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봄이다. 섬진강물이 하루에도 세 번 바뀐다는 계절이다. 이때쯤이면 혜숙언니는 섬진강을 수시로 들락거린다. 강물이 풀렸나, 매화가 벙글었나, 벚꽃이 만발했는지 안부를 물으러 달려가곤 한다. 드디어 엄마를 모시고 갈만하다고 연락이 오고 동행하게 되었다.
“꽃놀이 가는데 우리 엄마도 예쁘게 꽃단장하셔야지.”
언니가 장난스레 말을 건넸다.
“다 늙어 쭈그렁망태 할매를 뭐 하러 처 발러. 그게 그거지.”
하시면서도 얼굴을 내미신다.
언니는 토닥토닥, 엄마의 고된 인생을 다독이듯 꾹꾹 눌러 바른다. 쭈글쭈글 바를 곳도 없이 작아진 입술에 큰 산 하나를 그린다. 거울 속 엄마 얼굴에 낙낙한 웃음 한 바가지가 걸렸다. 아흔의 여자, 그 얼굴엔 여전히 봄빛이 피어난다.
엄마의 큰 변화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나 언니와 하와이에 있는 미숙 언니의 초대로 여행을 다녀오신 후이다.
“미국 여자들은 늙으나 젊으나 똑같이 입술을 삘겋게 칠하고 다니더라.”
하시더니, 외출할 때면 어김없이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하얀 분을 두드리시며 묻곤 하신다.
“좀 더 이쁘냐?”
두 언니가 엄마에게 선물한 것은 캘리포니아의 번화함과 하와이의 화사함뿐만 아니라 메마른 가슴에 여유로운 낭만을 안겨 드린 것이다.
“엄마, 아버지 처음 봤을 때 어땠어? 꽃다발을 받아본 적은 있었어?”
“그때는 꽃이 지금처럼 흔했간디. 꽃은커녕 얼굴이 새까맣게 탄 느그 아부지가 무서워서 말도 잘 못 붙였제.”
엄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잠시 눈을 감는다.
“근디 지금 생각해 보니 꽃 같은 날도 있었네. 아마 느그 아부지가 면장 일을 퇴직하고 무료하게 보내고 있을 때였을 거여. 하지도 못하는 소 꼴을 베러 갔다가 소 꼴은 알량하고, 대신 칡꽃 한 묶음을 꼴망태에 달랑달랑 매달고 와서는 정지 문고리에 걸어놓더라고. 참, 별일이지.”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소 여물통 앞에 멋쩍게 앉아 있었을 아버지를 떠올린다.
“눈이 훠언허다잉. 속이 다 시원허네.”
엄마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꽃구경을 하셨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스카프를 펼쳐 벚꽃을 받는 엄마의 손톱을 바라본다.
그 손톱 위에 빨간 봉숭아 물을 들여주고 싶어진다.
“엄마, 나 초등학교 다닐 때 여름날 마당에 멍석 깔고 누워 있으면, 엄마가 봉숭아 꽃잎으로 손톱에 물들여 줬잖아. 백반이랑 숯을 섞어 올리고 포도잎으로 싸서 무명실로 동여매 주던 것 기억나?”
엄마가 눈을 감고 잠시 조용하다. 스카프로 받았던 꽃잎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왜 아무 말씀도 안 하셔?”
“아이고, 휘발유가 다 떨어졌어. 당최 기운이 없네.”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기억은 사라지는데, 유머는 여전히 살아 있어 감사할 일이다.
“우리 혜숙이가 끓여준 다슬기국이 최곤디.”
엄마의 말에 언니가 주방으로 들어간다. 다슬기를 여러 번 문질러 씻어 물기를 빼고, 된장을 한 숟갈 풀어 물을 끓인다. 호박과 마늘은 얇게 채를 치고, 청양고추는 통째로 넣었다 건진다. 부르르 끓는 물에 혀를 내민 다슬기를 넣고 한참 자갈자갈 끓인다. 다슬기를 건져내고 호박과 마늘, 파를 넣는다. 옥빛처럼 반짝이는 다슬기 속살을 넣고 한 양푼 떠서 드렸다.
엄마는 “맛나다, 하도 맛나.” 하시며 후루룩 국물부터 마신다.
“엄마, 나 어릴 때 다슬기 먹으려면 탱자나무 가시를 식구 수대로 꺾어오라 했잖아.”
“그랬냐? 몰라.”
“엄마가 한두 번 시킨 것도 아니면서.”
“오늘 아침약은 드셨우?”
“몰라. 먹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그렇게 총명하시던 엄마가 요즘엔 모르는 게 많다. 교회 가는 날도 가물거려 전화를 걸 때마다 “오늘 예배당 가는 날이냐?” 묻곤 하신다.
엄마가 태어난 지 삼만 삼천이백십오 일, 그 머리카락 사이로 칠십구만 칠천백육십 시간이 흘러갔다. 이제 기억하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망각의 터널 속에 들어서신 것이다. 새로 산 옷을 잘 둔다고 두고서 종일 농을 뒤지며 누가 가져갔나 하시고, 막둥이에게 준 학독(돌확)을 딸들이 가져갔다고 의심하신다. 용돈을 받아 어디에 두었는지 잊고선 이 아들 저 딸을 불러 세우신다. 결국 당신의 쌈지 속에서 찾고는 “늙으먼 죽어야 혀.” 쓸쓸히 되뇌신다. 이십오 리 길 관촌장을 걸어 다니시던 발걸음이 이젠 지척의 화장실 가기도 버겁다.
철인 권여사도 세월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그래도 아흔의 여자, 그 미소만은 아직 봄날처럼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