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30 ~ 2025.01.05
2025년 새해 기념을 핑계로 오랜만에 대학교 동기들과 만남을 가졌다. 대학 시절 우르르 몰려다니던 멤버들과 거의 완전체로 만나니 들뜨기도 하고 감회가 새로웠다. 약 5년 만에 만나는 동기도 있었지만 그 간의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어색함이란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들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하하호호 떠들기 바쁠 뿐이었다. 진정으로 막역한 사이는 그 간의 공백 기간과 어색함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여자친구는 있는지 등 서로에게 궁금한 질문들을 차례 없이 마구잡이로 하다 보니 마치 시장바닥에 나와있는 듯한 분위기가 되었지만 그 왁자지껄한 모습 또한 대학시절 우리의 모습 그대로인 것 같아 웃기기도 하고, 기억이 날듯 말듯한 흐릿한 추억들이 선명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즐거웠다. 흐릿한 기억이 선명해지는 순간은 '아 그땐 그랬었지'라는 소소한 행복감을 몰고 온다.
어느 정도 술자리가 무르익으면서 서로에게 궁금했던 질문들은 마무리가 되고, 우리가 함께했던 그 시절에 대한 추억 회상으로 이야기의 흐름이 넘어갔다. 언젠가 책에서 '술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과 함께 마셔야 한다. 과거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의 술자리는 영양가가 없다'라는 맥락의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어릴 적엔 그 말이 참으로 합리적이라 생각했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당위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나에게 위의 구절은 모순 없는 참이라 느껴졌다. 그리고 한동안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과거 이야기보단 앞으로의 계획, 비전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확실히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영양가가 많았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친구들의 피드백을 반영할 수도 있었고 내가 모르는 분야에서 얻어가는 정보도 많았다. 나에게 감명을 준 구절에 대한 신뢰는 짙어져 갔다.
친한 친구와 또다시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던 도중 문득 '술자리를 영양가 있는 이야기로 채움으로써 시간을 조금이나마 알차게 쓰는 건 좋은데, 과거 이야기를 하는 건 정말 낭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가장 친한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는데도 정서적 안정의 부재를 느꼈기 때문이다. 가장 친한 친구와 그렇게 좋아하는 술을 마시고 있는데 즐거움이 없었다. 즐거움뿐만 아니라 오히려 불안함이 엄습했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나의 가치관이나 방향성에 확신이 들기보단 '내가 가진 생각과 하려고 하는 일이 맞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친구들의 피드백이나 의견이 도움을 줄 때도 있었지만 항상 그럴 순 없었다. 서로의 의견이 판이하게 갈리는 날엔 술자리는 토론장으로 변하기 일쑤였다.
'나에게 감명을 준 그 문장은 정말 참일까?' 다시 고심에 잠겼다. 합리성만 놓고 본다면 다시 생각해도 참이었다. 하지만 그 문장은 합리적이었을 뿐 무언가 결여되어 있었다. 결여되어 있던 무언가는 '즐거움'이었다. 물론 미래 지향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즐거움이 무조건적으로 결여되지 않는다. 내가 이야기하는 즐거움은 '공통적인 경험에서 오는 즐거움' 즉 추억이다. 정서적 공감이 바탕이 된 추억은 미래 지향적인 이야기에서는 끄집어낼 수 없는 주제이자 즐거움이다. '술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과 함께 마셔야 한다. 과거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의 술자리는 영양가가 없다'라는 구절은 합리적이기만 할 뿐 정서적 공감과 즐거움을 필수적이지 않은 쾌락으로 치부해 버렸다.
우리는 매일 식사를 통해 다양한 영양가를 섭취하며 삶을 유지한다. 하지만 삼시 세끼를 매번 현미밥, 나물, 양질의 단백질 등으로 채우진 않는다. 때때로 치킨, 피자등의 인스턴트 음식도 먹어가며 미각에 즐거움을 선사한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미래 지향적인 이야기를 하며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은 이상적이며 합리적이지만 매번 그럴 순 없다. 가끔씩은 추억을 회상하기도 하고, 옛날 일도 끄집어내어 되짚어보면서 소소한 쾌락이 가미되어야 한다.
삶에 있어서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대화가 더 영양가 있을 순 있겠지만, 더 가치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즐거움도 삶을 살아가는데 결여돼서는 안 되는 중요한 가치다. 과거를 회상하는 대화가 미래 지향적인 대화보다 낫다는 게 아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명확이 다르다. 과거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의 대화가 영양가는 없을지 몰라도 퍽퍽한 삶을 촉촉하게 만들어 준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