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딘 말의 묵직한 힘

2024.12.23 ~ 2024.12.29

by 휘슐랭

다사다난했던 2024년을 마무리하면서 그동안 자주보지 못했던 나의 오랜 친구들과 망년회 자리를 가졌다. 사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만날 수 있었겠지만 막상 일상 속에 녹아들어 살다 보면 친구들을 자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망년회는 소중한 사람들과 마주할 수 있는 훌륭한 핑곗거리이자 명분이 되어준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섯 시간이 한 시간처럼 흘러갔다. 시시콜콜한 농담 따먹기를 하며 웃고 떠들기도 하고 온 국민의 관심사인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장 편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는 주제와 관계없이 항상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준다.


대략적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얼핏 기억이 나지만 디테일한 이야기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술이 곁들여진 대화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더 정확한 이유는 따로 있다. 오가는 말들이 날이서지 않은 무딘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말은 이성적이고 냉철하겠지만 그만큼 임팩트가 크며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반면 공감을 바탕으로 한 무딘 말은 냉철함은 떨어질 수 있어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길 위험이 적다.


그날 우리의 대화는 진심을 빠트린 무조건적인 공감을 바탕으로 내뱉는 말이었나 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다만 임팩트가 빠진 둥글둥글한 대화였던 것뿐이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이성과 냉철함으로 무장해 대화를 이끌어가기엔 너무 아까운 시간들이다. 서로의 상황에 공감도 하고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도 하면서 날 서지 않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때로는 무딘 말이 날 선 말보다 강한 힘을 가질 때가 많다. 사실은 일상 속에서 날 선 말보다는 무딘 말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에 무딘 말을 묵직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나에게 고민 상담을 하는 사람, 무언가 자랑을 하는 사람 등 여러 상황에 놓인 타인에게 날카로운 말이 필요할 때는 일상에서 거의 없다. 대부분 둥글둥글한 무딘 말을 원하며 해결책을 제시받기보다는 공감을 표현해 주길 바란다. 위와 같은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 무디지만 묵직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타인의 감정을 고려한 적절한 표현을 찾아 위로와 공감을 선물할 수 있다.


똑똑한 사람은 이성적이고 냉철한 대화를 통해 누군가에게 자신의 신념과 사고를 관철시킬 수 있다. 하지만 더 똑똑한 사람은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보단, 공감을 바탕으로 한 무디고 묵직한 말을 통해 누군가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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