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이 이끄는 파멸

2025.01.13 ~ 2025.01.19

by 휘슐랭

일전에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카지노 관련된 이야기가 오갔던 적이 있다. 카지노 분위기는 어떻다더라, 가면 이런 사람도 있다더라 등의 눈으로 확인해보지 못한 카더라 식의 대화가 계속 이어지다 '우리가 한번 가보자'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번 꽂히면 꼭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을 가진 우리는 그 자리에서 카지노 여행 날짜를 픽스했고, 그렇게 지난 주말 우리는 정선에 위치한 강원랜드 카지노로 향했다.


약 3시간을 달려 강원랜드에 도착하자마자 입장권을 끊기 위해 매표소로 향했다. 카지노치곤 이른 시간인 오후 2시에 도착하면 붐비지 않을 거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매표소와 현금인출기 앞은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어버버 하며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잠시, 우리도 그 시장통의 구성원이 되어 티켓팅을 하고 카지노에 들어섰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슬롯머신과 커다란 룰렛들, 화려한 샹들리에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즐거운 표정의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표정은 우리가 카지노에 들어왔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아직까지 제3 자인 우리가 보는 카지노는 환락 그 자체였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카지노 구경을 마치고 '룰렛'이라 쓰여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룰은 어느 정도 알고 있던 터라 딜러에게 칩을 받아 바로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 시작 10분 만에 30만 원 정도를 벌어들였지만 거기까지였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가진 칩은 눈에 띄게 줄어갔다. 물론 우리는 적은 금액을 가지고 경험상 방문한 거였기 때문에 멘탈적으로나 금전적으로 큰 타격이 있진 않았다. 그렇게 소소한 게임을 즐기고 있던 중, 옆 자리에 중년의 남성이 다가와 자리를 잡았다. 그는 현금 100만원을 딜러에게 건네고 개당 10,000원짜리 칩으로 돌려받았다. 30분도 지나지 않아 건네받았던 칩을 모두 잃었고, 다시 100만원을 딜러에게 건넸다. 이 과정이 네다섯 번 정도 반복되니 표정이 굳어지고 손을 떨기 시작했다. 그는 마지막 남은 돈인듯한 꼬깃꼬깃한 30만원 정도를 5분 정도 만지작거리다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수백만원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광경은 생각보다 공포스러웠다.


카지노엔 50% 이상의 승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자명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왜 손까지 벌벌 떨어가며 자신의 모든 것을 운에 맡기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언가 이성적 사고회로를 마비시키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거라는 착각, 돈이 아닌 칩으로 베팅하면서 생기는 현실감각 저하 등 이성적 사고회로를 마비시키는 여러 요소들이 존재하겠지만 카지노의 가장 강력한 사고회로 마비제는 단연 '도파민'이다.


즉각적 보상이 뒤따라 오는 카지노의 게임으로 인해 분비되는 도파민의 양을 수치화한다면 아마 카지노 내의 산소량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쉴 새 없이 터지는 도파민은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흐릿하게 만든다. 조금 전 돈을 땄을 때의 쾌감, 예전에 큰돈을 따 본 경험 등 아주 작고 미세한 기억에서조차 도파민은 뿜어져 나온다. 설사 예전의 기억이 잊혀졌다 하더라도 '도파민'은 '중독'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앞서 이야기한 중년의 남성은 사실 시작하자마자 큰돈을 거머쥐었다. 높은 베팅액에 그에 따른 큰 보상, 이미 게임 시작 10분 만에 감당하지 못할 양의 도파민에 절여졌다. 그렇게 분비된 많은 양의 도파민이 그의 눈을 가리고 파멸의 길로 이끌었다. 양껏 분비된 도파민덕에 최상의 즐거움에 놓인 상태에서 바닥까지 떨어진 그의 심정이 어떨지는 불 보듯 뻔했다.


도파민은 일반적으로 보상, 즐거움, 동기부여등과 관련된 긍정적 역할을 수행하지만, 필요 이상의 과다 분비는 우리를 파멸의 길로 인도할지도 모른다. 나의 모든 것을 운에 맡겨야 하는 비운의 상황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혹여나 그런 상황이 닥칠지라도 도파민을 비롯한 무언가가 나의 정상적 사고회로를 방해하는 것은 필사적으로 방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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