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통찰의 비겁한 알리바이
관계에 슬며시 스며드는 놈이다.
처음엔 별거 아닌 것처럼 들어온다.
근데 한 번 자리를 잡으면,
과거부터 현재,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까지
모조리 끌어다가 태워버린다.
시간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화마의 시작이다.
이놈은 침입은 쉽다.
골치 아픈 건 그다음이다.
안에 안착하고 나면 어지간해서는 도려내지지 않는다.
도려냈다고 믿는 순간조차 이미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작된다.
잘 낫지 않는 마음의 고약한 난치병이 된다.
우리는 보통 의심의 이유를 밖에서 찾는다.
믿음의 결핍이나 타인의 변심 같은 것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른 지점이 보인다.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갈 거라고 믿었던 확신,
그 '예측의 체계'가 무너진 쪽에 더 가깝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걸 미리 정해놓고 산다.
정보를 모으고,
판단을 쌓고,
저 사람은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나름의 결론을 써둔다.
일종의 '미래의 판결문' 같은 것들이다.
정작 자신은 그걸 인지하지 못한 채로.
의심은 그 판결문이 틀렸을 때 생긴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선택, 생각지 않았던 반응,
전혀 다른 가능성이 튀어나오는 순간 비로소 이상한 감각이 고개를 든다.
지금부터는 끝을 알 수 없는 혼자만의 재판장이 열린다.
의심은 빈약한 정황을 확정적인 물증으로 순식간에 둔갑시킨다.
이미 '유죄'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그 결론에 부합하는 조각들만 수집해
'합리적 의심'이라는 정교한 판을 짜 맞춘다.
그것은 실체를 밝히려는 추론이 아니라,
자신의 오판을 가리기 위한 치밀한 조작극이다.
우리는 좀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쪽으로는..
이미 너무 많은 걸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생각도, 시간도, 확신도.
그 '확신의 매몰비용'을 인정하기엔 너무 많이 걸려 있다.
그래서 방향을 바꾼다.
상대가 변했다,
세상이 불확실하다.
그쪽으로 책임을 넘기는 게 훨씬 안전하고 편하다.
그러면서 말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이상하다. 굉장히..
변하지 않는다고 믿으면서 예측에는 실패했다.
그 모순 사이에 남는 건 하나다.
내가 잘못 본 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
어쩌면 의심이라는 건
상대가 틀렸다는 증거가 아니라,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끝까지 붙잡고 싶은 비겁한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실패한 눈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존재의 위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