적힌 것을 볼 수 있다. 전설 속 이상향 중 하나인 아가르타는 감독의 전작 중 하나인 <별을 쫓는 아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별을 쫓는 아이>는 여러모로 <스즈메의 문단속>과 공통된 설정을 많이 찾을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지구의 지하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가설인 지구공동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별을 쫓는 아이는> 장발의 남자와 학생인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여 함께 탐험하며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고 극복하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배경이 바로 아가르타로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도 이에 대한 아이디어를 확인할 수 있다.

스즈메와 뒷문. 뒷문을 통해 스즈메는 미미즈가 웅크린 저 너머의 세상과 왕래한다.

아가르타는 티베트불교에서 전승되는 '샴발라'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샴발라는 다툼이 없고 평화로운 이상향에 대한 아이디어로 서양에 전해져 작가들로 하여금 '샹그릴라', '아가르타' 등 다양한 전설 속 이상적인 왕국의 모습으로 변형되었다. 그중 아가르타는 지구 내핵에 위치했다고 언급되는 전설의 왕국이자 이상향이며 지구 공동설에 대한 믿음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아가르타라는 이상향을 통해 관객에게 닿을 수 없는 '저 너머의 세상'을 보여주려 한다. 눈앞에 선명이 존재해 마치 닿을 수 있는 듯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사라지는 신기루처럼 아가르타도 모습을 보여주는 것까지는 허락하지만 그 이상은 내어주지 않는다.


<별을 쫓는 아이>의 주인공 아스나와 류지도, <스즈메의 문단속>의 스즈메와 소타도 제 나름의 소망과 이상을 좇아, 혹은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이어진 악연에 휘말려 아가르타 같은 이상향으로 형상화되는 '저 너머의 세상'에 연결점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본질을 바라보지 못하는 수박 겉핥기식 행동을 한다. 스즈메는 어머니를 잃은 트라우마로 소타와 그의 일에 필요 이상으로 몰입하고, 소타 또한 토지사라는 가업에 얽매어 미래와 꿈을 희생한다. 이들은 모두 너무나 당연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수동적으로 끌려다닌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은 이처럼 '닿을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과 열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별의 목소리>, <초속 5센티미터>등 대부분의 이야기 모두 멀리 떨어져 버린 대상을 그리워하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좌절하거나 주변의 소중함을 놓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별을 쫓는 아이>와 <스즈메의 문단속>의 아가르타를 통해 구체화된다. 이 두 영화는 서로 떼 놓을 수 없는 관계다. <별을 쫓는 아이>는 사실 그리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여 만들어진 듯 보이는 <스즈메의 문단속>은 감독이 하려는 이야기가 좀 더 자세하고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스즈메는 여정 중 많은 인연을 만난다. 동갑내기와 하룻밤을 보내며 친구가 되기도 하고,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의 스낵바에서 일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숙식을 제공받기도 한다. 또한 소타의 친구인 세리자와에게 어리광을 부리며 고향을 가는데 도움을 받는다. 고향으로 향하던 중 자신을 쫓아온 이모와 속마음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과거와 트라우마, 이모의 희생과 슬픔을 마주하기도 한다. 이처럼 스즈메는 맹목적으로 닿을 수 없는 것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시야를 '과거의 트라우마'로부터 '현재와 미래의 소중한 인연'으로 옮기게 된다. 바로 이 지점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전작과 다르게 관객에게 진심으로 전하고자 하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과거와 마주하며 시야를 주변으로 돌려 인연이 닿은 것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소타의 친구 세리자와, 그리고 스즈메의 이모. 세리자와는 경박한 생김새와 다르게 친구와 인연을 소중히 하는 인물이다. 어쩌면 감독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과거와 완전히 이별하라는 것은 아니다. 영화 속 등장하는 열쇠, 끈 매듭, 의자는 모두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임과 동시에 자신의 아픔을 마주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들이다. 이를 통해 스즈메는 꿈속에서나 관찰자의 시야로 바라보던 과거를 탈피하고 주도적으로 문을 열고 닫을 수 있게 되었으며 그 아픔이 현재까지 이어져 극복하는 과정에서 미래를 바라볼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다리가 하나 없는 의자를 버리지도 못하면서 방에 그대로 두고 있던 스즈메는 교복의 끈 매듭을 단단히 조이며 의지를 다지고 결국 밝은 현세로 나아간다. 뒷문 안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소중히 간직한 채로, 과거의 어리고 미약한 자신을 위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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