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와 타자성

진짜 내가 앉을자리를 지키는 법

by 간극

우리는

나를 지키고 싶어 하면서도,

타인의 시선 속에서 확인받고 싶어 한다.


숨기고 싶은 것은 숨기면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과장한다.


사생활은 감추고 싶어 하면서도

계정은 노출되길 바라는

모순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


통장 잔고는 비밀이지만

차와 가방은 드러나야 하고,

실제로 읽는 책은 가벼워도

sns에는 니체와 카뮈가 놓인다.


성찰하고 싶은 욕구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겹쳐질 때,

독서는 방향을 잃는다.


읽기 위해 책을 드는 것이 아니라,

보이기 위해 책을 들게 된다.


그때 책은 내용이 아니라

이미지가 된다.


그 선택의 기준이

이미 내 안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있다.


보이는 것의 파괴력을 믿으면서

익명성의 권력은 기꺼이 누린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은

이제 낡았다.

우리는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즉시 sns에 전송하는 시대다.


신념은 드러나지 않을 때는 정의가 되지만,

드러나는 순간

지키지 못한 자신을 향해 돌아온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기준을 바꾼다.


내 기준이 단단해도

타인의 인정이 없으면 흔들리고,

내 기준이 불안해도

타인의 인정이 채워지면 묵인된다.


혼란은

나와 타인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잃고,

다시 찾기 위해

고독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고독을 견디기 전에

노출을 선택한다.


몇 초면

고독은 끊어지고

타자는 들어온다.


문제는,

그때마다

내 자리가 조금씩 비워진다는 데 있다.


자아는 말한다.

함께하자고.


존재는

아무 말 없이

고독의 옆에 남아 있다.


혼자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고독 속에서도

내 자리를 비우지 않은 채

타자와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sns의 타자들에게

내 자리를 너무 쉽게 내주지 말아야 한다.


그 자리에 오래 앉히다 보면,

정작 내가 앉을자리는

조용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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