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위기 3

위기의 징후와 전조의 시작점

by 데이지

미지라는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그녀의 아버지였다. 인생은 미지의 세계를 아무런 버팀목 없이 맨몸으로 건너는 것이라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자신의 이름에 대한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미지는 알 수 없는 자신의 인생을 알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혔다. 경식을 만난 후 자신의 인생은 더 이상 미지의 세계가 아닌 확실한 행복의 세계라고 믿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어디에도 없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행복은 위기와 그 전조에 대한 인식의 눈을 가린다. 눈을 뜨고 살면서 보지 못하는 것들, 위기가 닥쳐오고 나서야 실낱같은 징후와 전조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엮여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자신의 어리석음과 합리화와 회피와 방관이 한여름 폭우처럼 미지의 맨몸으로 쏟아졌다.

- 그 남자와 결혼하면 안 돼요 -


미지는 S가 그렇게 말하며 경식에게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지의 남편이 될 남자에게 함부로 시선을 보내는 다른 남자의 아내. S는 자신의 남편, 재영에게 끌려 나가면서도 경식에게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을 쫓으며 미지는 생각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 징후와 전조를 알아차릴 수는 없었을까. S가 끓여 내온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던 경식, 그 장면에서 뭔가를 눈치챌 수는 없었을까.


- 잠깐만요!


미지는 재영의 손에 이끌려 나가는 S의 팔을 붙잡았다. 재영과 S가 멈춰 서 미지를 바라봤다.


- 뭐예요? 경식 씨하고?


- 미지 씨, 나중에 제가 다 말씀...


재영이 S를 다소 거칠게 문밖으로 밀어내려는데 그 손을 뿌리치며 S가 미지를 돌아보며 말했다.


- 사랑해요, 내가 경식 씨! 당신보다 훨씬- 훨씬 더 먼저였고, 경식 씨는 당신이 만들어 준 오믈렛보다

내 김치찌개를 백배, 천배는 좋아한단 말이에요!


- 당신, 기어이...


재영은 마침내 대형폭탄을 터뜨린 용의자 S를 붙잡은 형사처럼 S를 문밖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미지에게 말했다.


- 미지 씨, 경식이를 의심하면 안 돼요! 이 사람 혼자 그러는 거니까.

재영은 격렬하게 문을 닫고 나갔다. 미지는 경식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고요하게 침잠해 있는 경식을 보며 그날을 떠올렸다. 자신이 의심을 품어야 한다면 거기서부터가 아니었을까.


재영과 S의 집들이 후 돌아가는 차 안에서 미지는 운전 중인 경식의 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볼록 나와 셔츠 위로 튕겨져 나올 것만 같은 빵빵한 배의 감촉을 느끼며 미지는 경식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 김치찌개가 그렇게 맛있었어? 내 오믈렛보다 백배는 맛있게 먹더라.


- 오래전부터 먹던 거니까. 익숙해졌나 봐


미지는 경식의 배에서 손을 떼며 물었다.

- 오래전부터? 익숙?


--끼익--


경식이 밟은 급브레이크에 미지의 심장도 급정거했다. 그때, 미지는 부드럽게 잘 나가던 경식과의 관계에 급제동을 걸어야 했었던 걸까.


- 아니, 울 엄마가 끓여준 김치찌개 맛이랑 너무 똑같은 거야. 그래서 오래전부터 먹었던 익숙한 맛이어서

맛있게 먹었단 말이지. 설마 말실수 때문에 오해하는 거 아니지? 네가 오해할까 봐 너무 무섭고 놀라서

급브레이크까지 밟았네. 미안... 미지야 괜찮아?


- 재영 씨 와이프 요리 잘하긴 하더라. 김치찌개도 어머니거랑 비슷하긴 했어.


- 그지? 너도 인정이지?


- 그래도 내 오믈렛보다 맛있게 먹진 말아 주라. 질투 났단 말이야!


- 미안...


그때 급정거했던 자신의 심장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제자리에 돌려놓지 말았어야 했다고 미지는 생각했다. S가 일방적으로 혼자 훨씬 오래전부터 경식을 좋아했다 하더라도, 경식이 왜 그 김치찌개를 집들이 날만이 아닌 이전 혹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먹어야 했을까. 그리고 재영은 왜 경식을 좋아하는 S와 결혼했을까. 그걸 모르고 결혼했고 이후에 S가 경식을 좋아하는 걸 알게 됐다고 하더라도 S는 어쩌자고 버젓이 대놓고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일까. S의 목적은 미지와 경식의 결혼을 막는 것인가. S의 일방적인 감정이라 하더라도 정말 경식은 일말의 감정의 동요와 책임이 없는 것일까.



- 경식이는 아무 잘못도 책임도 없어요. 그냥 우리 와이프 혼자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미지 씨는 경식이 의심하면 안 돼요. 절대.

경식이는 미지 씨와의 행복하고 평범한 결혼생활을 꿈꿔요. 그건 제가 보증해요.


다음 날 재영은 미지를 찾아와 열심히 설명했다.


- 재영 씨는... 괜찮아요?


- 네?


- 재영 씨는 와이프가 다른 남자, 그것도 재영 씨와 제일 친한 친구 좋아한다는데 괜찮냐고요.


-......


- 이런 상황에서 경식 씨를 엄호하는 게 너무 부적절하게 느껴져요.


-......


- 지금은 자신의 감정, 와이프든, 경식 씨든 아니면 둘 다를 향한 분노에 집중할 상황 아닌가요? 그런데 와이프

를 폭탄 제거하듯이 떠안고 가고, 그것도 모자라 저에게 경식 씨를 항변해 주는 게... 저는 너무 납득이 되질 않네요.


재영은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군다.

- 저는 단지 우리 때문에 경식이와 미지 씨의 결혼을 망칠까 봐 너무 두려워요.

도대체 왜 당신 부부의 일보다 우리의 결혼이 당신에게 더 중요한 건가요?


재영과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미지는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미지는 미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재영과 헤어졌다.


미지는 경식의 차를 타고 자유로를 달리고 있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미지는 자유로를 달리곤 했다. 때마침 수리 완료된 경식의 차가 병원으로 도착했고, 그때 재영의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고, 미지는 경식의 차에 올라탄 것이다.


파주 인근에서 도로는 깊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앞 차의 깜빡이를 보면서 미주도 경식의 차의 깜빡이를 켰다. 정말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처음 경험해 보는 안개였다. 미주는 운전석 옆의 콘솔박스를 무심히 열었다. 그 안에 제3의 낯선 휴대전화가 수백만 년 전부터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고요히 놓여 있었다. 미지는 휴대전화에 연결된 전원 케이블을 블루투스에 연결했다. 그리고 통화목록 녹음 버튼을 눌렀다. 경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나 정말, 미지 사랑해. 그러니까 재영야 이제 그만 나를 놔줘. 네가 정말 나를 사랑했다면 나를 놔주는 게

맞아. 듣고 있어?


- 나도 너를 놔주려고 수영이랑 결혼한 거야. 너를 놔주려고 수영이한테 너와의 관계를 털어놓은 거고.

그런데도 수영이는 너를 포기 못한다는 데 어떡해?


- 수영이도 너도 정말 왜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니? 사랑한다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해도

되는 거야? 행복을 빌어 줘야 하는데 거 아니니? 재영아, 말해봐!


-......


- 나 정말 이제 미지랑 결혼해서 평범하게 살고 싶어. 너한테도 수영이한테도 벗어나고 싶어, 알아들어?


- 흑흑흑


블루투스 너머로 재영의 흐느끼는 소리가 점점점 안갯속에 울려 퍼졌다. 안개는 쉽게 걷힐 것 같지 않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갯속을 미지는 아무런 버팀목 없이 혼자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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