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모순 중에서〉
1998년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던 양귀자의 소설 〈모순〉이 다시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되어 회자되고 있다. 을사년도 벌써 이월 중순으로 들어서고 있다. 나라가 어수선하니 당최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다. 작년 마무리도 그냥저냥 흐르고 올해 시작도 뚜렷한 목표 없이 시작되어 흔적 없이 빠져나가고 있다. 나는 내 생을 어디에 걸어둔 걸까? 자식? 남편? 부모? 형제? 이웃? 사회? 깊이 내 안을 들여다보게 하는 문장이다. 이와 유사한 생각을 주는 문장이 "혼불"에도 있다.
“여그다 너를 걸어야 히여. 가문 좋고 문벌 존 사람은 거그다 저를 걸고, 재산이 많은 사람은 또 거그다 저를 거는디, 이도 저도 아무것도 없는 너는, 여그다 이 단초 한 개에다 너를 걸어야 히여. 무신 교옹장헌 넘의 껏, 체다보도 말어라, 넘의 껏은 암만 좋아도 다 쇠용없는 일잉게로. 니 꺼이나 놓치지 말어.”
시어미는 그 빨강 앵두 단추를 서운이네 눈앞으로 바짝 들이밀며 오금 박듯 말했었다. <혼불 3권 274쪽>
시어머니가 며느리 서운어미에게 방물장사를 대물림하면서 하는 말이다. 장사의 내공을 전수하면서 인생살이의 철학까지 전하는 인생 선배 시어머니. 남 보기에는 보잘것없고 사소한 직업일지라도 그것이 내 일이 되었다면 최선을 다하라고 앵두 단추 한 개만 떨어져도 옷매무새가 엉망이 되듯 그 단추 하나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결국에는 인맥을 쌓게 되고 단추 하나가 목숨을 이어가게 되는 젖줄임을 알라고 젊은 며느리에게 당부한다.
나는 이 부분을 단추철학이라 저장해 놓고 수시로 꺼내어 들여다보곤 한다. “남의 것 욕심부리다가 내 것마저 놓치고 마는” 인생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워낙 호기심이 많아서 여기저기 기웃거릴 때가 많다.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이 많다. 그림도 글씨도 플롯도 드럼도 뜨개질이나 재봉까지 어설프게 손을 댄다. 어느 한 가지 끝을 보지 못하고 또 다른 것에 관심을 둔다. 이것도 욕심임을 깨닫는다. 하나, 하나가 서운하면 둘, 셋? 아무리 부케시대라고 하지만 내 본연의 것이 튼실해진 뒤에 부케를 채우는 것도 늦지 않으리라.
먼지가 뽀얗게 앉은 책을 꺼내 읽은 보람이 있다. 20여 년 전에 읽을 때와는 또 다른 감흥을 준다.
“인간은 각자가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하면서 난 갈등을 잠재운다.
#혼불#모순#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