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눈을 가린 채 비수를 던진다

화의 임계점

by 간극

우리는 대개 참고 견디는 데 익숙하다.

침묵은 미덕처럼 포장되고, 버티는 것은 성숙처럼 취급된다.

그래서 진실을 말하는 순간, 그 대가는 늘 타인의 시선과 함께 돌아온다.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우리는 배려와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의 분노에 족쇄를 채운다.

그러나 감정으로서의 화에는 분명한 임계점이 있다.

아무리 묶어 두어도, 넘칠 지점은 존재한다.


문제는 타인과 사회가 그 임계점에 거의 관심이 없다는 데 있다.

오히려 "소심하다", "예민하다", "너무 날이 서 있다"는 말로 다시 한번 족쇄를 채운다.

마치 화를 느낀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처럼.


하지만 사람마다 화의 임계점은 다르다.

기질, 경험, 상처의 깊이, 버텨온 시간에 따라 그 선은 전혀 다른 곳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타인의 화를 지적하기 전에,

그 화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먼저 살피는 것이 더 정직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는 정말로 타인의 화가 형성되는 과정에 아무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던진 한마디가 비수였는지 격려였는지는, 결국 타인이 느낄 몫이지 내가 판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내가 던진 말은 가벼웠을지 모른다.

입술을 떠날 땐 가벼웠던 말이,

공중에서 성질을 바꾸어 당신에게는

비수로 도착했음을 나는 끝내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맞은 사람만 아는 고통 위에서 아무 일 없었다는 얼굴로 살아간다.


우리는 눈을 가린 채 비수를 던진다.

맞은 사람은 비명을 지르지만,

던진 사람은 그저 말을 건넸을 뿐이라 생각한다.


너도 맞고 나도 맞는 이 아수라장에서,

화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거짓일 것이다.


우리는 종종 무의식적으로 상처를 던지면서,

타인의 반응만은 의식적으로 재단한다.


그래서 어쩌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인내가 아니라,

타인의 임계점에 대한 감각일지도 모른다.


선을 넘었을 때만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넘지 않도록 서로를 살피는 태도.


그런데 과연, 우리는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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