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크록스를 멀리하게 되었을까

내면을 믿던 사람이 외형을 다시 보게 된 순간

by 간극

자아 성찰, 내면의 충만함, 나만의 신념.

인간이 살아가며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은

대개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문제는

타인이 나를 바라볼 때도

그 지점까지 함께 봐주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우리가 타인을 처음 만날 때

판단의 기준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옷매무새, 신발의 단정함,

목소리의 톤, 표정, 태도 같은 것들.


아무리 내면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어도

타인의 1차적인 판단은

이미 절반 이상 끝나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나 역시 과거에는

타인의 시선보다

내면의 충실함을 방패 삼아 살아왔다.


외적인 부분을 신경 쓰는 행위를

마치 내면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한

가벼운 합리화처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에 들어와 보니

현실은 조금 달랐다.


내면을 아무리 갈고닦아도

슬리퍼를 신고 다니면

누군가는 나를 백수로 보고,

누군가는 나이보다 훨씬 어리게 봤다.


그때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형이

툭 던지듯 한마디를 했다.


“편한 건 좋은데,

조금만 더 신경 쓰면

네 스스로의 가치를

네가 깎지 않아도 되지 않겠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면이 중요하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내가 스스로를

타인 앞에서 낮춰 보이게 만들고 있던 건 아닐까.


그 뒤로

크록스와 슬리퍼를 최대한 자제했고,

꾸미지는 않되

정갈하게 입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도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외형보다 내면이 중요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타인은 나의 내부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머리에 떡이 졌는지,

신발을 질질 끄는지로

사람을 판단해 버리는 세상에서

굳이 내가 나를 깎아내릴 이유는 없다는 것.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고,

어쩌면 누군가의 부모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인상을 남길 수 있는 태도는

내면을 배신하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내면을 존중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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