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모퉁이를 돌면......
미지는 콘솔박스에 깊이 잠들어 있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경식의 시선을 느끼며 경식에게 꽂힌 여자의 시선을 쫓아 발걸음을 뗐다. 경식은 시선을 미지에게 고정한 채 입을 뗐다. 그러자 여자가 다가가는 미지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여자도 뭐라고 입을 달싹거린다.
그 남자와 결혼하면 안 돼요!
미지를 보는 여자가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나라고 말하는 것 같다. 뒤 차로 바짝 다가선 미지는 들고 온 휴대폰의 최근 발신번호 S에게 재발신 버튼을 누른다. 신호음이 가고 곧이어 여자의 휴대폰이 울린다. 미지는 보았다. 여자의 휴대폰 액정화면에 뜬 경식이란 이름과 그 옆에 붙은 하트모양을.
- 오해야, 미지야!
경식은 미지에게 달려와 휴대폰을 뺏어 든다.
- 내가 다 설명할게! 아니, 저 여자가 설명할 거야!
경식은 여자에게 달려간다. 운전석에서 휴대폰을 부여잡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여자. 경식은 운전석의 문을 거칠게 열고 여자에게 소리친다.
- 내려요, 어서! 말해요, 사실대로!
당신 혼자 일방적인 거라고! 나는 아니라고 말해요!
궁지에 몰린 쥐처럼 경식은 자신을 위해 예비된 트랩에 걸려 납작해지지 않으려는 쥐처럼 여자를 몰아세웠다. 여자는 입을 벌린 채 경식을 흘겨본다. 그 눈빛에는 적의와 원망과 분노와 배신의 복합적인 감정들이 담겨 있다. 여자는 경식을 세차게 밀어내고 차 문을 거칠게 닫는다. 트랩에 걸린 쥐처럼 경식은 도로 위에 나동그라진다. 여자의 차가 후진을 한다. 곧이어 여자의 하이힐이 엑셀러레이터를 있는 힘껏 찍어 누르자, 여자의 차는 트랩에 걸린 쥐에게 전속력으로 달려온다. 경식의 몸이 붕- 떠올라 도로 위에 나동그라진다. 경식의 손에 들린 휴대폰도 같이 떠올랐다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난다. 여자의 차는 도주한다. 순식간에 도로가 아수라장이 된다. 미지는 망연자실 속수무책으로 경식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있다.
경찰은 미지에게 몇 가지를 묻고 돌아갔다. CCTV에 차량 도주로가 잘 찍혀 있어 여자의 차를 찾아내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사는 경식의 의식이 돌아오는 건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거라고 말했다. 어디쯤 잠들어 있을까. 미지는 경식의 의식이 헤매고 있을 미지의 그곳을 가늠해 보려 했다. 도주한 여자, S의 일방통행로를 막고 서서 사실과 진실을 자신의 여자, 미주 앞에 털끝만큼의 오해가 없도록 털어놓으라고 추궁하는 그곳일까, 나는 S 너를 사랑하지만 이 결혼을 깰 수는 없으므로 내가 너를 모른 척한 그 순간을 용서해 달라며 애원하는 양방통행로 한가운데일까. 소용돌이치는 미주의 머릿속과는 달리 경식은 파도의 일렁임 하나 없는 잔잔한 바다 위에 누워 고요하게 침잠해 있었다.
여자의 차를 찾았다는 전화를 받은 건 다음 날 아침 7시경이었다. 미주는 당장 여자를 만나서 물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재킷을 걸쳐 입으며 미주는 서둘러 경찰서로 향했다.
- 찾은 건 차량뿐입니다. 여자는 아직입니다.
미주의 입에서 옅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 혹시, 여자의 휴대폰 번호를 알 수 있을까요?
- 잠시만요.
경찰이 알려주는 여자의 휴대폰 번호는 미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번호가 아니었다. 그럼 적어도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위기는, 경식과 S 그 이상의 인물이 더 얽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미지는 짐작했다. 경식의 차 뒷좌석 콘솔박스에 있던 경식의 두 번째 휴대폰 번호도 문자메시지의 발신처가 아니었기에 S가 다른 휴대폰 번호로 보내지 않았다면 제3의 인물이 또 미지의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미지에게 놓을 또 어떤 덫을 고르면서 숨을 고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 행복할 때는 그 행복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단다.
모퉁이를 돌면 행복에 덫을 놓을 불행이란 놈이 기다리고 있는 법이거든.
하지만 인간은 불행이란 덫을 피할 수는 없어. 행복은 불행을 볼 수 없는
암막커튼을 두르고 있거든. 그러니 인간은 불행이 오면
온몸으로 맞이하는 수밖에...
이혼 도장을 찍은 날, 엄마는 아빠가 끓여 준 맛있는 김치찌개를 먹으며 행복했던 식탁에 홀로 앉아 소주를 기울이며 독백을 했었다. 식탁 밑에 미주가 숨어 있다는 걸 모른 채, 자신의 독백이 방백이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인간은 미지의 위기 속에 놓인 풍전등화의 세상을 살고 있는 거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엄마는 사랑하던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로 떠나버린 불행을 매일 낮, 매일 밤 깡소주로 달랬다. 엄마의 불행 속엔 더 이상 김치찌개는 없었다. 미지 역시 그 이후로 김치찌개는 먹지 않았다. 그것이 엄마의 불행을 함께 짊어지는 동지애라고 여겼다.
미지는 엄마가 얘기한 미지의 위기가 마침내 자신에게도 들이닥쳤고, 일요일 아침 미지의 문자메시지를 받은 그 찰나가 자신이 행복의 모퉁이를 돌았던 때라고 회상했다. 미지는 여전히 고요한 경식을 바라보며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경식의 첫 번째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 화면에 불이 들어오며 경식과 미지의 투 샷이 떠 올랐다. 제주도 유채꽃밭 행복했던 순간. 문자메시지를 받은 일요일 아침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곳에 서서 모퉁이 벽을 꽉 붙잡고 절대절대 모퉁이를 돌고 싶지 않았다.
- 여보세요?
- 미지 씨, 저 재영이예요. 경식이는 어떤가요?
- 의식이... 아직...
- 제가 지금 병원에 가고 있어요. 미지 씨에게 꼭 할 말이 있어요!
전화를 끊고 미지는 재영의 할 말이 지금의 이 위기와 연관되어 있을 거라고 직감했다. 재영이 도착하면 이 위기와 문자메시지의 전말을 다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재영은 경식과 대학 동기이자 경식의 절친이고 제주도에서 웨딩 사진을 촬영해 준 사람이었다. 미지는 재영에게 S의 존재를 물어야겠다 생각했다.
병원에 깊은 어둠이 찾아오고 오고 가는 인적이 드문 시각, 경식의 병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침대 맡에서 얼굴을 묻고 있던 미지는 문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재영 씨... 부르려고 일어서는데 그곳에는 S가 서 있었다. S의 모습은 도주 당시 흐트러진 상태 그대로였다.
- 당신...!
미지는 S가 제 발로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놀란 미지는 안중에 없고 S의 시선은 누워 있는 경식에게로 향했다. 자신이 만든 결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경식에게 걸어오는 S. 그 뒤로 다가오는 한 남자.
- 여보!
재영이 S를 부르며 들어왔다. 미지는 누워 있는 경식과 그 뒤로 나란히 선 S와 재영의 삼각구도를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재영의 신혼 집들이에서 김치찌개를 내왔던 S를. 재영의 와이프 요리 솜씨를 모두가 칭찬하던 그날을. 그리고 경식이 그 김치찌개를 너무나 맛있게 먹던 모습을. 안갯속에 가려 있던 그 찰나의 순간들이 하나씩 하나씩 미지의 장막을 걷어내고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