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식일기3-스파게티가 있는 풍경

인생은 풍경처럼 스쳐 지나간다

by 데이지
KakaoTalk_20260206_062910519.jpg 2026년 1월 31일 스파게티가 있는 풍경@광화문


백 만년 만에 누굴 만났다. 그럼 이것은 혼식일기가 아닌 복식일기인가. 카페는 내가, 밥 먹을 곳은 그가 정하기로 했다. 만나기로 한 약속을 정했을 때 나는 그 카페를 떠올렸다. 그러나 토요일 오후 3시, 카페는 어느 새 핫플로 등극하여 웨이팅이 엄청 났다. 만석에 사람들로 꽈 차 있었다. 아무리 좋은 장소도 사람이 많으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17층 그 카페의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아 그를 그 곳으로 데려 갔다. 그러나 그는 얼마 후 미안하지만 나가자고 했다. 17층의 풍경은 그렇게 짧게 스쳐 지나갔다.


카페를 나와 한적한 길을 걸었다. 걸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하는 일, 그 일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얼마나 했는지 어떻게 그 일을 그만 두었는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그렇게 살게 되었는지, 그의 길었던 인생의 풍경들이 토요일 오후의 덕수궁 돌담길 아래로 낯선 여자에게 한 순간에 스쳐 지나갔다.


걷기에 날이 따뜻해서 괜찮았다.


식당의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는 5시까지 계속 걸었다. 그는 오랫만에 서울 구경을 한다고 했다. 나는 서울 구경의 하이라이트는 광화문 광장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가 선택한 식당은 광화문 사거리 도로 2층에 위치해 있었다. 빨간색 바탕에 글자가 써 있었다. 스파게티가 있는 풍경. 그는 그 간판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웨이팅이 있는 맛집이라고 SNS에서 찾아보았다고. 좁은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 갔을 때 식당의 오랜 역사가 느껴졌다. 그의 말로는 20년도 더 된 식당이란다. 세월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는 곳이었다.


나는 봉골레를 그는 피자를 시켜 나눠 먹었다. 와인도 한잔씩 하자 했다. 나는 와이트 와인을 그는 레드 와인을. 적당히 맛있었다. 그와 내가 첫 손님이었고, 이후 젊은 여자들이 두세명씩 짝을 지어 테이블을 채웠다. 그 사이에서 그와 나는 어떤 풍경으로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을까.


지난 20년 동안 이 곳에서는 스파게티를 사이에 두고 어떤 수많은 사람들의 풍경이 스쳐 지나갔을까.


어떤 풍경은 오래 머물고, 어떤 풍경은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그 풍경들에는 각각의 유효기간이 있는 것 같다. 그 유효성의 재료에는 그 날의 봉골레의 면발, 조개와 홍합의 향과 질감, 나폴리 피자의 길게 늘어졌던 치즈 줄기, 그것을 잘랐던 나이프의 무게, 포크로 감기는 면의 탄성, 그 날의 분위기, 목소리, 대화 등등이 있을 테지만, 무엇보다 그 날 내가 느꼈던 감정이 핵심 재료가 아닐까 싶다. 스파게티가 있는 풍경에서 잠시 스쳐지나간 감정들은 어느 새 휘발되었다. 아주 잠깐 낯선 우리였던 그와 나는 익숙한 각자의 삶의 풍경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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