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위기 1

균열의 시작은 미지의 문자메시지로부터

by 데이지

고요하고 평온한 일요일 아침, 불길한 미래를 예고하는 문자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그 남자와 결혼하면 안 돼요


미지에게 도착한 미지의 한 줄. 침대에서의 여유를 침범당한 미지는 번쩍 눈이 떠졌다. 도대체 대관절 누가 나에게 이런 문자를... 010으로 시작하는 수신처는 당연히 미지의 전화번호 목록에 없는 번호였다. 당장 그 번호의 발신 버튼을 눌러보고 싶었지만 요즘은 버튼을 누르기만 해도 악성 코드가 깔리고 개인정보가 털린다 어쩐다 하는 무시무시한 말들을 들었던 터라 겁 많은 미지는 방안을 서성이며 문자를 들여다볼 뿐이었다. 아무런 문장부호도, 그 흔한 부사도, 뚜렷한 이유도 없는 담백한 한 줄, 그래서 더욱 그 문장에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다기보다 오히려 전달력의 진정성과 순도가 높다고 여겨졌다.

미지는 일단 찬물을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아침에는 무조건 따뜻한 물을 마시는 66일 루틴 실천 중이었으나 지금은 루틴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따뜻한 물을 마셔야 밤사이 느슨해진 혈관의 피돌기에 좋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 결혼식 날 혈색 좋은 신부의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시작한 루틴이었다. 냉장고 문을 열려다가 슬리퍼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대신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휴대폰 위로 냉장고 입구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던 A1 소스 유리병이 떨어졌다. 휴대폰 액정이 사막의 땅이 갈라진 것보다 더 촘촘하게 파편처럼 금이 가 버렸다. 어이없게도 유리병은 멀쩡했다. 아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열린 냉장고의 찬기를 느끼며 미지는 산산이 조각난 자신의 휴대폰 액정을 망연자실 속수무책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때 휴대폰이 울렸다. 사랑하는 경식 씨였다. 33일 후에 미지의 남편이 될 남자. 이 사막처럼 메마르고 버석버석한 세상에서 물을 주고 햇빛을 씌어 주고, 비가 오면 우산이 되어주고, 눈이 오면 눈사람을 만들어 줄 영원한 미지의 편이 될 남자. 미지는 주저앉아 휴대폰의 수신 버튼을 눌렀다. 경식이란 이름을 보자 울컥해졌다.


- 미지 공주님, 아직도 꿈나라인가요?

-......

- 뭐야, 아직도 설마 딥슬립? 재영이네 가서 사진 나온 거 봐야지.

-......

- 여보세요? 미지야?


미지는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 스테이크 소스병을 냉장고 입구에 아무렇게나 넣으면 어떡해?

- 너 울어? 냉장고 문 열다 다친 거야?

- 내가 냉장고 옆에 샐러드 소스병 옆에 잘 넣어놓으라고 했잖아!

- 얼마나 다친 거야?

- 나 말고 휴대폰이...

- 깜짝이야, 난 또. 너 안 다쳤으면 됐어! 재영이네 가기 전에 휴대폰부터 다시 사자!

준비해~ 지금 출발한다!


어두워진 휴대폰 액정을 보며 미지는 불길한 미래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문자메시지 수신함으로 들어간다.

그 남자와 결혼하면 안 돼요

그 남자, 경식으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온다. 6개월 전 찍었던 웨딩 스냅 촬영 사진 한 장. 제주도의 유채밭 한가운데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를 입은 경식과 미지가 팔짱을 끼고 세상 행복하게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재영이가 빨리 오래~

미지는 사진 속 경식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본다. 이토록 잘생기고, 멋있고, 다정하고 착하고 무엇보다 미지를 열렬하게 사랑해 주는 흠 없는 남자와 왜 결혼하면 안 된다고 하는가. 도대체 누가 이런 메시지를 자신에게 보낸 것인가. 미지는 이미 자신이 이 미지의 문자 한 줄에 결박당했음을 인지했다. 단순히 스팸 문자로 치부해 버리면 아주 손쉽게 결박에서 풀려날 수도 있었다. 그러기엔 이 문자의 담백한 매력의 결속력이 너무 단단했다. 풀려날 땐 풀려나더라도 우선은 누가 무슨 의도로 미지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낸 것인지 알아내야 했다. 어쩌면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경식 씨에게 정말 결혼해서는 안 되는 어떤 결격 사유가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 뭐 묻었으면 떼어 줘. 그렇게 빤히 보고만 있지 말고


운전대를 잡은 경식은 미지에게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 앞을 봐! 오빠!


미지는 경식의 얼굴을 제자리로 돌렸다. 경식의 얼굴을 보면 볼수록 이 남자에게서 결혼할 수 없는 결격 사유 같은 건 먼지만큼도 없어 보였다. 미지는 경식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에 의심을 품는 건 자신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때 경식의 휴대폰이 울렸다. 재영이었다. 경식은 스피커폰으로 수신 버튼을 눌렀다.


- 간다, 가. 곧 도착이야~

- 아... 미지 씨랑 같이 있겠구나. 그래 이따 봐!

- 자식이 승질이 느무~ 급해!


--- 쾅!! ---


경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체가 흔들렸다. 순간적으로 경식의 긴 팔이 미지의 상반신을 호위했다.

- 괜찮아?


놀란 미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식과 미지는 뒤를 돌아보았다.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 일단 밖으로 나가자!


경식은 휴대폰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앞차의 보닛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차 안에 혼자 있는 여자는 운전석에서 나올 생각도 안 하고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


- 잠깐 있어. 보고 올게!


경식은 뒤차로 다가가고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경식이 다가가는 것도 모른 채, 자신이 앞차를 박은 것도 괘념치 않은 채 귀에 휴대폰만 대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애타게 전화를 걸고 있거나 상대편의 얘기를 듣고 있는 듯했다. 미지는 여자의 행동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때 어디선가 휴대폰 진동음이 울렸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주변 어디선가 울리는 휴대폰 진동음. 미지의 박살 난 휴대폰은 아니었다. 미지는 차 뒷좌석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어 소리가 울리는 곳으로 손을 뻗었다. 콘솔 박스를 열었다. 낯선 휴대폰 액정 화면에서 S라는 수신자로부터 격렬하게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미지는 뒤를 돌아보았다. 뒷좌석의 여자가 휴대폰을 내려놓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S의 진동음도 동시에 멈췄다. 여자는 경식을 보고 있었고, 경식은 미지를 보고 있었다. 미지의 귓가에 문자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그 남자와 결혼하면 안 돼요!


그 소리에는 격렬한 느낌표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2편에서 계속)

일요일 연재
이전 13화JUST SLEEPING HOT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