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지 않을 권리에 대하여

유보는 도피가 아니라, 존재의 권리다

by 간극

우리는 살아오며

수많은 선택의 순간 앞에 끊임없이 세워져 왔다.


선택하지 않음이라는 선택지가

분명히 존재했음에도,

세상은 그것을 늘 죄처럼 취급해 왔다.

마치 선택을 유보하는 사람은

책임을 회피하는 인간인 것처럼.


사람들은 말한다.

과거의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정말 우리는

순수하게 우리의 선택만으로

지금에 도달했을까.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선택을 미뤘다는 이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담을 안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어릴 때 우리는

결과를 계산하지 않고

단지 좋아서, 혹은 잘해서

무언가를 선택한다.


그러나 사회에 들어서는 순간

그 선택들은 곧바로 재단된다.

“그게 밥 먹여주냐”는 말 앞에서

많은 가능성은

아무 말 없이 접힌다.


존재는 여전히 성장 중인데,

사회는 언제나

이미 완성된 자아를 요구한다.


이 시간차 속에서

선택의 유보는

언제부터인가

무책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모든 것을 결과로 판단하는 구조,

빠르게 선택하고

빠르게 증명하지 않으면

낙오로 분류되는 사회에서

멈춤은 죄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할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조차

선택한 척 행동한다.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내가 달고 있는 이름표에

어울리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


학생은 공부해야 하고,

직원은 성과를 내야 하며,

어른은 언제나 확신 있어야 한다.


그 사이에서

존재는 숨 쉴 틈을 잃는다.


선택하지 않는 것을

굳이 또 다른 선택이라고

포장할 필요는 없다.


유보는 유보다.

정당화될 필요도,

설명될 필요도 없다.


존재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때

잠시 멈추고

방향을 보류하는 건

무책임이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이다.


이름표를 완전히 벗을 수는 없다.

하지만 가끔,

잠시 내려놓을 수는 있다.


그 짧은 순간만으로도

우리가 진짜로

보고 싶었던 방향은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다.


선택하지 않았다는 말이

무책임이 된 건,

우리가 너무 오래

결과만을 존재의 증거로

착각해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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