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살구꽃이 피던 고향은 어드메뇨

엄마 일기- 아흔한 살 엄마의 어느 하루

by 아침햇살


“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사안골

복숭아꽃 살구우꽃 아기 진다알래...”

섬진강 줄기 따라 벚꽃 마중을 나가는 길, 아흔한 살 엄마는 어깨를 흔들흔들 고조된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진안에서 한 시간 이십 분을 달려 구례에 도착했다. 온 동네가 초입부터 눈을 환하게 밝힌다. 쌍계사로 오르는 길은 벚꽃이 터널을 이루어 와와와 함성이 터진다. 졸던 엄마의 외씨 같은 눈도 크게 떠졌다. 열어젖힌 선루프를 통해 벚꽃 잎이 포르르 날아든다. 엄마는 목에 두른 진달래색 스카프를 풀어 무릎 위에 살포시 펼친다. 그 위로 하얀 천사가 내려앉듯 나풀나풀 벚꽃이 수를 놓는다.

“ 사구라꽃이 피었어요. 나도 피어나요.

꽃잎을 받아요. 나도 받아줘요. 그대여”

박자는 맞지 않지만 들려오는 노랫말을 바꿔 부르신다. 우리 일행은 귀엽고 깜찍한 엄마를 대하면서 여정이 더 즐거워진다. 흥이 많은 그녀임을 다시금 느끼며 기억의 우물에서 엄마의 모습들을 건져 올린다.


내가 사춘기일 때는 몰랐었다. 엄마는 매일 새벽별 보고 나갔다가 저녁달 뜨면 들어올 때가 많은지라 일만 아는 억척스러운 그녀라고 치부했다. 시골 아낙이란 참으로 고되고 낭만도 없는 촌스런 구릿빛 인생이라고 여겼다. 딸의 첫 생리일도 모르고 가슴이 봉긋해진 지 오래되었어도 브래지어를 사 주지 않는 엄마가 이해가 안 갔다. 그런 엄마처럼 살기 싫어서 나중에 크면 나는 도시 남자랑 결혼을 할 것이고 내 딸은 엄마처럼 키우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다못해 밥을 먹을 때조차도, 숟가락 잎사귀에서 멀리 잡고 먹어야 시집을 멀리 간다는 어른들의 말을 믿고 주술을 걸듯 숟가락 끝을 잡고 먹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반공일이라서 일찍 수업이 끝났다. 4킬로미터를 걸어서 동네 어귀에 도착했을 때 장구소리가 고샅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가까이 갈수록 전 부치는 냄새가 코를 벌름거리게 만들고 꼬르륵꼬르륵 십 리를 걸어온 허기는 잔칫집을 기웃거리게 만들었다. 지선이 엄마가 보이고 현진이 엄마도 있다. 그 친구들은 엄마의 당기는 손짓에 따라 당당하게 들어갔다. ‘우리 엄마는 일하러 가셔서 잔칫집에는 안 계시겠지’ 발길을 돌리는데 “야야, 왜 그냥 가노. 여그서 밥 묵고 가”작은 엄마가 불러 세운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한 자리 어쭙잖게 끼어 앉았다.

노란 양푼에 한가득 말아준 잔치 국수 위 채친 애호박의 연둣빛이 유난히 싱그럽다. 멸칫국물 냄새를 먼저 들이킨다. 호로록호로록 친구들과 경쟁하듯 먹고 나니 허기가 채워진다. 마당 한가운데서 흥건하게 물이 오른 춤꾼들이 그제야 보인다. 장구를 맨 옆집 아저씨와 꽹과리를 치는 혜경이 엄마, 불콰한 얼굴들에서 일에 찌든 모습은 사라지고 흥겨움에 젖은 모습들만 피어나고 있다. 눈을 지그시 감고 너울너울 가락을 타는 몸짓과 부드럽게 구부렸다 펴는 손가락의 곡선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끼는데 ‘어어? 우리 엄마다’. 몸뻬 대신 분홍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입은 낯선 차림, 엄마가 이렇게 한가하게 놀이판에 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춤사위는 본 적이 없었다. 엄마도 춤을 출 수 있구나. 저렇게 분위기 있고 끼가 넘치는 분이셨구나.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흥이 많고 즐길 줄 아는 여인만 있었다.

다시 한번 엄마의 뒷모습에 놀라웠던 때가 떠오른다. 중학생 시절, 야간 자율학습을 하던 때이다. 그때는 급식이라는 것이 없을 때였으니 우리는 점심 도시락과 저녁 도시락까지 싸갈 때였다. 도시락이 두 개였으나 2ㆍ3교시 끝나면 이미 하나는 다 먹어치웠던 때이다. 선생님은 건강 생각해서라도 제시간에 식사하라고 검사까지 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6시 30분에 집을 나서서 4킬로미터를 걸어서 등교(4킬로미터 이내의 학생이 버스를 타고 등교하면 교장선생님께 혼이 났었다.)한 우리는 점심시간까지 참을 수가 없었다. 저녁밥으로 싸 온 도시락은 점심때 먹고 저녁에는 배가 고파서 여기저기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요란할 즈음 엄마들은 당번을 정해서 간식거리를 준비해오시곤 했다. 우리 당번일 때는 걱정을 했다. 늘 바쁜 엄마가 기억이나 할까? 그러나 “저기 너네 엄마 오셨다” 하는 소리에 뛰어가 보니 옥색 한복을 곱게 입은 엄마가 교무실 앞에서 서성이고 계셨다. 머리에 이고 온 스텐대야에는 아직도 따듯하고 낭창낭창한 가래떡이 한가득 있었다. 정갈하게 다듬어 빗은 머리, 다홍빛 연지로 물들여 있는 입술에 살포시 미소를 머금은 엄마는 그 누구의 엄마들보다 더 곱고 정갈했으며, 다정했다. 사춘기, 엄마에 대한 반항은 그날로 끝이었다. 무조건 엄마 편이 되기로 했다.

이제 엄마는 팔 남매를 키우기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온 세월을 가지고 놀면서 아흔하나의 여흥을 누리고 있다. 엄마의 고향 포동에서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난 엄마는 시집오기 전 그때가 그리운지 반복해서 그 시절을 부른다.

“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사안골

복숭아꽃 살구우꽃 아기 진다알래...”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엄마,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