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SLEEPING HOTEL

단지 단잠을 잘 수 있다면 영혼이라고 팔고 싶어

by 데이지

호텔은 서해대교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혜진의 자동차가 서해대교를 건너고 있을 때 노란색 커다란 네온사인으로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글자들을 본 것은 혜진이 졸음운전 중 막 급브레이크를 밟은 후였다. 박았나? 싶었는데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았고, 뒤차도 다행히 안전거리를 유지한 것 같았다. 어젯밤도 혜진은 잠을 설쳤다. 최근에 더욱 극심해진 불면증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길고 긴 설 연휴 끝, 꽉 막힌 도로, 잠을 깨고자 고개를 흔들며 우연히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에 버젓이 JUST SLEEPING HOTEL이라는 글자가 혜진의 눈에 와서 박혔다. 그 순간 혜진의 입에서 피실 얕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다 웃음은 박장대소로 변해 핸들에서 손을 떼고 손뼉까지 쳐 가며 웃는 혜진을 옆 차선에서 짜증 난 표정으로 운전대를 지루하게 잡고 있는 남자가 미친 여자 보듯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서해대교 인근은 모텔촌이었다. 모텔을 호텔로 명명한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을 수 있었지만 모텔로 향하는 남녀의 명백한 목적성을 버젓이 거부하려는 듯 JUST SLEEPING이라니...

‘어떻게 저런 이름을 지을 수 있었지?’

역설? 모순? 반어? 혜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온갖 수사법을 떠올려 보았지만 뭔지는 잘 모르겠고, 격하게 단잠을 자고 싶은 자신에게 단지 잠을 잘 수 있게 해 준다면 저 호텔에서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혜진은 휴게소에 진입하기 위해 차선 변경을 시도했지만 꽉꽉 막힌 서해대교는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혜진은 휴게소 진입을 포기했다. 오도 가도 못하는 도로 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인생의 형국이 펼쳐졌다.


혜진은 엄마를 포기하고 그 남자를 선택하려고 마음먹었었다. 불과 1년 전에는. 엄마는 10년 넘게 병원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병원 인근의 작은 아파트에 혼자서 지내고 있었다. 더 이상 일과였던 병원을 가지 않아도 되는 엄마는 혜진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사돈의 팔촌의 팔촌까지 옛날이야기들을 끄집어내 혜진의 일상을 침범했다. 그 당시 혜진의 일상이란 혜진이 새로 입사한 팀장과 눈에 스파크가 튀어 밤낮으로 모텔을 찾아 미친 듯이 섹스를 나누던 나날이었다. 사람을 이렇게까지 좋아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그 사람에게 미쳐있는데 매 순간 엄마의 전화가 혜진의 사랑을 산산이 부서뜨렸다.


-엄마, 나 지금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 나중에 내가 전화하면 안 될까?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윗집에서 밤마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고통을 호소했고, 혜진은

소음 측정 검사를 요청해 진위 파악에까지 돌입했으나 결과는 엄마의 조현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 진단이 회사의 팀장과 활활 타오르던 혜진의 사랑이라는 감정의 불꽃에 찬물을 확 끼얹었다. 지난 1년여 동안 연차를 다 엄마의 병원 동행으로 써 버린 혜진은 서울과 전주를 오가며 엄마의 뒷바라지를 했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고, 이모에게 엄마를 자주 들여다봐 달라 부탁과 사정을 했다. 하지만 이모에게도 사정이 생겨서 더 이상 엄마를 돌볼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사랑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엄마의 돌봄으로 이동했다. 갑자기 혜진의 사랑이 도로 위 교통 체증처럼 꽉 막혀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혜진은 우선 한 달 휴직을 신청했다. 엄마 옆에서 엄마의 상태를 파악하고 식사를 챙기고 산책을 하고 돌보는 나날들이었다. 밤마다 잠도 안 자고 눈앞에 실재하지 않는 존재와 알 수 없는 말들을 나누는 엄마의 방문을 열어보며 불면의 밤들을 보내던 혜진은 점점 막혀가는 자신의 인생을 막연하게 어둠 속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막연함 속에서 자신의 사랑도 함께 막혀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휴게소 진입을 포기한 혜진의 자동차는 가까스로 출구로 빠져나왔다. JUST SLEEPING HOTEL은 10층 정도의 백색 건물이었다. 건물의 창은 불이 모두 꺼져 있었다. 객실에 손님이 하나도 없는 걸까. 아니면 모두 정말 거짓말처럼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걸까. 그 사람과 무인호텔에 여러 번 가 보았지만 혜진이 직접 입실을 위한 버튼을 누른 건 처음이었다. 키를 받아 든 혜진은 엘리베이터에 올라 7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에 오르자마자 혜진의 입술을 누르던 팀장의 거친 숨결. 긴 복도를 지나 모텔 방에 들어서자마자 팀장은 혜진의 온몸을 헤집었다. 모텔은 혜진에게 잠을 자는 곳이 아니었다. 일 분 일초도 아까워하며 서로를 탐닉하며 깨어 있었던 장소였다. 탐닉의 순간이 끝나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팀장은 담배를 피웠고, 혜진은 엄마의 조현병을 떠올렸다. 탐닉 뒤의 현실은 모텔방에서 결코 잠들지 못했다. 그 사람은 아내에게 결려온 전화를, 혜진은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현실의 옷을 입고 있는 순간들의 반복된 1년. 혜진은 엄마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누구에게도 그 문제를 떠넘길 수 없다는 것을, 차선 변경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결론지었다.


-너는 네 인생 찾아가. 좋은 남자도 만나고. 니 인생 살아야지.

나는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어.


서울에서의 20년을 잘 정리하고 오겠다고 말하던 혜진에게 엄마는 자신은 괜찮다고 말했다. 혜진이 팀장에게 자신은 괜찮다고 말했던 것처럼.


-나는 괜찮아요. 당신이 가정을 깰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요.

나도 엄마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혜진도 엄마도 괜찮다는 건 다 거짓말일 뿐이었다.

아니, 거짓말이라기엔 너무 가혹하고 괜찮을 거라는 단지 바람일 뿐이었다.

JUST EXPECTATION. 혜진이 문 앞에 키를 갖다 대자 방문이 열렸다.

이 호텔방에서의 잠과 엄마와 자신의 괜찮다는 바람이 단지 그렇다는 JUST라는 단어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혜진은 이 호텔에서 정말 잠을 청하고 맑은 정신으로 서울로 올라가서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리라 생각하며 침대에 누웠다. 천정을 바라보자, 그가 수없이 더듬고 만졌던 손길이 느껴졌다. 휴대폰을 들어 아직 깨어 있는 단축번호 1번을 길게 누르자 신호음이 갔다. 그 긴긴 신호음을 들으며 혜진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그가 없는 모텔에서 마침내 단지 긴 잠에 빠져들었다. 이곳은 어쩌면 정말 JUST SLEEPING HOTEL인지도 모르겠다고 잠에 빠져들며 혜진은 생각했다. 잠에서 깨면 혜진의 인생도 막혔던 도로도 단지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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