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이유

존재의 동기화

by 간극

가까운 사람의 부재는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반면, 잃어버린 물건이나

스쳐 간 관계의 빈자리는

마음에 걸릴 뿐, 존재를 흔들지는 않는다.


같은 ‘부재’인데,

어떤 부재는 아프고

어떤 부재는 무겁지 않다.


그 차이가 단순한 거리 때문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멀리 있어도 내 안에 살고,

어떤 사람은 가까이 있어도 끝내 타자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를 타자로 두지 못한다.

그는 더 이상 남이 아니라,

내 존재의 일부가 된다.


나는 이것을 존재의 동기화라 부르겠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상태다.


살면서 우리는 이런 동기화된 존재를 만난다.

가족, 가족 같은 친구, 사랑하는 사람.

엄밀히 말하면 타자이지만,

그들의 타자성은 거의 사라진다.


반대로 자아로만 맺어진 관계도 있다.

그 관계가 끊어져도

존재는 무너지지 않는다.

실망은 남아도, 붕괴는 오지 않는다.

아픈 것은 기억이고, 흔들리는 것은 마음일 뿐이다.


결국 고통의 크기는

‘어떤 타자의 부재인가’에 달려 있다.


동기화된 존재가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자아의 상처를 넘어

존재의 상실을 정면으로 겪는다.


그때 의식과 무의식과 존재가

하나의 감정으로 무너진다.

그것은 슬픔이라기보다, 붕괴에 가깝다.


위로나 격려는 틈을 찾지 못하고,

말은 도움이 아니라 소음이 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인간에게 망각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존재와 무의식은 그 고통을 기억하겠지만,

의식은 서서히 옅어진다.


망각은 배신이 아니다.

고통을 지우기 위한 장치도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무너지지 않은 채

다시 살아가기 위해 세운

가장 마지막의 경계선이다.


그래서 우리는 잊는 것이 아니라,

망각에 기대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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