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지만, 죽음을 선물할게
생일날 아침에 그의 부고를 받았다. 그에게서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은 지 9시간, 우리가 헤어진 지 1년 만이었다. 나는 까뮈의 <이방인> 첫 두 줄이 생각났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열어본다. 생일 축하해:} 사랑할 수 있어서 고마웠어! 안녕. 수신 시각은 오전 12시 1분. 나는 막 데운 미역국을 한 숟갈 떠먹었다. 엄마표 미역국의 맛은 변함없이 맛있었다. 나는 부조리극의 주인공이 되어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것처럼 미역국을 퍼 먹었다. 자신의 죽음을 선물한 그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장례식장은 한산했다. 그의 남동생이 나를 알아보고 어머니께 그냥 친구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내 두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녀의 거친 손에 잡힌 나의 손등 위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 촉감에 울컥 나도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나를 그의 남동생이 자리로 안내했다. 내 앞에 육개장과 하얀 쌀밥이 놓였다. 생일날엔 왜 미역국을 먹고 죽으면 왜 육개장을 먹는지 알 수 없었다. 나무젓가락을 잘라 내 앞에 놓아주며 그의 남동생은 내게 말했다.
- 혹시라도 형의 죽음에 힘들어할 필요 없어요. 지 못나서 죽은 거니까.
누나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요.
-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나랑 헤어지고 더 심해진 거예요?
- 그렇죠 뭐... 한 동안 병원에도 입원했었고 자살 시도도 몇 차례 있었어요.
그때마다 어머니 쓰러지시고. 누나한테 가겠다고도 했었는데...
아침 되면 또, 잘 막았다 제정신 돌아오고. 스스로도 힘들었겠죠.
그럼...
병원에서 나오고 한동안 그림도 다시 그리고 괜찮은가 싶었는데 밤에 안 들어오는 거예요. 실종 신고까지 했는데 어제 경찰에서 연락이 왔어요. 혼자 모텔에서 기어이...
어젯밤에요?
네. 자정쯤으로 추정하더라고요.
육개장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의 동생은 장례식장 앞까지 나를 배웅해 주었다. 돌아서는 나를 불러 세워 말했다.
-누나, 고마워요. 우리 형 누나 만나는 1년 동안 너무 행복했어요!
나는 그의 동생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라일락 향기가 봄바람을 타고 코끝으로 전해졌다.
-그 사람 동생?
어느새 상혁이 내 곁에 와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이 내 어깨를 감쌌다.
괜찮아?
그럼, 괜찮지
괜찮지 않았다. 그날 밤 상혁이 예약해 둔 한강뷰 레스토랑의 저녁은 취소되었다. 상혁도 나를 이해해 주는 것 같았다. 상혁도 그와의 연애이력과 정신병력을 알고 있었다.
생일날이 갑작스러운 죽음에 먹먹함으로 지나가고 있을 즈음 죽은 그에게서 또 하나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늘 내 장례식장에 다녀왔지? 미안해. 니 생일날 죽어서. 하지만 그건 완전 나의 의도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니 기억 속에서 영영 가라앉아 사라지게 될 거잖아. 니 생일날 나를 기억해 주면 좋겠어. 잔인하지만 미안해. 죽을 때까지 이기적인 놈이라서. 하지만 너도 죽을 때가 되면 알게 될 거야. 삶의 의미 하나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의미가 되고 싶은 마음을. 진짜 안녕.>
나는 그에게 답장을 쓴다.
<그곳에서는 부디 평안하실. 해피 데쓰 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