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의【생각 한 잔 드시지요】를 읽고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얻는 안식
코로나19로 인하여 봄조차 빼앗겼다고 여기며 옹송그리고 보낼 때였다. 외출을 자제하고 만남도 멀리하며 거리를 두던 나날은 시간도 멈추어 있는 듯했다. 그러나 계절은 흘러 활기차게 들판을 적시고 있었다. 들녘엔 감자꽃이 피기 시작하고 모내기를 마친 논에선 개구리들의 울음소리가 마지막 연둣빛을 뿜어내고 있다. 그야말로 산들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들녘은 닫혔던 마음을 열기에 충분하다. 머리를 식힐 책 한 권이 곁에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시인이자 수필가인 김용옥 작가 네 번째 수필집인【생각 한 잔 드시지요】는 마흔한 편의 수필로 구성되었다. 행간에 머물며 자연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게 되고 더 나아가 가족과 이웃, 세상을 향한 발걸음의 방향을 고민하게 한다. 아직 갈아엎지 못한 마음밭에 올곧은 생각을 심어주고 내공을 갖춘 삶을 추구하게도 된다.
더욱 반가운 것은 ‘씨오쟁이’, ‘뱅뱅이질’, ‘낭차짐하다’, ‘타분하거나 짐짐하다’, ‘사슴사슴’, ‘빗대짐’ 등 정감 있는 순우리말을 자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씨오쟁이(씨앗을 담아 두는 짚으로 엮은 물건)’란 네 음절에서 잊혔던 풍경이 오롯이 살아난다. 씨오쟁이에 콩이나 팥 등 내년을 위한 씨앗이 담겨 있고, 달걀꾸러미나 삼태기, 망태, 가마니에 이어 덕석까지도 짚으로 만들어내던 삶을 엿볼 수 있다.
꽃을 키우는 자와 꽃으로 피어나는 자
김용옥 작가는 꽃을 심고 가꾸면서 위로와 평안을 얻는다. 꽃마리, 봄맞이꽃, 복수초, 타래, 은꿩다리, 솜방망이, 매발톱, 뻐꾹나리, 누운주름잎 등 백서른세 가지나 되는 야생초를 가꾸며 삶을 수용하고 마음을 다스린다. 특히 ‘하양 나팔꽃’을 키우면서 못다 한 사랑을 이어간다.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달랠 수 있는 추억의 꽃이다. 나에게도 위로가 되고 힘을 주는 꽃이 있다. 함박꽃이다. 어릴 적 내 아버지는 앞 화단은 물론 뒤뜰 가득 함박꽃을 키우셨다. 해마다 오월이 오면 집안에도 은은한 함박꽃향과 활짝 핀 큰 얼굴들이 온 집안을 감싸곤 했다. 아버지 떠나신 지 오래지만 지금도 오월이 되면 함박꽃을 보며 아버지를 기리는 의식을 행한다.
훗날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 생각나는 이가 있고 그것을 보며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을 수 있음은 우리 곁을 떠나간 이들과의 교신을 일찍 어떤 꽃으로 현신하여 어떤 이의 시린 어깨를 감싸 줄 수 있을까?
유월의 삼천천은 바람을 노래하는 소리쟁이. 화해를 소망하며 피기 시작한 개망초. 보라색의 갈퀴나물꽃과 각시붓꽃. 하얀 등을 달고 있는 토끼풀. 노랗게 꽃을 피운 씀바귀나 애기똥풀, 금계국. 그 위를 날아드는 노랑나비. 김의털이나 새포아풀 위에서 먹이를 찾는 참새 등이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이 책을 읽은 후엔 이러한 자연의 변화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고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곁에 앉아 그들의 얘기를 듣고 싶어진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들 모두 ‘먹다 죽다’의 생활인이 아니라 ‘먹다 꽃 피고 죽다’의 사랑이 되면 진짜 좋겠다”
작가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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